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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스 Apr 26. 2023

국경 없는 추억팔이

오늘은 4월 25일, Festa della Liberazione! 1946년 이탈리아가 나치 정권으로부터 해방되고 종전을 향해 나아간 날이다.

(출처: https://www.radiopopolare.it/festa-della-liberazione-non-un-derby/)

이 복된 공휴일에 태어난 친구의 집으로 실내 소풍을 다녀왔다. 참석자는 한국인 교환학생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한국학과를 전공하는 이탈리아 학생들.


빨갛게 돌아가는 조명 아래 둥글게 둘러앉아 각자 가져온 음식을 나눠먹었고 배경에는 케이팝을 애정하는 생일자의 음악 재생목록이 차례대로 흘러나왔다. 한국학과는 케이팝에 일가견이 있는 자들의 모임인 것일까? 한국인인 내가 케이팝을 가장 몰랐다.

모두 음악을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곡 제목 맞추기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생일파티는 케이팝파티가 되어버리는데…


어차피 질 게임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나의 케이팝 지식은 2014년에 멈춰있었다. 친구들이 열성을 다해 최신곡을 맞추는 동안 나는 어떤 곡을 선정해야 할지만 고민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20대 초반 이탈리아인들에게 2012년에 발매된 티아라의 sexy love를 틀어주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곡을 재생한 지 10초도 되지 않았는데 섹시! 러브!!라고 외치는 생일자. 후렴에는 안무까지 완벽하게 선보였다.


!!!..


도대체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이 무색하게 선곡의 방향은 곧장 2000년대 초반으로 조정되었다. 이 친구들은 전 세대의 케이팝을 섭렵하고 있었다. 기억 저편에 흩어져있던 추억의 곡들이 줄줄이 재생되었다.


우리는 어느새 곡에 새겨진 각자의 기억을 나누고 있었다. 누구는 고등학생이었고, 누구는 초등학생이었다. 누구는 기숙사 방바닥을, 누구는 밀라노의 콘서트장을 떠올렸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같은 곡을 들으며 자신만의 상상을 펼치고 있었다.

Miss Congeniality (2000)

지금 이 순간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어느 누군가도 나와 같은 노래를 듣고 있을 텐데! 인생의 어떤 지점에서 그 누군가와 만나 오늘의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은 완벽한 날씨의 4월 25일, 해방과 자유의 기념일,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한국을 사랑하게 된 한 사람의 생일. 시공간을 뛰어넘어 나도 모르게 공유되고 있을 순간의 추억들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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