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항상 자리에 없었다. 항상 늦게 출근하고 퇴근하기 일쑤였고 오자마자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같이 커피를 마시러 갔다. 그래서 그녀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적어도 각 팀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피드백이 없는 팀장일지라도 적어도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 날 우리에게 말했다. "저는 여러분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라요. 특히 2분이 하는 일은 저도 잘 모르는 일들이에요. 여러분들이 알아서 앞으로 잘 이끌어 나가셔야 해요." 그리고 2주 뒤에 사장이 주관하는 중앙회의에 참석한 그녀는 말했다. "제가 저희 팀원들에게 역할 부여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일을 하고 있고 지금 ~까지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 일을 한 적이 없었고 담당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타 팀에서 미팅을 신청했다. 앞으로 회사를 이끌어나갈 중요한 방향을 설정하는 미팅이라 팀장의 역할이 중요했다. 사실 회사를 이끌어 나가는 일을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그만큼의 귀찮고 복잡한 일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을 쳐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적어도 우리에겐 그러했다. 하지만 그녀와 타 팀장은 5분 만에 미팅을 끝마쳤다. "저기 대리와 직접 상의하세요. 전 아무것도 모르니 00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끌어주시면 될 거 같네요." 그렇게 우리들은 허허벌판 속에서 모든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지독한 야근에 시달렸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는 결국 없어졌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아 어떡해. 잘 몰랐나 봐 다들."
어느 날 그녀도 조금은 양심에 찔렸는지 갑자기 없던 팀 미팅을 만든다고 선언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은 보고받고 피드백을 주는 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매주 월요일 2시마다 팀 미팅을 진행할게요.", "여러분들의 의견을 들어볼게요" 결국 이 모든 계획은 고작 2주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를 풀어주는 팀장도 아니었다. 매일 출근은 몇 시에 했는지, 퇴근은 몇 시에 했는지 보고받고자 했고 주변에 스파이를 풀어 우리를 감시했다. 그녀에게 어느 날 우리 팀원 중의 한 명은 출근시간을 착각해 도착한 시간보다 10분 정도 이르게 보고를 했다. 그러자 그녀는 바로 전화로 말했다. "내가 주변에 사람이 없는 줄 아는 건가요? 00 씨 10분 정도 늦게 오셨잖아요. 거짓말하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변에는 팀장은 없지만 cctv가 존재했다. 사람의 형태로.
어느 팀이나 그렇지만 특히 영업지원은 팀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업이 부탁하는 일 중에서는 영업지원에서 해줄 수 없는 일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영업지원뿐만 아니라 마케팅, 경영지원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영업과 지원팀의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만약 리더가 부재하거나 무능력하다면 타 팀에 자료를 요청하기도 힘들고 고객사, 영업과의 소통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 팀원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일을 해야만 했다. 자료 요청이 들어오면 우리는 구글과 서로의 머리에 의존했다. 결국 초반에는 맞지 않은 자료가 나가거나 값이 틀리게 나가는 등 자잘한 실수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물어볼 곳도 없었고 그 모든 실수는 우리가 알아서 수습해야만 했다. 만약 그녀에게 이 모든 실수를 들킨다면 모든 비난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일해야 했다. 그 어떤 곳에도 의지하지 못한 채.
팀장의 부재는 값과 자료의 오류뿐만 아니라 자잘한 모든 일에서 일어났다. 타 팀의 부당한 업무지시에도 고개 숙여야 했고 요청한 자료는 툭하면 오지 않았다. 그 모든 게 팀장의 부재에서 일어난 탓이었다. 그녀가 소홀한 만큼 우리 팀은 회사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소홀해져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남아야 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버텨온 세월이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니 팀원들의 목소리는 커져있었다. 부당한 업무지시에는 개개인이 나서 소리쳤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들려올 메아리 소리를 기대하며 그렇게 소리쳤다. 그리고 3년이 지나니 그 목소리가 적어도 작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긴 했었다. 하지만 업무의 질을 상승시켜준다거나 하지 못했다. 그냥 커피 한잔이 무료로 내 자리에 쌓이게 될 뿐이었다. 그게 1잔에서 3잔으로 늘어난 수준밖에 되지 못했다.
지금 옮긴 회사는 팀장이 기존의 팀장과 너무나도 달라 적응하기가 힘들다. 좋은 의미로 힘들다. 각 팀원의 업무를 정확히 알고 업무지시를 하는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날은 업무를 하다 막히는 부분이 생겼다. 혼자 구글링을 하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어 어색하게 말했다. "혹시... 이 부분에 대해서 의견을 구하고 싶은데 질문을 해도 될까요...?" 해본 적 없는 행동이라 심장이 두근거렸다. 새 팀장은 말했다. "당연하죠. 이 부분은 ~하고 ~하니 a로 가시면 좋은데 00님이 더 좋은 의견이 있으시다면 저에게 말씀해주시겠어요?" 눈앞이 하얘졌다. 이런 피드백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아... 그러면 제가 좀 더 생각해보고 말씀드릴게요" "언제든지 말하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모든 업무는 00님이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 의견을 따르고 싶네요."
어색했다. 어색하다. 지금도 적응 중이다. 하지만 이제는 느낀다. 난 혼자가 아니다. 물어볼 곳이 있고 들을 수 있는 피드백이 있다. 처음으로 일이 즐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