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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양파 Nov 16. 2015

기욤 뮈소의 센트럴 파크

엄청난 긴박감 뒤에 찾아오는 허무!!

가브리엘과 나는 왜 지난밤에 벌어진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까? 우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서로 수갑으로 묶인 채 누워 있게 되었을까? 셔츠에 묻어 있는 혈흔은 누구의 것일까? 낯선 권총은 어떡하다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탄창의 총알이 한발 비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내 손바닥에 그리니치 호텔 전화번호를 적어두었을까? 가브리엘의 팔에 숫자를 새긴 사람을 누구일까? 서류 가방에는 왜 전기충격 장치가 되어 있었을까? 주사기 안에 들어 있는 파란색 액체는 뭘까? 알리스는 끝없이 이어지는 의문 때문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본문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나도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시작부터 물음표 투성이다. 한 남자(가브리엘)와 한 여자(알리스)가 뉴욕 센트럴 파크 후미진 곳에 서로 수갑이 채워진 채 누워있다. 여자와 남자는 처음 만난 사이다. 왜 수갑으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들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파리 경찰답게 그녀는 냉철한 판단을 한다. 여자에 묻어 있던 혈흔의 존재와 뒤바뀐 총 그리고 주머니 속에 있던 사물함 열쇠밖에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걸 가지고 파리에 있던 그녀가 왜 뉴욕에 왔는지 밝혀야 한다. 자신을 재즈 피아니스트 말하는 수상한 이 남자의 정체도 함께 밝혀야 한다. 첫 장부터 흥미진진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점점 더 큰 사건이 생기고, 여기에 새로운 사건들까지, 늘 사랑 이야기만 하던 기욤 뮈소가 웬일인가 했다. 사랑은 없고 스릴러만 있으니 말이다. 



첫 번째 소제목이던 묶인 사람들에 나오는 마지막 글, "당신은 누구죠?" 또 빠져버렸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는 책을 읽으면 멀미가 나는 것도 무시하고 그렇게 이동 중에도,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에서도 읽고 또 읽었다. 

미스터리 소설답게 주인공들 보다 먼저 사건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사건을 푸는 열쇠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 많았음을 나중에 알게 됐다. 모든 사건을 다 안 후, 페이지 페이지마다 열쇠가 있었다. 그걸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특히 제목과 함께 시작하는 명언은 유심히 봐야 하는데 너무 소홀했다. 이것만 제대로 봤어도, 그들이 왜 그래야만 했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대신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다 보니 다 범인 같고, 다 착한 사람 같고 구별이 안 된다. 그러다 주인공(전에 읽었던 작품에서 주인공이 범인이었음)을 의심하기 까지 했다. 그런데 주인공은 의심하면  안 되겠다. 스토리도 안 맞고, 혼자 또 다른 소설을 쓸 뿐이다. 



범인을 나중에 알려주는 스릴러 소설, 작가가 범인을 알려주기 전에 먼저 찾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런데 기욤 뮈소는 자꾸만 범인을 찾을 생각은 하지 말고,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라고 한다. 그들의 이야기 아니 그녀의 이야기 속에 아픔과 슬픔 그리고 분노를 느끼라고 한다. 여린 그녀에게 너무한 큰 시련이 있었음을 현재 시점 이야기와 함께 과거 이야기가 함께 한다. 



과거 속 알리스는 사랑을 했었다. 소설답게 판타지 같은 사랑으로 시작해, 결혼도 하고, 임신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기억한다. 자신의 지나친 만용과 허영심으로 인해 엄청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걸 말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라고 하지만, 여기서 과거는 절대 '뿐이다'가 아니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 때문에 끊어졌던 과거는 다시 현재와 연결이 된다. 그리고 과거 속 범인과 현재의 범인이 동일 인물이 되면서 스토리는 엄청난 긴장감을 가져다 주게 된다.



그러나 엄청난 스릴러는 한 순간에 사라졌다. 파리에 있던 그녀가 왜 뉴욕에 왔는지 그 진실을 알게 되면서, 스릴러 소설은 허무 소설이 된다. 여기까지만 하지, 나머지는 도돌이표처럼 다시 책을 읽으면서 정답을 찾게 하지 했다. 그런데 뉴욕에 대한 진실을 시작으로  그동안 갖고 있던 모든 물음표들을 하나하나 맨투맨 과외처럼 너무나 친절하게 알려준다. 알려주기 전까지 허무함은 있었지만, 기억을 되살려 그래서 이렇게 됐고, 그런 이렇고, 요건 그렇구나 하면서 나름 추리를 하고 있었는데, 괜한 짓을 했다. 



그리고 왜 없나 했다. 왜 왜 왜 기욤 뮈소 답게 사랑 얘기가 없을까 했다. 그런데 역시나 나온다. 판타지 같았던 과거의 사랑보다 더 어이없는 첫눈에 반한다는 그런 사랑을 말이다. 아 진짜, 이건 아니잖아. 너무 하잖아 했다. 

그동안 기욤 뮈소의 장점은 기가 막히게 잘 짜여진 스토리에, 영화를 본 듯 생생한 묘사가 그것이다. 여기에 아름다운 사랑도  한몫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 사랑은 판타지다. 진짜 소설에서나 가능한 판타지다. 대신 소설 초반에 나오는 자동차 도주 장면은 진짜 영화 같았다. 어쩜 이리도 긴박감이 넘치던지, 읽고 있던 나도 손에 땀이 날 정도였다.  



초반 상상할 수도 없었던 스토리에, 엄청난 긴박감까지 참 좋았는데, 중후반으로 오니 나원참~ 이랬다. 그녀, 알리스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허무라는 녀석이 찾아 왔지만, 그래도 따끈따끈한 사랑이 남아 있어 좋았다고 해야겠지. 잘 읽었다고 해야겠지. 아무래도 요즘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에 빠져있다 보니 기욤 뮈소의 주종목인 사랑을 너무  등한시했나 보다. 



마라톤처럼 페이스를 조절해야 하는데, 초반에 너무 스피드를 낸 거 같다. 그래도 뉴욕에 대한 이런 상세한 묘사를 첨이다. 뉴욕 지도나 사진을 갖고 본다면 더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센트럴파크를 시작으로 차이나타운, 부자들만 사는 동네, 무서운(?) 동네 등등 뉴욕 구경 하나는 제대로 시켜주기 때문이다. 기욤 뮈소의 센트럴파크는 판타지 사랑답게, 판타지 스릴러였음 더 좋았을 거 같다. 그녀에게 닥친 아픔이 너무 슬프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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