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아빠와 형사 아들의 멋진 콜라보!!
톰소여의 모험과 구니스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나도 뜻하지 않은 사건을 목격하고, 범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싶다. 셜록 홈즈처럼 형사 콜롬보처럼 기발한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싶다. 그런데 현실은 너무나 평온했고, 살인사건은커녕 보물지도조차 나에게 오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보게 된 명탐정 코난으로 인해 다시 추리물에 빠지게 되면서, 십대 시절에 가졌던 그 꿈을 다시 꾼다면 철없는 어른이라고 하겠지. 그래 안다. 진짜 그런 일이 나에게 닥치면, 겁에 질려서 덜덜 떨기만 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는 수 없으니 대리만족이라도 해야지. 편식주의자답게 요즘 읽는 책, 영화, 드라마는 죄다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다. 결말을 보기 전에 범인을 찾는 재미도 있고, 쫀쫀한 스토리에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으니 말이다. 요즘 내 현실이 너무 따분해서 더 그런가?
미야베 미유키의 형사의 아이. 왠지 명탐정 코난이 생각났다. 소개 글을 볼 필요도 없이,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미스터리 소설이며, 코난같은 어린 아이가 사건을 해결할 거 같다는 강한 포스가 느껴져서 바로 골랐다. 이제는 밤을 새우면 다음날 엄청 고생한다는 걸 알면서도 밤을 새우고야 말았다. 아니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 페이지, 그다음 페이지의 내용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형사의 아이, 야기사와 준은 13살 중학교 1학년이다(초등학교 1학년이 코난보다는 나이가 많다). 열정적인 형사 아빠와 준은 혼자 산다. 아빠와 엄마는 이혼을 했다. 대신 가정부 하나 할머니가 준을 잘 보살펴 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쿄에서도 조용한 동네인 그곳에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도쿄 동부를 남북으로 흐르는 아라카와 천 하류 서쪽 기슭에서 흰 비닐봉투 두 개가 든 토막 시체의 일부가 발견됐다. 이와 비슷한 시점에 준이 살던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동네 강변에 위치한 단독주택에서 젊은 아가씨가 살해되어 마당에 암매장됐다는 것이다.
사건과 소문의 개연성을 찾고자 하는 준은 어느 날 밤 집 우체통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발견한다. 소문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자가 살인자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형사 아들답게 준과 절친 신고는 둘만의 본부(?)를 만들고 범인을 찾아 나선다.
진짜 형사인 준의 아빠와 다른 형사들은 토막 시체에 대한 실마리가 전혀 없어 난감하고 있을 때, 역시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토막 시체 찾았 네 다음은 히노데 자동차의 폐차 안' 이번에 찾은 토막 시체는 처음에 찾은 시체와 다르다. 즉, 죽은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다.
『범인은 먼저 피해자 B를 10월 초순에 살해해 고노스 시 교외 구릉지에 암매장했다. 중순경 피해자 A살해해 다카오카 공원에 암매장 했다. 그리고 아마도 11월에 들어 두 시신을 도로 파낸 뒤 A의 시신에서는 두부와 오른손 손목을, B의 시신에서는 두부, 왼발, 오른손을 가져 나와 각각 코스모 히가시오지마와 히노데 자동차 그리고 시노다 도고의 집 처마 밑에 버렸다. 그 그 장소를 알리는 편지는 경찰에 보냈다.(본문에서)』
토막 시체 사건은 형사 아빠가, 소문의 진상은 형사 아들이 맡아서 사건을 해결한다. 물론 아들보다는 아빠의 비중이 훨씬 높지만, 물보다 피가 더 진하다고 아들도 아빠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해서 소문의 진상을 밝혀낸다.
준은 소문 속 주인공을 만나러 간다. 유명 화가인 시노다 도고가 바로 그다. 막상 그를 만났는데, 그가 범인으로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럼 뜬소문일까? 그러나 소문과 사건이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기에 준도 아빠도 소문과 사건을 따로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소설 속에서 아빠와 동료들이 집에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 나오는데, 여기에 준은 당당히 참석한다. 어린이는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형사 아들답게 놀라운 추리력을 보이는 아들을 동료들과 아빠는 인정해준다. 아이라고 무시하면 절대 안 되겠다.
사건이 밝혀지는 전에 범인을 먼저 잡고 싶었다. 중간중간 범인임을 암시하는 복선도 있고, 더 이상 새로운 인물들도 나오지 않기에 범인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문 속 주인공 화가 할아버지부터 아무도 믿으면 안 되니깐 가정부 하나 할머니까지 인물 하나하나마다 놓치지 않고 나름 열심히 추리를 해나갔다.
이번에는 결코 작가보다 먼저 밝혀내리라, 그런데 결과는 먼저 찾아내긴 했다. 그러나 그 속에 반전이 있었다. 그 반전으로 인해 사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반전 속에 담긴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 순간, 와우~ 안 자고 읽기 잘했구나 했다.
처음부터 범인을 알려주고 시작하는 스릴러보다는 확실히 마지막에 범인이 누군지 밝히는 미스터리가 개인적으로 훨씬 좋다. 책을 읽으면서 혼자서 추리하는 재미도 있고, 내가 생각했던 부분이 다른 페이지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을 때 찾아오는 놀라움도 즐겁다. 더불어 범인이 밝혀지면 그동안 숨 막혔던 긴장감이 순식간에 풀리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 맞아, 나도 살짝 의심했었어하면서 찾아오는 묘한 쾌락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아쉬운 점은 내용을 다 공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영화 식스센스의 엄청난 반전, 그 걸 보기 위해서 영화를 기다리고 있는데, 먼저 봤던 사람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 "부르스 윌리스가 귀신이다." 절대 이런 사람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형사 아들이기 하지만 아직은 어린 준, 그러나 그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배정되고(높은 경감 아저씨가 직접 지시했다), 그는 아빠처럼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증거물은 절대 맨 손으로 만지지 않고 장갑을 끼는 센스와 작은 의심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밝혀내는 놀라운 집중력까지, '그래 너 형사 아들 맞아'라고 말하고 싶게 만든다.
다른 길이지만, 아빠와 아들은 결국 범인을 밝혀낸다. 준도 멋있지만, 형사 아빠도 참 멋진 듯… 1페이지부터 마지막 327페이지까지 글을 읽고 있지만, 한 편의 멋진 명탐정 코난 영화판을 본 듯, 늦은 밤 나만의 영화관을 그렇게 끝이 났다. 표지와 속지에 있던 사진, 놓치지 않고 유심히 봤으면 좋겠다.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됐지만, 엄청난 복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