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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약시 Sep 21. 2021

너라도 알아줘서 다행이야.

그는 유일하게 알아주었던 것이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발목을 접질린다. 9월 즈음에는 항상 왼발목에 보호대 혹은 봉대가 둘러져 있다. 특이한 걸음걸이 때문인 것인지 그냥 발목에 힘이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부터 당연한 연례행사가 되었다. 하지만 크게 아프거나 슬프지 않다. 처음 접질렸던 그때, 큰 위로를 받았고, 그 후로 매년 같은 위로를 받고 있다. 아무도 모를 고통을 알아줄 사람이 있다.




처음 크게 발목을 접질린 것은 20살 때였다.


어느 날 동아리에서 다 함께 등산을 가는 날이었다. 그 산은 무려 관악산이었다. 관악산은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무척 친근했다. 집 앞 정거장에서 타는 버스의 종점이었고, 초/중/고 3년 동안의 교가에 변함없이 등장하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 속에서 젊음의 패기인지, 무지에서 나온 무모함인지 관악산은 그저 동네 뒷산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주 간단한 옷과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우리는 다 같이 산을 올랐다. 그러나 모두가 초행길인 탓에 산을 조금 헤매기 시작했다. 다행히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었고 예정된 시간보다는 조금 늦게 절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길어진 등산 탓에 다리는 이미 풀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욱더 힘들다는 것을.


그 절에서 우리는 조금의 휴식을 취하고 산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 나섰다. 그리고 곧 정상을 만날 수 있었고 기뻐하며 환호했다. 초행길이어도 산 정상을 정복할 수 있구나! 그 누구보다 뿌듯했다.


그때는 이미 오후가 되고 있었고 우리는 서둘러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그러나 모두가 초행길이었던 탓에 산을 크게 헤매었다. 그렇게 산을 탄지 6시간이 흘렸을 무렵부터 다리는 감각을 잃어갔다. 그리고 어떤 돌계단을 딛는데 발목에 큰 통증을 느꼈다. 발목을 접질린 것이다. 하지만 티를 낼 수 없었다. 이미 2명의 친구들이 다리를 접질린 상태였고 등산을 기획했던 친구는 큰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구석에 앉아 발목에 가져온 손수건을 임시로 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문자가 왔다. 혹시 다리를 접질렸냐고 했다. 동아리 친구였다. 그는 뒤에서 오고 있었다. 나는 답했다. "응, 다리를 접질렸는데 심각하지는 않아."  그는 바로 내 옆으로 달려오려고 했다. 하지만 모두의 시선이 쏠릴까 걱정되었고 그에게 먼저 가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먼저 산을 내려갔다. 그리고 30분 후 산 아래 근처에 있는 식당에 도착했다.


그는 내 앞에 앉아있었다. "다리는 어때." "괜찮아, 크게 접질린 것도 아닌데 뭐."


하지만 다리는 점점 더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고 설상가상 손의 힘까지 풀리기 시작했다. 수저를 잡지 못했고 물을 따르지도 못할 수준이었다. 그는 묵묵히 수저를 잡아주고 물을 따라 앞에 대주었다. 손이 풀려 수저를 바닥에 떨어트렸는데도 그는 수저를 집어주고 새 수저를 꺼내 앞에 갖다 주었다. 그리고 나를 부축해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는 신신당부했다. "집에 가면서 연락해줘."


하지만 그때 연락하지 못했다. 나에게 그의 신경이 집중된 그 느낌이 이상했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발목에 대해 어떻게 알았고 왜 챙겨준 건지 하나부터 열까지 이상했다. 그리고 어쨌건 이에 대한 고마움을 성의껏 표시하지 못할 것 같다면 아예 처음부터 연락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연락하지 못했다.

 



나중에 우리가 만나게 된 후 그에게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그냥 네가 다친 게 눈에 들어왔고 그렇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야. 모두가 아파하는 그 둘에 신경 쓰고 있는 게 싫었어. 너도 많이 아팠잖아." 그는 유일하게 알아주었던 것이다. 사실은 그때 그 누구보다 아팠고 힘들었다는 것을, 그래서 방긋 웃었다. "너라도 알아줘서 다행이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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