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다약시 Oct 23. 2021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는데.

털실뭉치같은 머릿덩이를 어디서부터 풀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인생에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참 좋은 일 중 하나이다.


그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은 항상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애정을 다시 갚아주려 노력하는 편이다. 나의 생활이 그들의 관심이 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애정이 없으면 되지 않는 일들 중 하나이니까. 나 조차도 애정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애정을 가진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기억하는 편이니까. 그래서 고맙다. 많은 사랑을 주고 있음에 항상 감사하다.


하지만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을 때는 그들이 빚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애정을 갚으라며 독촉하지도 강요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홀로 가지고 있는 그들에 대한 의무감이 모든 고마움을 빚으로 만드는 것이다. 참 나쁜 버릇이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되는 순간부터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빚쟁이로 느껴진다. 넘치는 애정을 주고 그만큼을 되갚으라며 쳐다보는 빚쟁이들인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모든 사람들을 피해서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어 진다. 그러면 하루라도 도망가버리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빚들에 눌려 어디도 가지 못하고 방구석으로 처박혀 피신하게 되는 것이다.


일 또한 다르지 않다. 지금 나의 행복을 유지해주는 이 모든 일과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질 때가 있다.


현재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은 꼭 존재하고 그것을 극복해야만 한다. 알고 있다. 근데 최대한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다. 내가 가진 이 모든 것들을 누리기 위한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가장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는 하루하루가 두렵다. 하지만 해낼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항상 해마다 그렇게 인생의 고비를 넘겨왔다. 그 고비를 넘는 그 순간이 눈물이 흐를 때도 있었으며, 손을 벌벌 떨며 현실을 부정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해도 결국 피할 수 없었고 이겨냈고 더 단단해졌다. 알고 있음에도 최대한 피하고 싶다. 그렇게 방구석으로 또 몸을 피신한다.


방구석에 앉아 이 모든 일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는데 머릿속이 뒤죽박죽 이리저리 꼬여버린다. 마치 이리저리 꼬여버린 털실뭉치 같은 머릿 덩이가 남아있다. 어떻게 이 모든 실을 풀어 완성작을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도안부터 찾아야 할 텐데 그 모든 과정이 귀찮아서 하기가 싫다. 시간, 체력,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아니다. 결국 이랬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팀장과 팀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