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채물감 Jul 16. 2020

쉬어가기 위한 것이었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6개월을 쉬기로 하였고 그 6개월이 꽤 길 줄 알았다. 더구나 생각지 못한 코로나 사태로 바깥출입을 확 줄여야 하는 상황이니 체감 기간은 더 길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은 금세 지났다. 이제 1개월 남짓 남았다. 복직을 해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그동안 나는 무얼 했을까. 아무것도 안 했다.


본래 휴직의 이유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때문에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다니,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안 할 생각이었을까.


사실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출근을 하지 않고 싶었다. 출근 때문에 못해봤던 것들을 하고 싶었다. 주말에 원데이 클래스로만 체험해 보았던 도자기 핸드프린팅을 꾸준히 한다거나(우습지만 클래스를 서너 번 하면서 아예 퇴직을 하고 핸드프린팅 수습직원으로 들어가 나중에 지점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었다), 대학의 평생교육원이나 구청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체험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보고, 근교 경치 좋은 곳의 맛집을 찾아 부모님을 모시고 식도락 여행을 하고, 아이들의 방학에 맞춰 휴가 눈치 보지 않고 2주짜리 유럽이나 남미 여행을 하는 그런 것들을 상상했다.

그러나 수술 후 회복기간은 예상보다 길었고, 코로나 19라는 복병은 공원 산책 외에는 사소한 외출도 꺼리게 만들었다. 아이들의 온라인 등교가 계속되고 세 끼 밥상 차리기가 하루의 큰 일과였다. 장보기도 웬만하면 온라인 주문을 선택하였다. 그렇게 3개월을 보내고 어느 날 휴직기간의 절반을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흘려보내버렸다 생각하니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베이킹이며, 천연비누며, 재봉틀이며, 집 근처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찾아 하기 시작하였다. 미리 계획했던  종목들은 아니지만 평소 해보고 싶었던 것이기도 했다. 나의 지나친 염려가 스스로를 과도하게 집안에 가두었다는 후회가 한꺼번에 밀려왔던 때문일까. 1:1이 가능한 수업으로 위험도를 낮추면서 마스크를 단단히 챙기고 한 달 여 동안 나름 부지런히 움직였다.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아니면 정말 쉬는 동안 내게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란 불편한 마음이 더 커서인지 통장의 잔고는 외면하였다.


그러다 갑작스레 또 다급해졌다.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나 뭔가 내 손안에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어서다. 이를테면 자격증 같은 것. 자격증에는 돈이 들었다.  당장 그것으로 창업을 할 것이 아니라면 굳이 큰돈을 들여 그 자격증을 취득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뭔가 아쉬운 기분이 진정이 되질 않았다. 휴직 직후 바리스타 자격증을 알아보다가 같은 이유로 마음을 접었던 기억이 났다. 취미로 수업을 듣기에는 수강료가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곧바로 써먹지 못할 기술을 배워서 묵힐 것이라면 그것은 낭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는 수강료를 결제하고 말았다. 저지르기 쉽하필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가까운 위치에 그곳이 있다. SCA(Specialty Coffee Association) 국제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곳이다. 미국과 유럽의 커피협회가 통합한 세계적인 커피 자격증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자격증이라 한다. 국내 서마저 쓸 일이 있을까 싶으나, 어차피 국내 자격증이 모두 민간 자격증이니 이왕 하는 거 글로벌하게 해 보기로 했다. 강사님은 각종 커피 대회 심사도 하는 분이고 상당히 자부심이 있어 보인다. 타 지역에서까지 찾아와 수강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돈을 들인 만큼 얻는 것이 있겠지. 다음 달 시작할 바리스타 수업을 생각하며 괜히 했나 싶은 후회가 밀려오려는 것을 다독인다. 효율과 만족은 나중에 생각하자. 그것이 지금의 내 마음이 평화로운 길이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제대로 배울 기회임에 의미를 두자. 커피를 좋아한다고만 하기에는 커피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지 않은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고 했으니 이제 곧 나는 좀 더 커피를 잘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 커피 좀 하는 사람이어 보자.


실은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의 맨 처음에 글을 쓰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매일 쓰자는 결심은 얼마 가지 못했다. 쓰다 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정리가 안되고 횡설수설이었다. 그래서 처음의 제목은 지워지고 어울리는 제목조차 찾지 못했다. 3일, 5일, 7일이 지나도 한 편을 완성하지 못했다. 점점 글감을 찾기도 어려워졌다. 더불어 의욕도 떨어져 갔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글은 써지지 않으니 다른 데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내 속을 쏟아내면서 내 공허한 마음을 채워보고자 하였던 것인데 다시 또 제자리인가 보다.


문득문득 복직 후의 모습이 그려지면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직 돌아갈 준비가 안되었다. 다시 싸울 준비가 안되었다. 어쩌면 그런 준비 따위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잠시 쉬었다가 가고 싶은 것이었을 뿐, 다시 같은 길 위에 섰을 때 그동안 쉬었으니 불평하지 말라고 그저 그 이유가 필요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괜찮다. 뭐라도 해야 되어서 나를 괴롭히지 않아도 된다. 지금 주어진 휴식에 그런 부담까지는 제발 얹지 말도록 하자.


작가의 이전글 방심은 금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