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칠양파 Oct 30. 2015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면산장 살인사건

완벽하게 당했다!!

당했다. 그것도 완벽하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면산장 살인사건을 다 읽고 내린 느낌이다. 지난 1월에 읽었던 그무렵 누군가는 옴니버스식 단편 추리 소설이라 아쉬움이 많았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가면산장 살인사건은 330페이지 분량의 장편 추리소설이다. 늘어난 분량만큼 역시 엄청난 스토리와 반전 그리고 또 반전에 반전을 선물해줬다.



스포는 절대 노출되면 안되기에, 간단 줄거리를 말하자면 이렇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신부의 부모님, 전 예비신랑이자 약혼자 그리고 신부의 친오빠, 사촌 여동생과 의사남, 신부의 절친, 신부아빠의 비서, 이렇게 8명이 한 자리에 모인다. 그 곳에서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건 바로 경찰에 쫓기던 2인조 은행 강도가 침입한 것이다. 8명은 강도들로부터 감금을 당하게 되고, 뜻하지 않게 예비신부의 죽음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면서 점차 그 진실을 찾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중간에 예기치 못한 엄청난 사건까지 추가되면서, 도저히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추리소설은 감정이입보다는 내가 탐정인냥,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 사람이 범인일까? 아니 저 사람이지? 아니야 이걸 보면 저 인간이네, 하면서 계속 내가 생각한 그 사람이 범인이기 바라면서 읽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일관적으로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랑은 움직이 듯이 범인도 움직인다. 아니 읽으면 읽으수록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되기에 나름 추리도 하고, 유추도 하면서, 작가가 알려주기 전에 먼저 밝혀내고자 한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그 사람이 작가가 정한 범인과 일치한다면, '그래 이 거지, 역시 내 촉은 틀리지 않았어' 하면서 엄청 좋아라 한다. 그런데 종이 한 장 차이로 내가 정한 범인과 작가가 정한 범인이 다를 경우, 엄청난 소름과 함께 '아 맞아, 저 사람일 거라 생각했었는데'하면서 자기합리화를 하게 된다. 나도 그가 범인임을 짐작했는데,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틀리지 않았을 텐데 하면서 내 잘못 보다는 괜스레 내용을 이상하게 쓴 작가를 탓하게 된다. 그냥 맘 편하게 읽으면 그만인 것을 혼자 혼들갑을 떨고 있는 것이다.



시험을 볼 때, 주관식이 아닌 객관식에서 4개 중 2개는 확실히 틀린 답이다. 그럼 나머지 2개 중에 답을 찾아야 하는데, 이게 말썽이다. 둘 다 맞는 거 같기도 하고 틀린 거 같기도 하고 오락가락한다. 그래도 하나를 골라야 하므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 정답이라고 생각한 문항을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정답이 확실히 틀렸다고 생각했던 2개 중 하나 일 때 느끼는 감정은 엄청나다. 괜스레 뻘짓을 했다는 후회도 있고, 엄청난 허탈감도 있고, 다른 문제에 더 집중할걸 괜한 시간만 보냈다는 자책도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면산장 살인사건이 바로 그렇다. 확실히 틀렸다고 생각한 문항에서 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솔직히 어느 정도 짐작이라고 했으면 좋을 텐데, "바로, 너"라고 친절히 알려주기 전까지도 전혀 몰랐다. 나름 추리소설, 추리만화, 추리 영화 등등 엄청 많이 보고 좋아했던 1인이라고 자부했는데, 이번에는 완벽하게 졌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졌는데, 완벽한 패배였는데,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다. 아니 즐겁고 행복하다. 문제를 틀리고 이리도 행복한 적은 없는데, 이번에는 잘 틀린 거 같다. 틀려서 오는 허무감과 허탈감보다는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시, 다 알고 난 후 사건을 마무리하기 시작하자, 급 다운되면서 재미가 없어졌다.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로 천국과 지옥을 갔다 왔다 했다. 앞 페이지까지는 엄청 재미있던 소설이, 뒷 페이지로 오자 힘이 쭉 빠진 듯, 뉴스에서 이런 사건이 이렇게  마무리됐다는 기자 브리핑처럼 남의 나라 이야기로 보이기 시작했다. 혼자 명탐정 코난인 듯, 제대로 감정이입하면서 파헤치듯 읽었던 내가, 원래의 나로 돌아온 것을, 괜히 책에다가 불평, 불만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5시간의 엄청난 추리쇼를 마쳤다. 엄청난 반전과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되는 스포이기에, 책 리뷰라기 보다는 그냥 소감이라고 해야 할 거 같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찬찬히 생각해 보니, 내가 범인을 밝히지 못했던 것은 작가의 농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게 되면 왜 농간인지 알 거 같다.



영상이 아니라 책이라서 덜 무서웠고, 그래서 더 세심한 추리가 가능했다. 추리만화, 영화도 좋지만, 역시 추리소설이 갑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읽으면서 머리 속으로 영상을 떠오르게 만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능력, 참 엄청나다. 그무렵 누군가의 아쉬움이 한방에 해결되었다. 이젠 오쿠다 히데오 소설과 함께 즐거찾는 작품이 될 거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제 사라마구의 자들의 도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