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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채물감 May 26. 2020

어쩌다 만보

하루 구십 분 걷기

남편이 하루 만보 걷기를 시작했다. 일요일인 어제는 아침 7시에 일어나자마자 공원으로 나가더니 한 시간 반 동안 공원 일곱 바퀴를 돌고 땀을 줄줄 흘리며 들어왔다. 그런데도 아직 8천 보라며 기어이 만보를 채워야겠단다. 저녁을 먹고 이번엔 함께 나가서 걷기로 했다. 한참을 걸으면서 아무래도 어플이 걸음수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공원 한 바퀴 거리가 1킬로미터는 넘을 텐데, 180센티미터 신장의 남편 보폭을 70센티로 잡았을 때 한 바퀴 1 킬로미터면 1428걸음이니 7 바퀴면 만보가 나온다. 남편은 뭔가 한참 잘못되었다며 억울해했다. 스마트폰 어플이 나오기 전엔 삐삐(호출기)처럼 생긴 만보계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는데 실제 걸음보다 적게 측정이 된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다. 그렇다면 이 어플도 그렇게 뭔가 측정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 아닌가. 어플 숫자는 작아도 사실상 훨씬 더 많이 걸었으니 된 것이라고, 만보 숫자가 기록된다 해서 무슨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닌데 그게 뭐 억울것이 있느냐 핀잔을 주었다.

 

남편에겐 별 거 아닌 만보에 집착한다 코웃음을 쳐놓고 오늘 스마트폰에 만보계 어플을 깔았다. 그까짓 만보  나도 한번 걸어보겠다고 만보계를 실행하고 집을 나섰다. 집 앞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넜더니 벌써 500보가 넘었다. 금방인데? 본격적으로 공원에 들어서서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힘을 빼고 걷지만 혹시나 내 걸음을 제대로 세지 못할까 싶어 왠지 오늘은 더 힘이 들어갔다. 늘 걷는 코스대로 광장을 지나 오른쪽 방향으로 공원 한 바퀴를 휘돌았더니 2800보가 되었다. 한 바퀴가 2 천보 정도라면 다섯 바퀴면 충분하다. 보폭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일곱 바퀴를 돌아 8 천보였다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두 바퀴를 돌고 나서 이번엔 도서관 건물이 있는 쪽으로 향하여 잔디운동장을 지나 광장으로 돌아왔다. 겨우 이 정도 걸었는데 벌써 7 천보 가까이 되었다. 조금만 더 걸으면 금방 만보가 될 것 같았지만 발이 아프기 시작했다. .. 까이 대충 나머진 저녁에 걷기로 했다.

만보계를 따로 의식하지 않았지만 둘째 아이의 점퍼를 사러 아웃렛 매장을 잠깐 둘러보고, 학원 교재를 사러 동네 서점을 다녀왔더니 어느새 10,072보가 되어 있었다. 이제 보니 산책만 빠트리지 않는다면 매일 만보 걷기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하하 이렇게 쉬운 만보 달성 기록을 캡처하여 남편에게 전송했다.      


자랑스럽게 캡처 사진을 보내고 나니 만보계 원리가 궁금해졌다. 검색을 해보니 우리가 흔히 쓰는 만보계는 일본 기업의 제품 이름이고 계보기(計步器)가 올바른 명칭이라고 한다. 걸을 때마다 걸음 수를 기록해주는 장치인 계보기는 진자식과 가속도 센서 식이 있다. 진자식은 계보기 안에 진자가 들어있어서 걸을 때마다 움직이는 진자가 센서에 닿게 되면 전기가 통해서 걸음수를 더하게 되는 방식인데 진자가 지면에 수직이 되도록 정확히 허리에 차지 않으면 걸음수를 제대로 잴 수 없는 단점이 있다. 이런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가속도 센서식 계보기가 등장하였고, 걸을 때의 리듬을 마이크로컴퓨터가 판단해서 보행과 보행이 아닌 진동을 구별한다.

아마도 스마트폰 어플들은 가속도 센서식일 것이다. 걸음수만 재어 주는 것이 아니라 거리와 시간, 칼로리 소비량까지 알려준다. 어플마다 여러 가지 방식을 적용하는 걸까. 내가 설치한 어플과 남편의 스마트폰 어플의 결과가 차이가 나는 이유가 있겠지.
 

어찌 되었든 오늘 만보 넘게 걸었다. 둘째 수학학원이 늦게 끝나는 날이라 학원에 마중을 갔다 왔더니 계보기는 11,494걸음을 표시해 주었다. 오늘 총 1시간 42분 동안 7킬로미터를 걸었고 360칼로리를 소모했다. 생각보다 칼로리 소비량은 실망스럽다.  많이 걸어도 밥 한 그릇의 칼로리라니, 언젠가 만보 걷기의 운동효과에 대해서 회의적인 내용의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났다.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역시 안 먹는 것이 정답인 모양이다. 나의 목적은 다이어트 아니었다 굳이 변명을 해보면서 내일도 만보를 이어가 보려 한다. 무엇보다 걷는 것은 그저 운동인 것이 아니니까. 하늘을 보고 초록이 깊어지는 것을 보고 봄꽃 향기를 맡고 새들의 지저귐을 듣고 바람을 느끼고... 또 나를 쉬게 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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