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어?”
사춘기가 되면서 수가 가끔 이렇게 물었다. 지금은 아빠에게 잔뜩 불만인 상태에서 도대체 왜 아빠가 아빠인 거냐는 물음이다.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 질문이 들어온다.
“아빠 사랑해?”
대답이 또 안나온다. 부부가 한 20년 살다 보면 의리로 산다 했던가. 내가 지금 남편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 사이 질문이 하나 더 들어온다.
“아빠 사랑해서 결혼한 거야?”
“당연하지, 사랑하니까 결혼했지.”
“아빠가 이런 줄 알고도 사랑한 거야? 엄마한테는 안 그랬어?”
남편은 다혈질이다. 우리네 부모님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시부모님은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 좋은 것이 있으면 하나 있는 아들을 먼저 챙기며 귀하게 키우셨고 집안 대소사에도 모두 아들의 의견에 따랐다. 1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나 장남으로서 대접을 받고 자란 남편은 가부장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무시를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참을 수 없다. 자식이 아버지에게 짜증을 내면 무례한 것이고 그것은 아버지가 무시당하는 것이다. 화를 내고 말이 험해진다.
점심을 먹으면서 수의 말투가 맘에 들지 않은 것으로 아빠는 수를 지적했고 수는 아빠가 먼저 기분이 안 좋게 했다며 말대꾸를 했다. 혼내는 아빠, 툴툴거리는 딸, 짜증 낸다고 화내는 아빠, 짜증 낸 거 아니라고 대꾸하는 딸..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겨우 진정시킨 후 두어 시간이 지났다. 창문을 모두 열어놓아 바람이 부는 중에 방문이 쾅 세게 닫히자 수가 일부러 그런 것으로 오해한 아빠가 버럭 했다. 수는 바람 때문에 그런 거라고 날카롭게 대꾸를 했다. 또다시 큰소리가 났다. 고의든 바람 때문이든 네가 문을 닫으면서 쾅 소리가 났으니 실수한 것이라 몰아붙이는 아빠와 억울해하는 딸, 둘은 또 시작이다. 나는 수에게 예쁘게 얘기해야지 다시 한번 타일러 가며 아빠에게서 수를 떼어놓았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수는 나가고 없었다. 아직 학원 시간이 많이 남았다. 전화를 해 보니 독서실을 간다 했다. 독서실에 갔다가 학원에 가고 저녁도 편의점에서 먹고 다시 독서실을 가겠다 했다. 아빠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다. 남은 식구들과 저녁을 일찍 마치고, 나는 수의 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갔다. 퉁퉁부은 얼굴의 수를 데리고 분식집에 가서 밥을 시켰다.
“결혼하기 전에는 안 그랬지. 그런 줄 알았으면 결혼했겠니”
그렇다. 남편이 한 성질 하는 것이야 알았으나, 불의와 부당함에 맞서는 당당함으로, 곤란한 상황을 해결하는 믿음직함으로 여겼다.
“아빠 내일 새벽에 가실 건데 이래도 되겠어?”
남편의 직장은 구미에 있다. 월요일 아침 6시에 나가면 금요일 밤에 집에 온다. 일찍 일어나서 3시간을 운전해 가야 하니 일요일 밤에는 11시쯤 일찍 잠자리에 든다. 수가 독서실에서 자정 넘어 돌아오면 아빠를 금요일에나 만날 것이라 이렇게 아빠를 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다.
“아빠 보기 싫어. 12시에 갈 거야.”
“아빠 지금 다 풀렸어. 아빠랑 인사하고 자는 게 낫지 않아?”
“싫어. 이제 아빠랑 절대 얘기 안 할 거야.”
아빠와 싸우고 나면, 아니 아빠한테 혼나고 나면 항상 이렇게 다시는 아빠랑 말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또 아빠를 부르니, 다행인 일이다.
“아빠가 무엇 때문에 화내는지 너도 잘 알잖아. 아빠는 예쁘게 말하기만 하면 화 안 내.”
“또 나 때문이야? 내가 잘못한 거야?”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예쁘게 말하는 것이 어려운 거 엄마도 알아. 하지만 대화하는 데도 기술이 필요해.”
“엄마도 말했잖아. 아빠는 안 바뀐다고. 아빠는 하나도 노력을 안 하는데 왜 나만 노력해야 해”
“아빠도 노력할 거야”
“노력할 거야? 그건 안 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아차, 또 실수했다. 수와 얘기할 땐 단어 선택을 잘해야 한다.
“아니 아빠도 노력해.”
“아빤 안 하는 거 같은데?”
“엄마가 너한테만 노력하라고 말하는 것 같아? 엄마는 아빠한테도 얘기해. 너랑 얘기하는 것처럼 아빠한테도 화내지 말고 차분하게 예쁘게 말하라고 얘기한다고.”
“아빠한테도 진짜 얘기해?”
“당연하지. 아까도 얘기했어. 아빠도 너랑 이렇게 싸우고 나면 기분 안 좋아. 아빠도 안 그러려고 하는데 화가 나면 조절이 잘 안 되는 것뿐이야. 그리고 아빠가 어른이니 네가 공손하게 말하는 것이 또 맞는 일이고.”
감수성 예민한 수는 별 뜻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고,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을 끝없이 곱씹으며, 상대방이 진심을 알아주지 못할 때 한없이 슬퍼한다. 부모에게도 한 인간으로서 동등한 존재로 존중받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웬만해선 설득이 잘 되지 않는 아빠와 대화할 때는 자주 상처를 받는다.
근거가 조금 부족하고 다소 감정적인 주장이라 할지라도 딸의 생각을 그대로 이해해 주면 좋을 것을, 아빠는 아이들과 대화할 때도 사실관계를 따져가며 열을 올리기 십상이다. 중2병이 시작되고부터 그런 아빠가 줄곧 못마땅한 딸과 그 못마땅함이 표정과 말투에 드러날 때마다 흥분하는 아빠, 두 사람이 대면할 때마다 나는 늘 아슬아슬하다. 기분 좋게 이야기를 하다가도 별 거 아닌 것으로 금방 큰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아까도 수가 말없이 나가버리고 나서 남편에게 한마디 했다.
“아니 애한테 조곤조곤 이쁘게 좀 말하면 안 돼? 애랑 그렇게 한 바탕 하고 이기니까 좋아?”
“이기긴 뭘.... 나도 그러고 나면 기분 좋겠냐. 근데 한번 성질이 나면 나도 잘 주체가 안되니까 그러지.”
“수는 엄청 예민한 애야.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도 상처받고 금방 다운 되는 애라고. 애가 기분이 안좋으면 짜증도 내고 그럴 수 있는 것이지 그걸 안 받아줘?”
“저 녀석이 끝까지 제 억울한 것만 생각하잖아.”
“수 입장에서는 충분히 억울할 수 있지. 창문 다 열어놓으면 방문 살짝 닫아도 쾅 닫힌다고.”
“그래서 내 잘못이라는 거야?”
어쩜 이렇게 수와 똑같은 반응인 것이냐.
“말 좀 이쁘게 하라는 말이야. 애들만 예의 지켜야 하는 거 아니잖아. 부모도 애들한테 지켜야 할 것이 있는 거지.”
“어릴 땐 안 그랬는데 중2 때부터 그러더니 지금까지 그래. 사춘기 때야 사춘기라 그런가 보다 하지. 저렇게 컸는데도 똑같아. 아빠가 멀 해도 다 맘에 안 드는가 봐.”
“아직 안 컸어. 아직 애야. 아직 크고 있는 중이라고. 그리고 지금 스트레스가 더 많을 때잖아. 나는 10년 넘게 애들 짜증 받아주고 있어, 엄마랑 아무 상관없는 짜증까지 다 받아주는데. 아빠는 그거 좀 못 받아줘?”
“엄마랑 상관없이 짜증을 내?”
“뜻대로 안 되면 다 엄마 탓이지. 그렇게라도 탓하고 싶을 때도 있는 거야.”
“그런다고 엄마한테 짜증을 내”
“그럼 누구한테 내겠어, 엄마한테 내지. 엄마가 안 받아주면 누가 받아주겠어.”
남편이 민망한 듯 웃는다.
사실은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은 더 많았다. 아이들이 재미없어하는 이야기를 끝도 없이 풀어내는 것, 멈춰야 할 때를 모르고 아까 말한 것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첨언 첨언하는 것, 그리고는 시큰둥한 리액션에 서운해하는 것, 다른 의견을 말하면 그럴 수도 있다가 아닌 그건 잘못된 것이라며 더 대화하고 싶지 않게 하는 것, 본인은 의견을 말하는 것일 뿐 화를 내는 게 아니라지만 상대방은 화를 듣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 실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다 내가 흥분하게 될지 몰랐다. 말로는 남편을 이길 수 없다. 남편은 서로 생각이 다를 때 어느새 목소리가 커지고 근거를 따지고 들며 감정적인 부분은 무시한다. 나는 할 말이 없어진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내가 남편과의 대화를 포기하기 시작하면서 싸움이 될 것 같으면 그냥 참아버리는 것으로 해결을 한 것이 어쩌면 지금의 남편과 수 사이에 생긴 갈등의 배경이었을지 모른다. 싸우더라도 끝까지 대화를 하였다면 남편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수에게도 좀 더 온화한 아빠가 되지 않았을까... 이렇게 후회하는 와중에도 가능성은 희박하게 느껴지는 것이 더 문제이다. 이렇게 나도 하지 못하는 걸 수에게 요구하다니 내가 잘못하고 있는거다.
아빠에게도 노력하라고 얘기한다는 말에 수의 기분이 조금 풀어진 듯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아빠가 잠든 후에 들어오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나 옛날에는 아빠가 막 화내면 좀 무서웠거든? 근데 지금은 아빠가 무섭진 않아.”
“안 무서워?”
“어, 하나도 안 무서워”
“그럼 울지나 말지.”
“무서워서 우는 게 아니고 하고 싶은 말을 다 못 해서 눈물이 나는 거야. 할 말을 못 하니까. ”
“너 하고 싶은 말 다 하면 아빠 주먹 날아간다”
웃자고 한 소리였으나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러니까.. 주먹까진 아니더라도 아빠가 화나서 물건이라도 던지고 그러면 우리집 완전히 개판 되는 거잖아. 그래서 참는 거야.”
개판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는 어색한지 손으로 입을 가린다. 나는 풉 웃음이 났다.
“우리집 개판 될까봐 참았어?”
센 아빠를 주어 미안하다. 왜 나의 아빠 같은 아빠를 구해 주지 못했을까. 나의 아버지는 아주 다정하고 자상하신 분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혼난 기억이 한 번도 없다. 아버지가 누구를 비난하거나 욕을 하시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늘 나의 기분을 살펴주고 달래주고 나를 믿어주셨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다 그런 줄 알았다. 나의 남편이 나의 딸에게도 그런 아버지이길 바랬다.
상대가 흥분하더라도 평정을 유지하며 침착함으로 때로는 위트나 애교로 대화를 원만히 이어가는 기술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한 기술이 미비하나마 내 안에도 장착이 되어 있긴 하지만, 그것은 남들과의 대화에서나 조금 발휘될 뿐 남편에게는 무용해진다. 나는 남들보다 더 사랑받고 이해받아야 하는 존재인데도 남보다 더 하찮은 대접을 받는 것 같은 서운함과 분노가 앞서기 때문이다. 가까워서 허물이 없어지나 때로는 그것이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하는 이유이다.
아빠와 딸은 서로 사랑하지만 또 서로 상처를 준다. 끝내는 용서하고 이해하게 될 줄 알지만 그 과정에 서 있는 나는 몹시 불편하다. 서로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으로 원망을 사고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해 근심은 계속 쌓인다. 게다가 엄마라면 무조건이었던 둘째는 올해 중2가 되면서 슬슬 반항이 시작되고 있다. 중이병은 참으로 신기하다. 엄마가 갱년기가 곧 올 텐데 너희들 사춘기라고 엄마 힘들게 하면 엄마 어떻게 될지 모른다 협박을 해본다. "엄마 안돼... 우리가 잘할게" 착한 딸들은 엄마 손을 잡으며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릴 다짐을 한다.
사랑하는 딸들에게 현명한 엄마이고 싶다.
정말 슬기로운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