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5학년 때 올드팝(old pop)을, 국민학교 6학년 때 헤비메탈을, 중학교 1학년부터는 일본음악(J pop)을 자의반 타의반 듣게 됐다. 밤마다 오빠 방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자동적으로 같이 듣기 시작하면서 또래 아이들보다 남의 나라 음악에 일찍 눈을 뜨게 되었다. 다양한 장르의 많은 노래를 일찍 알게 된 점은 참 좋았지만, 아쉽게도 노래만 알뿐 가수와 제목을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듣기 싫어도 들어야만 했기에. 매일 밤마다 오빠는 음악을 완전 크게 틀어 놓았고, 난 좀 줄이라고 짜증을 냈었다. 지금은 그렇게 해준 오빠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지만, 그때는 너무 싫었다. 오디오 기기를 못쓰게 망가뜨려 버릴까 고민도 했지만, 그런 내 맘을 알았는지 아니면 아끼는 차원에서 그랬는지, 오빠가 방을 비울 때는 오디오 장을 잠그고 다녔다. 중학생이 된 후부터는 오디오를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그 전까지는 어림 반푼도 없었다.
오빠만 소유했던 그 오디오 기기는 인켈에서 나온 것으로 라디오는 기본, LP를 들을 수 있는 턴 테이블에 테이프를 2개나 넣을 수 있는 더블테크였다. 100개 넘는 LP판에 500개가 넘었던 테이프까지, 오빠는 친구들끼리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하면서 매번 색다르고 다양한 음악을 밤마다 들었다. 나 역시 그 음악들을 같이 듣는 동지 아니 동지가 됐다. 몇 년전 컨츄리꼬꼬가 리메이크한 '오~마이 줄리엣'으로 시작하는 J-pop을 번안한 노래가 있었다. 난 이 원곡을 중학교 때 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일본어는 전혀 모르지만, 노래에서 계속 반복됐던 오 마이 줄리엣을 나도 모르게 학교에서 흥얼거리던 내게, 와일드한 친구(날라리^^)가 말을 걸었다.
"너도 거기 다니니?"
"………" (왜 내게 말을 걸지 하면서 쫄았다.)
"아니, 0000 아냐고?"
"아니 모르는데" (그니깐 거기가 어디냐고….)
"지금 니가 부르고 있는 그 노래가 요즘 000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노래거든"
그때야 알았다. 클럽을 말한다는 사실을.
"아 그래~"
"너도 거기 다니면 같이 가자고 하려고 했지. 이 노래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데, 니가 부르고 있어서 놀랬다 야~"
'나도 니가 나에게 말을 걸어서 더 놀랬다 이 친구야'
집에서 오빠가 들어서 알게 됐다는 말은 안 하고, 그냥 음악에 대해 아는 게 많은 사람인냥 거들먹댔다. 그러면서 속으로 가수 이름과 노래 제목을 뭐냐고 물어보지 말라고 기도하면서 말이다. 내 기도가 먹혔는지, 다행히 묻지 않았고 그 사건 이후로 그 녀석과 조금은 친한(?), 음악적으로 서로 교류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오 마이 줄리엣을 부르기 전까지는 내가 다가갈 수 없는 친구였는데, 노래 하나로 난 힘 좀 쓰는 친구랑 말을 터는 사이가 되었던 것이다.
올드팝과 일본 음악 그리고 헤비메탈까지 다양한 음악을 섭렵한 나는 가요보다 팝을 더 즐겨 듣고 좋아하게 되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중학생이 되자, 오빠의 오디오를 같이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직접 구입까지 하면서 듣기 시작하고, LP판을 아끼기 위해 테이프에 녹음하기 이르렀다. 오빠가 없을 때는 오빠 방이 내방이 되었지만, 오빠가 있으면 녹음한 테이프를 워크맨으로 들었다. 그때 많이 들었던 음악이 바로 영화 주제곡이었다. 자정이 지난 시간에 했던 영화음악 라디오 방송을 즐겨 청취하면서, 영화와 그 주제곡에 완전 빠지게 되었다. 1992년 가을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그렇다고 남의 나라 음악만 좋아하지는 않았다. 이문세, 이승철, 유재하, 김현식 등 좋아하는 한국 가수도 있었지만, 여전히 나의 선호는 팝이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노래를 물론 가수, 제목까지 달달 외우게 만든 이가 나타났다. 바로 미국 5인조 아이돌 그룹인 New Kids on The Block이다. 우리나라 콘서트 문화의 일대 혁명을 몰고 왔던 그들에게 난 완전 빠져버렸고, 후렴부만 흥얼흥얼 따라 부르던 내게 전곡을 다 따라 부를 수 있는 능력까지 갖게 만들어 주었다. 1992년 그들의 콘서트 실황은 다음번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암튼 서태지가 나오기 전까지 난 뉴키즈 온 더 블록의 빠순이었다.
성인이 된 후, LP음반을 들을 수 있는 곳을 종종 가게 되었다. 메모지에 원하는 노래 곡목을 써서 주면, 음반을 틀어주는 곳으로 다분히 아날로그 적인 공간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듣고 싶은 노래를 직접 쓰지 못했다. 같이 간 지인에게 노래 후반부를 들려주면서 이 곡 제목이 뭐죠 라고 물어봐야 했다. 이유는 하나, 여전히 노래는 아는데 가수와 제목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음악만 들었던 버릇이 지금까지 지속됐는지 커서도 가수와 곡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긴 잘 기억했다면, 영어의 달인이 되어있겠지. 그게 누 군든 듣는 것만 좋아했던 나. 서태지의 등장으로 팝을 멀리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요보다는 팝이 좋다. 왜냐고 음악을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할 때, 따라 부르기 편한 가요보다는 따라 부르기 조금은 어려운 팝이 집중력을 높이는데 좋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이폰에는 100곡의 한국인이 좋아하는 올드팝과 100곡의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음악을 담고 다닌다. 백만 번도 더 들었던 음악이지만, 들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고 그때의 추억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대학로, 신촌, 홍대, 압구정 등 직접 음악을 신청하면 틀어주는 LP 음반 카페는 어릴 적 그때 추억과 아날로그를 여전히 좋아하는 나에게, 참 따뜻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