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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May 24. 2024

어? 이게 되네?

그림에 도전하다.

  한국에 들어오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돌아갈 날이 3일 남았으니 시간 참 빠르게 지나간다.  한국에서 만난 많은 지인들 가운데 유독 마음을 나누는 친구 부부가 있다.  둘 다 싱글일 때부터 알고 지내던 정겨운 친구들.  남편은 현직 펜화 작가로 활동 중이고, 부인은 켈리그라피 작가로 활동 중인 예술가 부부다.  한국 들어오자마자 인사동에서 정기 펜화 전시회가 열려 핑계김에 얼굴이나 보러 갔다.  


  그런데 그림(위에 보이는 대문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으며 한참을 머무르게 만드는 게 아닌가.  작은 선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을 수개월 간에 걸쳐 완성했다는 말에 새삼 친구의 열정과 노력이 엿보였다.  전에도 종종 보았던 작품들인데.  순간 나도 그림을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전에도 간혹 그림을 접할 기회가 있을 때면 분위기에 휩쓸려 잠시 따라 그려보곤 했는데 워낙에 색감이 떨어지는 바람에 이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전시회에서 마주한 그림들은 펜으로만 그리다 보니 오직 검정 색 일색이고 가끔 임팩트를 주기 위해 최소한의 색만을 사용했다.  


  색을 칠하지 않은 그림이라...  펜화라면 아무래도 많이 아주 많이 어렵겠지만 스케치 정도의 수준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어?  가능할 것 같은데.  유튜브를 뒤져보니 펜 드로잉이라든지 어반 스케치라든지 무리하지 않고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예전에 생일 선물로 받은 얇은 두께의 만녀필도 있겠다 내친김에 근처 문구점에 가서 드로잉용 작은 도화지를 구입했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져 따라 그려볼 만한 만만한 그림을 찾는데 쉽지 않다.  에이, 그냥 최대한 단순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걸 골라 설명을 들으며 무작정 따라 그렸다.


  내가 선택한 그림은 나무.  다양한 나무가 있지만 유튜브 쥔장이 하두 쉽다고 하기에 속는 셈 치고 선택했다.  우선 형태를 잡기 위해 연필로 테두리 만들어주기.  그런데 처음부터 쉽지 않다.  테두리를 그려서 그럴듯한 형태를 만들어야 하는데 자꾸 이상한 모양새가 나온다.  분명 잎사귀 부분을 뭉뚱그려서 삼각형을 그리고 줄기 부분은 조금 삐뚤삐뚤한 모습으로 만들라고 했는데 도화지에 그려진 모습은 자꾸만 네모난 작은 상자 위에 정삼각형이 올라있는 모양새다.  쬐그마한 핸드폰의 그림을 보면서 지웠다가 다시 테두리를 잡기를 몇 번이고 반복을 하다가 겨우 이 정도면 되지 않았냐며 극적 합의를 이루어냈다.  두 번째 단계로 나무 꼭대기에서 시작하여 아래로 내려오며 가지와 잎사귀 부분을 표현하는데 중요한 포인트는 선을 길게 긋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그린다는 각오로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랄발광을 하란다.  절대 삼각형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안내와 함께 내 손은 거침없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어?  근데 이게 왜 되는 거지?  설명해 준 그대로 따라 했을 뿐인데 제법 있어 보이는 그림이 되었다.  내친김에 이번엔 꽃 그림이다.  또 되네? 거참, 신기한 일일세.  혹시 나 금손?

  당연히 그럴 리 없는 현실에 얼른 정신을 차리고 내 앞에 놓은 작은 A5 도화지에 그려진 그림을 바라보며 감상의 시간을 가져본다.  그동안 예술이라는 분야는 천재들만 모여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구나.  세상 사람들이 감탄할 만한 그림을 그릴 수는 없겠지만 나도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즐거워할 수도 있구나.  흐르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는 그림은 택도 없겠지만 방구석에 홀로 앉아 히죽대며 감상할 수는 있겠구나.  이런저런 생각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더불어 그간 두려워하던 '도전'이라는 녀석이 내 옆에 앉아 살갑게 나를 바라본다.  그렇구나.  도전이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구나.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었어.  무서운 게 아니었어.  단지 어색했을 뿐이었어.  


  나이가 걸려 하지 못할 일이 많다며 이제 와서 무슨 새로운 도전이냐며 고개를 저으며 그 자리에 안주하는 주변의 모습들을 보면서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긍정을 하던 터였다..  하지만 100세 시대라는 지금 겨우 반을 채운 내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 나이구나 싶다.  덕분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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