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까지를 유아기라고 한다. 이 시절의 추억을 기억하고 있다면, 천재일까? 아니면 기억력이 너무 좋은 걸까? 어제 일도 기억 못하는 내가, 유아기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고 하면 난센스라고 하겠지만, 이상하리만큼 기억이 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3살, 아니면 4살, 확실히 6살은 아니었다. 정확히 의사표현은 했으니, 4~5살쯤 이라고 해두자. 아니면 쎄짤~ 이었나? 그때 우리 집은 그리 유복하지 않은, 4 식구가 한 방에서 옹기종기 함께 살을 부대끼며 살았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작은 다락방이 하나 있었다. 외국 영화처럼 다락방은 아이들의 꿈의 궁전이어야 하지만, 우리 집 다락방은 그냥 창고였다. 더구나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더더욱 다락방을 방으로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철 지난 옷이나 이불, 물품 등을 보관하는 정도로 사용했던 거 같다.
어린 내가 다락방에 올라가려고 하면, 방바닥에 여러 권의 책을 쌓아야 올라갈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첫 계단을 밟았다고 해도, 직립자세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엉금엉금 기어서 올라가야 한다고 하면 맞을 것이다. 두 손은 앞발이 되고, 두 발은 뒷발이 되어, 몇 개 안 되는 계단을 절벽을 타 듯 올라가야만 했다. 그런 다락방에서 난 나의 천재성을 잃어버렸다.
때는 바야흐로, 몹시 추운 어느 겨울 날. 시골에서 할아버지와 삼촌이 우리 집에 왔다. 친척 결혼식이 있어 하루 전날 도착하셨는데, 문제는 4 식구를 수용할 수 있는 방에 추가로 어른 2명은 무리였다. 어떻게 해서라도 끼여서 자면 되겠지만, 효심이 지극한 부모님 덕에 나와 엄마는 하루만 다락방 신세를 져야 했다. 즉, 남자들은 따뜻하고 편한 방에서, 여자들은 춥고 좁은 다락방에서 잠을 자야 했던 것이다. 난방시설도 없는 추운 다락방인지라, 방의 온기가 다락방까지 가게 하기 위해 문을 열어 놓았다. 그래야 따뜻한 온기를 느끼면서 잠을 잘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난 남자들 틈에서 잘 수 있었지만, 우겼던 거 같다. "엄마랑 같이 잘래?"하면서 말이다. 나 하나쯤은 가능했을 텐데, 굳이 엄마랑 자겠다고 우긴 것이다. 한 고집하는 성격이었던 지라, 어찌할 수 없어 엄마와 함께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뭐 잠을 잤겠지.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난 다락방이 아닌 방에서 쿨쿨 자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다락방이 좁아 불편했던 엄마가, 내가 잠이 들자 아빠에게 말을 해서, 방으로 옮겼다고 생각했다. 속으로 배신, 배반이야 하면서 툴툴거리면 일어나는데, 날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 아가~ 괜찮니"라고 물어보는 할아버지 옆에, 아빠와 삼촌은 그저 놀라움에 말을 잊으셨고, 이 소란에 잠에서 깬 엄마는 방에 있는 나를 '왜 쟤가 저길?' 이런 표정으로 쳐다보고 계셨다. 여기까지 날 데려온 사람이 아빠면서 왜 저런 표정을 지을까 싶어, 나 역시 멍한 채로 쳐다보기만 했다. 그때 할아버지가 날 일으켜 세우더니, 내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다친 데는 없니" 하면서 말이다.
엄마 품에서 떼어 놓은 아빠가 미워,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있었더니, 가족들의 모습은 점점 더 어두워만 갔다. 그래서 도대체 왜 이러실까 싶어, "나 오줌 마려워"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괜찮나 부다. 울 아기 괜찮나 부다"라고 할아버지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을 자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오빠의 한 마디로 난 모든 사건을 유추할 수 있었다.
"너, 어제 밤에 다락방에서 떨어졌잖아"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할아버지께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말하고 다락방으로 올라간 나는, 엄마 품에서 잘 자고 있었는데, 좁은 다락방에서 잠버릇이 심한 내가 가만히 예쁘게 잘 수는 없었을 것이다. 깜깜한 새벽, 툭 툭 툭~~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 방으로 떨어졌다. 그 떨어진 무언가는 바로 나였고, 방에서 자고 있던 식구들은 잠결에 내가 떨어진 소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던 것이다.
어쩐지, 아빠가 데려다 놨다고 생각하기에는 내가 자고 있던 공간이 좀 수상스러웠다. 바로, 다락방 밑에 쪼그리고 자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른이 올라가기에도 꽤 높이가 있던 다락방인데, 거기서 잘 자던 아이가 떨어졌으니 식구들이 놀랐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놀란 식구들과 달리, 난 별일 아닌 듯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활기차게 돌아다녔다. 딱 봐도 멍이 들지도 않고, 아프다는 말도 안 하니 식구들도 내가 큰 이상이 없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할아버지는 내가 다치지 않은 게, 겨울이라 두꺼운 이불이 깔려 있어서 그렇다고 하시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외상은 없었지만 내상은 깊었던 거 같다. 다른 아기들에 비해 말도 먼저 하고, 뭐든지 빨리 배우고 습득했던 내가 그때 이후부터 일반인(?)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천재성은 그날 새벽 다락방에 두고 내려왔던 거 같다. 천재성과 함께 미스코리아가 될 수 있었던 기질 까지 두고 온 것만 같다.
이 사건 때문은 아니었지만, 이듬해 방이 2개나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다락방과는 영원한 안녕을 고한 것이다. 한번 넘어지면 3년 안에 죽는다는 길에서 어느 똑똑한 선비는 한번 두 번 세 번 계속 넘어져 본인의 수명보다 더 오래 살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옛 이야기처럼 나도 다시 다락방에서 떨어졌다면, 그때 잃어버렸던 천재성을 찾을 수 있었을까?
하긴 지금 생각해보면, 다락방에서 잘 자고 있던 아이가 아침에 방에 있으니, 얼마나 놀라고 당황했을까 싶다. 가족들은 방을 한 바퀴 돌면서 잠을 자던 날 알고 있어서 그리 놀라워하지는 않았지만, 이 광경을 본 할아버지는 무척 놀라셨던 거 같다. 왜냐하면, 이사하기 전까지 우리 집에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오시더라도 잠은 안 주무시고 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아찔한 사건인데, 떨어진 순간의 기억이 없으니 그냥 미스터리로 남겨두자. 아니면 내가 떨어진 게 아니라, 외계인이 나의 천재성을 가져가기 위해 그랬나? 또 산으로 가기 전에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