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처음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먹은 날!! 그 날의 메뉴는 바로 떡볶이!! 그런데, 떡볶이가 떡볶이국이 되어 버린 날!!
떡볶이를 싫어하는 여자가 있을까? 그리고 다른 건 못 만들어도 떡볶이는 한 번쯤 다 만들어 먹어봤을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떡볶이가 하나의 당당한 음식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예전에는 길거리 음식으로 또는 불량식품으로 치부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난 길에서 파는 떡볶이를 먹을 수 없었다. 한번 먹고 호되게 배앓이를 한 뒤부터는 학교 근처에서 팔고 있는 모든 식품들을 먹지 못하는 참 어렵고 힘든 고행의 길을 가야만 했다. (엄마 말이 곧 진리였던 시절, 맞기 싫어서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부터 유난히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었다. 그러나 밖에서 파는 건 사 먹을 수 없으니,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부탁을 했다.
" 엄마, 나 떡볶이 먹고 싶은데......."
"그냥 밥 먹어!!"
"아니, 밥 말구 떡볶이, 떡볶이, 떡볶이....."
"이 년이~ 아침부터 바빠 죽겠는데, 무슨 헛소리야"
(폭력의 위험이 느껴졌지만, 굴하지 않고) "그럼 내가 해 먹어도 돼, 밖에서도 못 사먹게 하고, 내가 해먹을래"
"저 년이 또 고집을~~ 으이구, 그래라. 니가 해 먹을 수 있다면 해먹어라"
어~~ 엄마가 왜 저러실까? 절대 부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던 엄마가 나보고 직접 떡볶이를 만들어 먹으라고 하시네. 오늘 아침에 해가 서쪽에서 떴나를 확인하지 못한 나는 떡볶이를 먹고 싶다는 일념하에 과감히 부엌에 입성했다.
11살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그때 너에게 아이폰만 있었으면, 진짜 맛나는 최강 떡볶이를 해 먹었을 텐데라고… 그렇다. 부엌에 들어가서 보니,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여기서 못하게 된다면, 왠지 엄마한테 지는 거 같고 다시는 내가 뭘 해 먹을 수 없을 거 같기에 과감히 내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떡볶이를 끓인 냄비부터 찾아야 했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해 봤던 건 라면을 끓이는 정도여서, 떡볶이도 라면처럼 하면 될 것만 같기에, 노란 양은냄비를 꺼내 들었다. 그 냄비의 중간까지 물을 채우고 가스불에 올린 나는 떡과 그 외 필요한 양념들을 찾기 시작했다. 떡볶이 떡은 다행히 있었고, 양념은 고추장과 설탕 대신 왠지 이거 더 나을 거 같아서 물엿으로, 그리고 채소는 파와 양파로 모든 재료 준비를 맞췄다. 이때 내 옆에서 슬쩍 보던 엄마는 어이없는 웃음을 날렸지만, 난 왜 그런지 전혀 모른 채 냄비의 물이 끓기만을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어처구니없는 레시피구나 싶다. 정말 아이폰이 있었다면, 검색해서 완벽한 레시피를 찾았을 텐데, 그때는 단지 내가 먹어봤던 맛의 기억만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슬프게도 말이다.
생각보다 물이 너무 끓지 않자, 어느 정도 따뜻했다고 느낄 때, 모든 재료를 한 번에 쏟아 부었다. 참, 떡볶이의 핵심인 오뎅을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찾아, 떡볶이떡보다 더 많은 양을 같이 넣어버렸다. 그리고 뚜껑을 닫고 기다리면 다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 물이 펄펄 끓기 시작하자, 넣을 때 보다 2배 이상 커진 오뎅으로 인해 국물이 넘치기 시작했다. 순간 당황한 나는 불을 살짝 줄이고, 뚜껑을 열어 놓은 채 뒤적이면서 다 되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냄새가 제법 엄마 몰래 먹어봤던 떡볶이 모양을 갖추어 갔지만, 너무 많은 국물이 문제였다.
원래 내 계획은 걸쭉한 국물에 빨간 양념이 듬뿍 묻은 떡과 오뎅이었는데, 내 눈 앞에 있는 건 흡사 라면 국물처럼 뻘건 국물에 양념이 전혀 배이지 않은 떡과 너무 불어서 터질 거 같은 오뎅이 있었다. 10분 이상은 끓인 거 같은데, 왜 국물은 줄어들 생각을 안 하고 있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끓여야 내가 원하던 그 비주얼이 나올까 몰래 고민하던 차,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
"무슨 곰탕을 끓이니? 다 된 거 같은데, 아직 멀었어?"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잔소리는...'
그런데 아무리 아무리 끓여도 내가 그리던 비주얼의 떡볶이는 나오지 않고, 떡볶이국으로 존재의 상실이 되고야 말았다. 30여분을 혼자 고생하던 나는, 저걸 버리고 다시 만들어 볼까 하는 있을 수 없는 상상을 했지만, 스스로 매를 벌고 싶지 않은 나는 국으로 변한 떡볶이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한 입 먹어보라는 소리도 전혀 안 하고, 정말 맛있게 둘이 먹다가 둘 다 죽을 맛이지만, 절대 그러하지 않고 정말 맛있다는 표정으로 국물까지 남김없이 다 먹어 버렸다.
그리고는 다짐했다. 엄마에게 들키지 않고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자 하고 말이다. 그 날의 쓸데없는 직접 경험을 한 나는 성인이 된 후에도 한참 동안 떡볶이를 직접 만들어 먹지 않았으며, 최근에는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꼭 폭풍 검색으로 최고의 레시피를 구한 후 도전을 한다. 5~6번 정도 직접 만든 거 같은데, 매번 어릴 적 그때 먹은 그 떡볶이 맛이 나는 건 무슨 이유일까???
그래도 다행인건, 그나마 국이 되지 않는다는 점과, 절대 좁은 냄비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불어 이제는 양배추, 파, 김치, 라면, 돼지고기 등등 재료들도 풍성하고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내가 한 떡볶이는 항상 설명할 수 없는 부족한 맛이 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진실은, 꾸역꾸역 혼자서 다 먹는다는 점과 정말 둘이 먹다가 둘 다 죽을 맛이지만 절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궁중떡볶이, 해물떡볶이, 피자떡볶이 등등 다양한 떡볶이를 해먹고 싶다. 그런데 가장 기본적인 고추장 떡볶이도 못하면서, 난 너무 꿈이 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