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일기
치과에 들어오자마자 내 assistant 한테 불만을 토로한 환자가 있었다. 환자는 나와 잠깐 마주치고 assistant 한테 따로 얘기를 했다. 또 동양인 의사라고 실망감과 불쾌함을 표현하면서 여태까지 여러 치과 다녔던 곳들 다 안 좋은 경험을 했는데 죄다 동양인 의사들이었다고. 나를 보자마자 바로 치과를 뛰쳐나가고 싶었다고. 다행히 (?) 내 assistant는 백인이었고 환자 소통에 매우 능숙한 간호사 출신이었다. 환자 이야기를 침착하게 다 듣고 나에 대해서 설명을 하며 어느 정도 안정은 시킨 듯했다. 내가 본격적으로 환자를 보기 전에 내 assistant는 상황을 성명해 주었고 나는 살짝 혼란스럽고 긴장한 마음으로 들어갔다. Assistant는 환자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상태가 좋지 않은 이 딱 하나만 치료받길 원하며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진단을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밝게 인사를 하며 환자를 보았고 처음부터 실수 아닌 실수를 하였다. Assistant 한테 어떤 이 가 문제인지 미리 다 듣고도 "어떤 일로 오셨어요?"라고 물어본 것이다. 그러자 환자는 assistant 한테 다 들은 거 아니냐 라고 쏘아붙였다.
그렇게 험난한 첫 대화를 마치고 엑스레이를 찍기로 했다. 긴 대화와 진단 끝에 신경 치료한 이가 반으로 갈라졌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를 뽑기로 결정하였다. 결정하기까지 많은 말과 그림도 그려가며 쉽지 않은 절차였다. 환자는 최대한 이를 살리고 싶었고 나는 거의 90% 살릴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기에 이가 얼마나 깊게 갈라졌는지 더 확인하고 싶다면 filling을 drill out 해서 진단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절차는 얼마인지 환자가 물어봤고 나는 오늘 exam fee에 포함이 된다고 했다. 그러자 환자는 또다시 되물었다, 아니 그 절차를 하는 것이 얼마나 더 드냐고. 난 또 한 번 따로 드는 비용은 없고 exam fee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환자는 assistant를 바라보며 똑같은 질문을 했다. Assistant 도 나와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제야 환자는 “아 내가 못 알아들은 거였어?”라고 하며 넘어갔다. 이런 류의 대화 끝에 드디어 뽑기로 결정하였고 한참을 동의서에 적힌 내용을 읽고 sign 하였다.
환자는 치료받는 것을 매우 무서워하는 성향까지 있어서 여러모로 참 어려운 환자였다. 심지어 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신경 치료했던 이 여서 부서지기 쉬운 상태였고 이미 두 동강이 난 치아였기에 뽑는 과정에서 부서지고 말았다. 치료하는 내내 assistant 손을 자국이 날 정도로 꼭 붙잡고 있었고 간간히 쉬어가야 했다. 그리고 옆에 이가 같이 빠지거나 조금이라도 내 forceps가 윗니랑 부딫이면 부서질까 봐 계속하여 걱정하였고 나는 계속하여 안정시키고 유머러스하게 넘겨보았다. 울다 웃다를 반복하며 안절부절못하는 환자를 보며 속 끓이고 있는 끝에 드디어 이가 나와주었다. 속으로 난 축제를 부르며 폭죽을 터트리고 자세히 post op instruction을 알려주었다. 끝끝내 assistant 한테는 수고했다며 고맙다고 인사하였고 나한텐 별 말 없었지만 front desk에 나가서 환자의 소감은 “It was okay” 였다고 한다.
치료를 무사히 끝마치고 별일 없이 마무리된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무언가가 착잡하고 언짢은 느낌이 들었지만 생각보다 심하게 기분이 나쁘거나 화나지 않았다. 일할 때는 내 감정의 스위치를 꺼서인 걸까 종종 있는 불쾌한 일들에 무뎌져서 인 것일까. 아니면 어느 정도 환자의 입장을 이해해서 인 것일까. 내가 살짝살짝 엿볼 수 있는 환자의 치과 의사에 대한 증오심 원인은 본인 얘기는 들으려 하지 않고 비싼 치료만 권한다는 생각 때문인 거 같았다. 환자가 매우 열을 내며 내게 들려준 이야기 중 하나는 예전에 봤던 치과의사가 환자의 부서진 이를 보더니 발치하고 수천 달라 들여서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거였다. 환자는 가격에 충격받았고 게다가 최대한 이를 잃고 싶지 않았다. 내가 발치한 이 옆에 있는 치아였고 내가 보기엔 발치하지 않아도 다른 방법이 가능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이렇게 설명을 해주고 물론 그중 임플란트가 최선의 치료이기에 그것을 권한 것일 거다 라고 얘기했지만 환자는 그 당시 의사를 기다리는 동안 티비 속에 의사 가족사진이 배경으로 비쳤는데 그중 호화로운 곳곳을 다닌 가족 여행 사진을 보았다고 하면서 그 의사에 엄청난 증오심을 표현했다.
이러한 시선 사실 낯설진 않다. 환자의 best interest를 위한 게 아닌 의사의 이익을 위한 치료. 몇몇 bad apple 때문에 깨진 믿음. 이해도 가고 참 안타까울 뿐이다. 난 그런 치과 의사 아닙니다 라고 이름표 붙이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생기는 믿음도 아니고. 내 행동과 말 그리고 그저 나 인 모습으로 진심은 통하길 바라며 계속 환자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