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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Oct 26. 2021

감사는 의무입니다.

  낯선 타국에서 살아가자니 배워야 할 것들이 참 많다.  가장 먼저 그 나라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배워야 하고, 문화를 배워야 하고, 행정 체계나 규칙들도 배워야 하니 온통 배워야 할 것들 뿐이다.  살던 곳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행했던 당연한 것들이 여기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아 당황했던 순간들이나 마땅히 제공되어야할 행정적 절차을 미처 챙기지 못했다고 해서 그 책임이 나에게 돌아오는 일들을 겪고 나서야 조금씩 배우게 된다.       

  그 중에서도 언어는 습득하기 참 어려운 분야이다.  학창시절 영어가 싫어 이리 저리 도망 다니다보니 성적표에는 늘 참담한 점수가 새겨지기 일쑤였다.  그런 내가 나이 50이 넘어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 어려운 포르투갈어를 배우려니 괜히 왔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락거린다.     


  그래도 간혹 마음에 와 닿고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단어들이 있으니 그 가운데 하나가 ‘Obrigado(오브리가두)’라는 말이다.  해석하면 ‘감사합니다.’인데 같은 원어에서 파생된 ‘Obrigatório(오브리가또리오)’라는 단어가 있으니 ‘의무’를 뜻한다.  두 단어를 적어 놓고 가만히 보고 있자니 삶 속에서 감사할 일들이 참 많았음에도 전혀 고마워하지 않고 흘려보냈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헤아려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히려 불평의 대상으로 삼았던 적도 적잖았으니 돌이켜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기억들이 많다.     


  가장 먼저 사랑하는 내 가족들이 있어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더구나 낯설고 물 설은 타국에서 서로 의지할 가족은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런 가족들이 이 시국에 병원 한 번 안가고 잘 지내고 있으니 더욱 감사하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에 힘겨워하는 이들이 많아도 굶지 않아도 될 형편이기에 감사하고, 소수에 불과하지만 힘들어하는 이들을 불러 밥 한 끼 나눌 여력이 있으니 더욱 감사하다.  아픈 이들을 보고 함께 아파하고, 힘든 이들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아이들의 풍부한 감성이 또한 감사하다.  말 한마디 섞어보기도 어려운 언어 실력으로 난감해 할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 도와주고 홀연히 사라지는 이름 모를 교포 분들도 감사하다.  감사할 것들이 많으니 이 또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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