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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채물감 May 28. 2020

레몬케이크 한 조각의 힐링

힘들 땐 달달하게

기분이 꿀꿀할 때는 달달한 케잌 한 조각이 생각난다. 달콤한 케이크를 한입 먹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달래지고, 거기에 진한 아메리카노를 곁들이면 잠시나마 피로가 사악 사라지는 것 같다.

게다가 예쁜 케이크는 맛이 더 좋다. 예쁜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맛좋은 케이크를 예쁘게 만들었는지, 예뻐서 맛있는지는 모르겠다. 부터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하지 않나. 보기좋게 예쁜 케이크는 가격도 더 나가기 마련이라 가격만큼 맛있어야 한다는 세뇌에 의한 것일 수도..      


얼마 전 동네 앞 식당골목을 지나다 보니 까페가 새로 생겼다. 외부가 화이트 톤으로 아주 깔끔하여 기분이 좋았다. 내부는 다소 비좁아 테이블이 3개밖에 되지 않았다. 커피를 주문하면서 주문대 옆에 진열된 케익과 마카롱도 몇 개 주문하였다. 젊은 사장님은 베이킹 수업에 더 비중을 두다 보니 앉을 곳이 좁아 미안하다 했으나, 베이킹 수업을 한다는 말에 나는 아주 반가웠다. 언젠가 집에서 케이크를 한 번 구워보겠다고 박력분과 바닐라에센스를 사다 놓았는데 막상 엄두가 나지 않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던 차에, 원데이클래스가 있다 하니 이게 기회다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원데이클래스 수업날이었다. 베이킹에 관한 지식은 전혀 없이 그저 한 번 내 손으로 빵을 구워보고 크림을 얹어보겠다는 단순한 호기심에,  평소 좋아하는 레몬케잌을 요청했다. 약속시간에 도착하니 재료들이 촤르륵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제누아즈를 반죽하여 굽고 레몬크림을 만들어 빵 사이 샌드를 하고 생크림을 휘핑하여 아이싱을 하였다. 크림이 샌드된 빵의 윗면과 옆면을 크림으로 발라서 덮는 아이싱 작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끝나고 나니 4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선생님은 처음하는 사람 안같이 아주 잘한다 칭찬을 해주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칭찬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고 기분이 좋았다. 아이싱 작업에서 많이 헤맸지만 내가 생각해도 처음 치고 좀 잘 한 듯하다. 내 것은 케이스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가고 선생님이 만든 것으로 커피와 함께 시식을 해 볼 예정이었으나, 어느새 오후 두시 반이라 둘째아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혼자 여유 부릴 수가 없어 시식은 생략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는 머리속에서 저울을 사야겠군, 휘핑기를 새로 살까, 돌림판을 구입해볼까 하며 홈베이킹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깍지로 하는 생크림 장식까지는 배우지 못했으나, 혼자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선생님의 현란한 아이싱 기술을 떠올리며 좋아하는 것이 직업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또 하면서, 케이크가 좋아 케이크를 구우며 까페를 하는 사장님을 부러워하면서 말이다.


코로나로 개학이 계속 연기되었다가 오늘 첫등교를 한 첫째를 기다렸다가 함께 먹어보았다. 모양은 어설프지만 맛은 참 좋았다. 촉촉한 빵 사이 상큼한 레몬크림, 내가 직접 아이싱을 해서인지 평소같으면 느끼하다 했을 아이싱 크림까지 맛나게 느껴졌다. 4시간 서서 집중하느라 아팠던 다리도 낫는 느낌이다. 이렇게 오늘 당충전이 완료되었다.      


힘들 때 당떨어졌다며 단 것을 찾는 것은 근거가 있는 말이다. 실제로 당은 뇌의 주요 에너지원이라 두뇌활동을 많이 하고 나면 뇌가 에너지원을 얻기 위해 식욕을 자극해 당 섭취를 유도한다고 한다. 그러니 피곤하고 지칠 때 달콤한 것이 당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옛날에는 설탕을 약으로 쓴 예들도 있다. 십자군 전쟁 때는 의사들이 부상당한 환자에게 설탕 한 스푼을 먹이는 것으로 응급처치하였는데, 설탕을 먹은 환자들은 잠시 원기를 회복한 듯 힘이 나고 평온해짐을 느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설탕이 임금의 자양강장제로 쓰였고, 동의보감에는 설탕의 효능을 심장의 열로 인해 입이 바짝바짝 마를 때 쓰인다고 나와 있다 하니, 귀하게 쓴다면 분명 신통방통한 약이다. 지금처럼 당이 넘쳐나는 시대에서는 독이 되어 당섭취를 줄이느라 애를 쓰고 있지만, 어깨가 무너질 것처럼 몸이 지치고 힘들 때 설탕이 가득 들어간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의 힐링은 포기할 수 없다.       


무엇이나 처음은 부족하지만 정이 깊은 법이라, 어딘가 모자란 내 레몬케이크를 예쁘게 찍어 핸드폰 사진첩에 고이 남겼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손바닥만한 케이크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와 작업이 만만치 않아 이러니 사먹고 말지 하는 생각이 잠깐씩 들었었다. 더구나 이 수업에선 재료준비와 뒷정리는 내 몫이 아니라, 이 모든 걸 내가 집에서 다 한다면 일은 두 배가 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사진을 보면서 달콤함의 힐링이 내 손으로 다시 탄생하기를, 집에서 구울 다음 작품이 핸드폰 갤러리에 꼭 담기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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