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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스 Aug 12. 2023

에델바이스 덕분에

2년 만에 재회한 가족과의 여행은 쉽지 않았다. 한평생을 알았지만 며칠간 온종일 붙어있는 건 처음이었다. 사소롱고에 막 도착했을 때 사소한 의견 충돌이 있었고 우리는 각자의 감정만 앞세우기에 급급했다.


7월인데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햇빛은 짧은 주기로 머물렀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했다. 입술은 퍼레지고 팔의 털은 전부 서버렸지만 산맥이 아름다워서 금방 떠날 수는 없었다. 마음이 상해버린 우리는 결국 따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빠와 동생은 산봉우리로 향했고 엄마와 나는 아래쪽에 남아 느리게 산책했다.


엄마와 나는 추위에 떨며 해를 쫒았고, 햇빛이 유난히 선명하게 비추던 바위를 향해 걸어갔다. 바위 옆에는 연인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꽤 오랫동안 주위를 서성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여성분의 몸이 우리를 향해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서로의 눈을 마주친 순간 그는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며 소리쳤다. 그의 눈썹과 입꼬리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점점 커지는 눈망울에 홀린 듯 우리의 발걸음도 점점 빨라졌다.


그는 우리를 바위 뒤쪽으로 안내했다. 힘 있는 손끝을 따라가 보니 바위 위에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짠 이들은 에델바이스야! 그는 상기된 얼굴로 마치 꽃들의 어머니처럼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에델바이스라는 이름은 귀에 익숙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에 나오는 노래를 자주 불러주셨다. 그래서 에델바이스가 유럽 어느 나라의 희고 높은 산속에서 피어난다는 사실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 사실은 신화에 가깝게 느껴졌다. 알프스 마을은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와 너무 다른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에델바이스가 지금 내 앞에 있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멀리서 오는 너희에게 이 꽃을 꼭 보여주고 싶었어." 그는 중요한 비밀을 전하듯 단어마다 다르게 힘을 실었다. "아름답잖아. 내가 정말 좋아해."

"그런데 이 꽃이 멸종 위기에 처해서 너무 슬퍼. 아름다운 걸 보면 꺾지 말고 눈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아? 나는 방금까지 사진을 한참 동안 찍었어." 그는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했다. 떠나기 직전까지 몇 번이고 돌아서서 우리와 꽃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무언가 간절히 사랑하는 표정을 오랜만에 만나 신이 나면서도 그 순간을 아빠와 동생과 함께 경험하지 못해 아쉬웠다. 에델바이스를 카메라에 담는데 어서 빨리 화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의 빛나던 얼굴이 가끔씩 떠오른다. 그때마다 나는 그와 닮아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생물들이 벅차게 멸종되는 세상에서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 그리고 그 순간을 위해 기꺼이 기다리는 사람.


나도 좋은 소식으로 살고 싶어졌다. 에델바이스가 한국에도 산다던데, 단 한 송이도 사라지지 않고 잘 지내다가 어느 산속에서 또 마주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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