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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채물감 Jul 16. 2020

방심은 금물

역시 방심은 금물이고 자만은 화를 부른다. 40센티 너비의 3단 수납장 하나를 조립하면서 몇 번을 조였다 풀었다 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처음 해 본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온라인 주문한 조립 반제품 수납장 두 개를 배송받아 어젯밤에 한 개는 이미 조립을 완성하였다. 똑같은 모양의 합판들 중에 상판은 어떤 것인지, 중간에는 어떤 것이 들어가야 하는지, 바닥은 또 어느 것인지 몇 개 되지도 않는 판자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신중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단 한 번에 모든 조각을 맞추어 30분 만에 조립을 완성하였다. 전동드라이버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을 뿐 뭐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난하게 완성시킨 수납장을 보니 스스로 대견하고 뿌듯했다. 하지만 나사를 조이느라 드라이버를 수없이 돌려댔더니 금세 피곤해진 저질 체력으로 나머지 한 개는 다음으로 미루었다.


그리고 오늘 남은 한 개를 조립할 차례였다. 시작할 때는 어제 한 번 해 보았으니 이번엔 좀 더 빨리 완성할 것이라 내심 기대했다. 모든 게 착착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둘째 칸 뒤판을 끼우려다 보니 아래칸 뒤판이 뭔가 이상하다. 뒤쪽으로 향해야 할 거친 면이 안쪽으로 향해 있다. 반들반들한 면이 앞으로 오도록 선반 나사를 다시 풀고 뒤판을 제대로 돌려서 끼웠다. 세 개를 전부 잘못 끼운 것이 아닌 게 어디냐. 다시 힘을 내서 나사를 조였다. 바닥판부터 중간 칸막이까지 모두 조립을 하고 마지막으로 상판을 위에 딱 얹었더니, 어랏, 상판에 왜 홈이 파여 있는 것이지. 선반 안쪽에 대는 뒤판을 끼우는 홈이다. 이 판자는 상판이 아니고 중간판이었던 거다. 이런이런, 중간에 끼운 판자 두 개를 다시 풀어야 했다.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왜 이걸 못 본 거지? 어쩔 수 없이 나사 8개를 풀고 다시 조였다. 나사 하나를 조일 때마다 어디 틀린 곳이 없나 몇 번을 다시 보았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점점 손에 힘이 빠졌다. 손바닥이 아프기 시작했다. 가운뎃손가락 아래쪽 손바닥에 동그랗게 물집이 잡혔다. 이미 나사 세 개째부터 전동드라이버가 간절했었다. 드르륵 1초만 돌리면 될 것을 나는 손에 드라이버를 들고 20회 이상을 돌려야 했다. 그러기를 수십 번,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분명 어제는 한 번 조인 나사를 다시 풀 일이 없었다. 처음부터 꼼꼼하게 살피고 위치를 정확히 파악한 후에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어제 한 번 해 본 경험이 있으니 오늘은 문제없다 생각했다. 대충 보고 이거네 하면서 곧바로 나사를 조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방심이었고 자만이었다. 바닥판은 문을 여닫을 때 필요한 자석 부착 구멍이 없고, 상판은 뒤판을 연결할 홈이 없다. 중간 선반들도 자석이나 문을 연결할 때 쓰이는 구멍들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해서 달아야 하며, 문짝은 손잡이 위치도 확인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며 제대로 조립을 했어야 한다. 아니,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한 줄 알았다. 대충 했을 뿐. 어려운 거 없다고, 그까짓 거 대충 이렇게 하면 되지 뭐 하는 식이었다. 그 결과 나는 나사를 여러 번 풀어서 다시 조여야 했다. 시간은 배로 걸리고, 안 흘려도 되는 땀과 짜증을 흘렸다. 그리고 생길 일이 없었을 물집까지 얻었다. 허리춤밖에 안 되는 수납장 하나 조립하는 것이 손바닥에 물집까지 잡힐 일인가.


이래서 아무리 쉽고 간단한 일도 만만히 보고 대충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매일 조립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그저 한 번 해 보았을 뿐이면서 별로 볼 것도 없다 방심하였고, 이것쯤은 쉽게 만들어낼 거라 자만하였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했거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을 실감했다. 모든 문제는 방심에서 시작됨을 모르지 않는다. 그 사소한 진리를 자꾸 잊어버린다. 그것이 곧 방심이며 자만이다.


잘못되었으면 풀고 다시 끼우면 되는 수납장이어서 다행이다. 사소한 방심이 때로는 간단히 해결되지 않는 큰 화를 불러오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오늘 또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모든 일에 정성을 기울이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이 다짐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까지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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