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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약시 Sep 20. 2021

그냥 성격이고 기질이다.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하는 건 항상 어려운 일이다

학창 시절과 다양한 사회경험을 거치면서 그래도 이 정도의 적응은 이제 무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오만이었다. 새로운 사람과 그 환경에 적응하는 건 생각보다 큰 체력을 소모한다.


요즘 유행하는 mbti가 생각난다. 나는 e와 i의 경계에 서있다. e가 51%, i가 49%로 내향과 외향의 중간 성향이다. 이런 성격이 새로운 곳에 적응하려니 자아 충돌이 일어난다. 내면에서는 "어서 너의 성격을 보여줘!" 라며 외치고 있지만 겉으로는 낯을 심하게 가리고 있다. 이러고 있는 나를 보면 친한 사람들은 피식하며 분명히 비웃을 테다. 그들에게 나는 끊임없이 말하는 기계 수준이기 때문이다. 현재 하루에 두어 마디 하며 방긋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그저 웃음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이런 모습은 사람들 앞에 나가면 더욱더 심해진다. 흔히 무대공포증이라고 불리는 그 증상이 나에게 존재한다. 무대공포증이라 하면 사람들 앞에 서는 발표나 대회 때에 증상이 발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친하지 않은 여러 명의 사람이 나를 주목하는 시선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손이 떨리고 이마에서는 땀이 흐른다. 하지만 속으로는 대중들과 이 사람들을 향해 당당히 목소리를 외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 비록 바깥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이 공포증은 꽤 어릴 때부터 존재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노래에 재능이 있던 나에게 음악 선생님은 동요대회를 추천해 주었다. 어린 나는 동요대회에서 나가 입상을 하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았고 그렇게 무대를 준비했다. 문제는 무대 위에서 나타났다. 갑자기 무대 위에 올라가니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수십, 수백 번 연습했던 무대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 채 하얀빛 앞에서 그저 멍하니 입만 벙긋거릴 수밖에 없었다. 정신없던 무대가 끝나고 나에겐 은상이 주어졌다. 훗날에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는데 노래하는 동안 심하게 떨어서 도저히 금상을 줄 수 없었다고 했다. 실력은 좋았으나 염소같이 벌벌 떨던 목소리를 가진 나에게는 최고의 상이 었다. 그 후 한동안 무대에 오를 기회조차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나 자신에게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를 극복하고자 몇 번의 시도를 했었다. 길거리에서 청중들을 향해 큰소리를 쳐보기도 하고 토론동아리에 들어가서 매주 발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몇 년의 훈련을 거치고 난 뒤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청중들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떨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토론동아리는 결국 매주 만나게 되니 친한 친구들이 되었고 그들 앞에서 당연히 떨 필요가 없었다. 결국 공포증은 고쳐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성격이고 기질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것을 즐기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성격과 기질을 가진 그게 나 자신이다. 나이를 먹는 건 하나 둘 나 자신에 대해 포기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인가 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 동안 나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안 되는 한계라는 건 분명히 존재한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성격을 가진 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새로운 사람이 친한 무리 속에 던져지면 당연히 그 무리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관찰하게 된다. 기존 회사에서는 내가 관찰자였고 지금은 관찰당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모습이 나를 주목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새로운 회사라는 무대 속에 내가 또 한 번 던져지게 된 것이다. 그래도 여러 번의 시도가 헛되지만은 않았나 보다. 점점 더 새로운 무대의 공포를 이기고 극복해가는 시간이 짧아져가는 것을 느낀다. 이번에도 분명히 그럴 것이다. 전에도 목소리를 벌벌 떨고 염소 같은 목소리를 냈어도 나에게 주어졌던, 해야만 했던 무대는 끝내고 내려왔었기에 이번에도 분명히 그럴 것이라 믿는다. 나의 몫을 분명히 해낼 것이고 그럴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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