나를 나답게 해주는 나만의 가치
브라질 정중앙에 위치한 수도 브라질리아는 유네스코에 등재될 만큼 대단한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기획 도시다. 도시 전체가 비행기 형태를 띠고 있는데 조정석이 위치한 부분은 나라를 조정한다는 의미로 대통령궁과 의회가 위치하고 있다. 그 주변으로는 각 부처들이 자리하고 날개와 맞닿은 중앙부분은 호텔과 금융, 쇼핑센터 등이 있어 사방에서 진입하기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날개부분은 주택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애초부터 마련된 도시 설계도에 의해 무척 쾌적한 환경을 자랑한다.
한 6개월 정도 머물렀던 브라질리아의 주택가에는 주택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아니라 주택과 녹지가 각각 30 × 300미터 정도의 넓이로 반복되어 있어 마치 밀림에 사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넉넉한 녹지를 가지고 있다. 도시를 건설하기 전부터 있었던 울창한 밀림을 남겨 두었던 덕분에 오래되고 커다란 나무들이 많다. 치안도 전국에서 손꼽힐 만큼 좋은 상태라 거의 매일 저녁 식사 후 아이들과 산책이나 운동을 가곤 했다.
우기철이라 비가 오면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무섭게 내리곤 하는 바람에 며칠 산책을 못했는데 모처럼 날씨가 좋아 아이들과 함께 좀 멀리까지 산책을 나갔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를 걷고 있는데 커다란 고목이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 때 우람한 덩치와 무성한 잎을 자랑했을 고목은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 있었는지 곳곳이 패이고 반 쯤은 썩어있는 모습은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커다란 나무가 쓰러진 덕분에 주변의 고만고만한 작은 식물들은 햇빛을 온전히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햇빛을 받으려 키만 키운 웃자란 나무들도 보인다.
썩어버린 탓에 어떤 용도로도 활용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니 고목을 뒤덮고 있는 넝쿨 식물들이 보인다. 새와 작은 짐승들이 작은 흔적을 남기고 간 자리에는 작은 식물들이 여기저기 피어 오르며 다양한 모양과 색들로 옷을 입히고 있다. 땅에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라 썩은 나무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기생식물들. 개중에는 집으로 가져가 예쁜 화분에 옮겨 심으면 좋겠다싶은 녀석들도 제법 눈에 띈다. 썩어 깊게 패인 곳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칠 수 있을 만큼 작은 생명들이 있다. 연필로 점 하나를 찍어도 녀석들보다는 클 것 같은 작은 생명체들이 무리지어 살고 있다. 그곳은 이미 많은 생명들이 삶을 영위해 나가는 작은 우주다.
나무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혹은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을 것이다. 그리고 생을 마감하였을 것이다.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보이는 나무지만 썩어버린 나무는 다른 생명들을 품고 있다. 다른 생명들에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낳고 그 생명은 또 다른 생명들과 호흡하며 조화를 이루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썩어버린 고목일지언정 생명을 품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의미와 가치는 무한하다.
한참을 보고 있자니 내 안에서 썩어가는 것들과 겹쳐보인다. 꽤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고 나름 치유를 위해 노력도 해보았지만 아직은 뻣뻣하게 살아있는 탓에 주변의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고 방해를 하기 일쑤다. 하지만 언젠가 힘을 잃고 쓰러져 바닥에 누워 다른 존재들이 살아가는 작은 우주가 되어준 저 고목처럼 썩어가는 해묵은 상처들도 언젠가는 다른 생명을 품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다른 이들의 상처를 공감해주고 편안한 쉼터를 제공해 줄 수 있기를. 글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따스한 봄바람이 되어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글을 계속 써야겠다는 이유가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