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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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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기환 May 27. 2020

여행까지 가서 죽을 수는 없어

아프리카에서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긴 여행을 했든 짧은 여행을 했든, 돌아온 여행자의 말에는 허세가 듬뿍 담겨있다. 자신의 여행이 최고 혹은 최악이었다고. 혀가 녹아내릴 정도로 맛있는 요리도 먹었으며 저녁 석양이 아름다워 눈물을 흘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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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뿐만 아니다. 평범한 여정을 마치 대단한 모험처럼 말하기도 한다.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가 날 뻔했으며 밤거리를 거닐다 이름 모를 이에게 납치를 당해 죽을 뻔했다, 혹은 매혹적인 이성이 자신을 유혹해 하룻밤을 보낼 뻔했다 등등. 모든 경험 앞에는 인생이라는 수사가 들어간다. 가령 인생 맛집이라든지 인생샷이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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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대부분 사진을 보면 그저 그런 풍경들 뿐이다. 납치당하고 죽을 뻔했다지만 몸엔 생채기 하나 없다. 건네어 온 핸드폰 화면을 보니 공포스러운 경험이 벌어졌다는 장소는 평범하디 평범한 밤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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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보니까 아닌 것 같은데?‘라는 말이 입 안 가득 맴돌지만 우리는 결국 말하지 못한다. 말하는 사람, 그러니까 돌아온 여행자의 눈이 별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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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의 경험이 과한 수사로 치장되는 것, 여행이 자기중심적으로 해석되는 것.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정상이다. 왜냐하면 여행은 세상이 나의 중심으로 열리게끔 만드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바티칸, 페트라, 빅토리아 폭포, 세계 어디를 가든지 상관없다. 여행에서는 자신이 걷는 발걸음만큼 세상이 열린다. 내가 걷는 만큼 장소가 열리기에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은 착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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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대로 그렇기에 여행은 자기 자신을 탐구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낯선 선택지 사이에서 현실의 간섭 없이 스스로가 중심이 되어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난 인간은 비로소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위하여 숨을 쉬게 된다. 마치 자연처럼. 여행지에서 택한 낯선 판단들이 결국 나의 일부가 되는 마법은 여행을 가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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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특성 덕분에 여행지에서는 자신의 최고이고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 된다. 그래서 돌아온 여행자가 내뱉는 말들 대부분에는 자신에게 도취된 말들, 허세와 과장이 담겨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그가 가진 허세는 분명 그가 좋은 여행을 하고 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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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지금 할 이야기 역시 허세의 카테고리 중 ‘죽을 뻔했어!’에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허세가 아닌 이유는 정말로, 정말로 내가 죽을 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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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이렇다.  





  나는 비용 문제 때문에 대부분의 여행에서 대중교통이나 히치하이킹을 이용한다.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미비아 경우, 대중교통이 굉장히 취약하기도 하고 투어 비용이 2~3주 동안 차 한 대를 렌트하는 비용과 똑같았다. 그렇기에 나미비아 여행에서만은 예외로 여행을 위해 차량을 렌트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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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할 동행이 구해졌다. 인터넷으로 연락이 닿은 한국인 3명. 우리는 여행에 필요한 물품과 음식을 사고 차를 빌리기 위해서 렌트 회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나미비아에서는 카드의 전면에 음각이 없으면 렌트가 불가하다는 것이다. 카드 복제를 염려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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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뾰족한 수가 없기에 맥주로 타는 목을 축이던 와중, 동행 한 명이 현지 한인 분들에게 상담을 했는지 한인 선교사분께서 연락이 왔다. 만약 괜찮다면 자기 차량을 렌트해준다는 것이었다. 별다른 수가 없던 우리는 옳다구나 좋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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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랴부랴 선교사님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두 딸과 강아지만 우리를 반겼다. 무려 세 시간가량 늦게 온 그분은 며칠 전 한국 여행자 한 명이 교통사고가 나서 반신불구가 되었는데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각종 서류작성을 도와주느라 늦게 왔다면서 우리에게 연신 양해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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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이길, 사고를 당한 여행자가 안전벨트를 하지 않아서 창문 밖으로 튕겨져 나갔으며 비행기 내 의사 동행비,  하체를 움직일 수 없기에 이코노미석 4자리를 예약해 누워가야해서 발생한 비용 등을 말해주며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안전벨트를 꼭 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벨트를 꼭 해야 한다고. 벨트를 꼭 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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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이 많았던 그분은 우리에게 캠핑 용품뿐만 아니라 각종 한식까지 대접해주었다. 확인한 차는 멀쩡했다. 굵직한 바퀴에 4륜구동이라는 믿음직한 직능, 달빛을 맞으며 서있는 도톰한 은색 일제 SUV는 신성해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우리의 여행을 지켜줄 수호신 같이.   





  우리 일행은 다음날, 목적지로 출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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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행 A군은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경험으로 차량 운전 경험이 많았다. 나미비아와 호주는 똑같이 왼쪽 통행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 있게 운전을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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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석에 앉은 나는 DJ 역할이었다. 빠른 리듬의 노래, 목을 축일 음료, 아프리카에 있다는 들뜬 기분. 우리 모두는 신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전날 밤, 선교사님의 목소리가 귀에 맴돌아 앞좌석은 당연하거니와 뒷좌석까지 모두 안전벨트를 멨다. ‘벨트를 꼭 해야 한다고. 벨트를 꼭 해야 한다고’.



  아프리카의 도로 상태는 멀쩡했다. 도로 한가운데 타이어, 죽은 동물이 있었으나 요리조리 피해 가면 되었고 별다른 차이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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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히려 제일 다른 점은 체감 속도. 사방을 봐도 지평선이 이어져있는 데다가 비슷한 풍경 때문인지 속도를 아무리 높여도 티가 나지 않았다. 체감으로는 60km로 달리는 것 같은데 속도계를 보면 120, 140km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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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밖으로 새로운 땅들이 계속하여 이어졌다. 아프리카에 뿌리를 내린 초록들은 다른 대륙과는 달리 투박하고 소소했다. 아마도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쏟느라 치장까지 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리라. 부러질 듯한 가지들이 모여 늠름한 동시에 긴장감 있는 풍경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풍경을 보면서 나는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실감했다. 나는 시선을 음미하면서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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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몇 시간을 달린 후 휴식을 취하고 다시 달리기를 반복했다. 아프리카에서 운전을 하며 깨달은 사실은 구글맵은 빠른 길을 알려주는 것이지 안전한 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의 경우에는 도로의 질이 좋으니까 사실 어디로 가도 상관없지만, 아프리카는 달랐다. 구글 맵이 알려준 도로를 따라가니 거대한 돌산이 나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차가 위아래로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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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산 옆은 천길 낭떠러지였다. 차량이 밀어낸 돌멩이가 끝도 없이 떨어지기만 하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상태로 몇 번의 능선을 넘었을까, 마침내 평탄한 대지가 나왔다. 탁 트인 사막과 지평선이 시야에 가득 찼다. 광활한 풍경에 동행 모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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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시간은 휙휙 빠르게 지나간다. 하지만 어떤 특정 순간의 시간은 농밀하고 느리게 가기도 한다. 내가 그때 뭘 마셨는지, 창밖의 풍경은 어땠는지, 여러 가지 감각이 모조리 기억이 나서 마치 시간이 축 늘어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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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가 이와 같은 시간이었다. 1년이나 지난 기억이지만 나는 그 상황이 나는 지금까지 생생히 기억난다. 뒷자리 동행들이 탄성을 지르던 것을, 흐르던 윤종신의 곡 <본능적으로>, 운전대를 잡은 A가 "이제 한번 달려볼까"라고 외치던 것을.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물음도, 누군가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 말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신호였다. 엑셀의 고삐가 풀리게 만드는 신호.






  순식간에 속도계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사이드미러로 모래먼지가 휘날리는 게 보였다. 100km 가까이 계기침이 다다랐을 때였다. 차가 대각선으로 미끄러지며 자갈이 우둑우둑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으로 나의 몸이 순식간에 오른쪽으로 쏠렸다. 차의 왼쪽 바퀴가 하늘로 솟아올랐고 유리창이 박살이 났다. 천장이 종이처럼 구겨지는 게 느껴졌다. 동행들이 비명을 질렀다. 고운 모래입자가 폭죽 터지듯 구름모양으로 차량 안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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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무언가 일이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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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 것들이 날아다니고 여러 가지 것들이 박살이 나는 소리가 들렸다. 돌멩이인지, 유리조각인지 미세하게 조각이 난 것들이 얼굴에 튀었고 차의 옆구리와 천장이 골판지처럼 우두둑 구겨지는 게 느껴졌다. 동행들이 지르는 비명소리가 귀에 고스란히 박혔다.




    눈을 감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한번... 두 번... 차는 총 세 바퀴 반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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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조용해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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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침내 눈을 감았던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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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이 박살난 유리창에 누렇게 늘어붙어 있었다. 깨진 유리로 들어온 햇살이 광각렌즈처럼 차 안을 비춰 곱디고운 모래먼지가 차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사이사이 유리조각들과 우리의 소지품들, 조수석 앞에 달린 서랍 속에서 나온 것인지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한 물건들이 어지러이 있었다. 움직이는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혼란스러웠다.  






 내 몸은 옆으로 매달려있는 채로, 팔과 어깨, 목에 피가 범벅되어 있었다. 귀에서는 이명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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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 몸에 난 상처를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몸 어느 곳도 크게 아프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쇼크를 받은 줄 알고 구겨진 차 틈에서 팔을 꺼내 나의 몸과 뺨을 때렸다.

  하지만 감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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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의 원인을 찾으려고 주변을 보니 나의 위쪽에 대롱대롱 매달린 운전자가 피를 흘리고 있었고, 그게 고스란히 내 몸으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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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전자는 쇼크상태로 비명을 꽥꽥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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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아. A야 아무 문제없어.”

“A야 나갈 수 있어 우리 모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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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에선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혹여 큰일이 날까, 정신이 없는 운전자에게 화를 내면서 바깥으로 빨리 나가라고 했다. 유일하게 창문이 뚫려있는 쪽이 그쪽이었기 때문이다.






 한 명씩 한 명씩 차 밖으로 빠져나오자마자 서로를 체크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운전자의 팔 빼고는 우리 세명 모두 생채기만 조금 났을 뿐 심각하게 다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선교사님의 당부 덕에 전 좌석 모두 안전벨트를 한 게 천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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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으로 누워있는 차는 더 이상 차라는 단어로 불릴 수 없는 모양새였다.  옆구리 천장, 앞 범퍼까지 모든 곳이 구겨져있었다. 마치 고통을 느끼는 사람의 미간이 구겨지는 것처럼. 차는 온몸으로 고통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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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곳에서 가장 연장자인 처지라 아이들을 앉혀놓고 다독이며 안정을 시켰다. 일부로 사진도 찍었다. 마치 이것도 좋은 추억이 되리란 것처럼, 이 사고가 우리 여행의 일부라는 되는 것처럼. 가까스로 여유를 부리며 웃었으나 눈과 입이 굳어 어색한 웃음이 나왔다. 나를 보는 동행들의 얼굴 역시 기묘한 미소로 뒤틀려있었다.





  문제는 그곳이 인터넷도, 통화 시그널도 잡히지 않은 외딴곳이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뾰족한 수 없이 하릴없이 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관광지로 가는 여러 갈래의 길 중 하나였기에 20여분 정도가 지나고, 여행을 가던 프랑스인 가족애게 우리는 발견되었다. 나는 그에게 사고가 났으니 전화나 인터넷이 터지는 곳으로 가서 신고를 해달라고 했다. 그들은 알았다면서 흙먼지를 흩날리면서 빠르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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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훌쩍이는 소리와 끙끙대는 소리로 시간이 채워진 후, 갑자기 사막 한가운데 견인차와 경찰들이 도착했다. 우리는 근처 농장으로 향해 치료를 받았고 사고 경위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전화로 우리에게 차를 빌려준 선교사님에게 연락을 취해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다. 다행히도 차가 사고 보험에 들어있으니 걱정말라는 대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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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가 어느 정도 수습되면서 오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찰과 견인차가 너무나도 빠르게 사고를 수습하는 것을 보면서 내심 그들의 직능이 대단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가 사고가 난 장소에서 일주일 전과 4일 전에 교통사고가 크게 났다는 것이었다. 일주일 전에는 중국인 6명이 탄 렌터카가 사고가 났는데 그중 2명만 살았으며 4일 전에 프랑스 일가족이 사고를 당해 딸과 엄마만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사람은 언젠가는 나쁜 패를 쥐게 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나는 내가 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느 쪽이든 결국 운에 의해 나라는 존재가 속절없이 휘둘릴 수밖에 없구나라고 생각을 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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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료가 끝나고, 보험차량이 오기 전까지 딱히 머물 곳이 없는 우리에게 오랫동안 방치된 캠프 사이트로 데려다주었다. 오두막이라기보다는 헛간이라는 용어가 어울리는 곳이었지만 우리는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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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정도 짐이 정리가 되고서, 우리 넷은 아무 말도 없이 앉아서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지평선으로 사라지는 태양이 각자의 마음속 무엇인가를 흔들어 놓았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멍한 상태로 있었다. 아마도 동행들들은 저마다 마음 어딘가에서 삶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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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태양은 지평선 끝자락에서 정수리를 드러내었다. 지는 저녁 해가 공허한 사막을 잠시나마 붉은빛으로 물들였다. 이윽고 어둠이 밀려왔다. 긴 밤을 알리는 시작이다. 우리는 말없이 불을 피웠다. 그리곤 하나, 둘 씩 오늘의 감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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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가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오랜 시간 같이 지내거나 취미와 시야를 공유하거나. 사고를 겪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서로 알게 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어도 함께 죽음을 경험한 경우라면 반드시 좋은 친구가 된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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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넷은 그날 밤 원래 목적지가 아닌 이름도, 위치도 불분명한 곳에서 별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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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보지 못했을 수도 있는 별이라서 그랬던 것일까. 모두는 태어나서 처음 별을 본다는 듯, 빛나는 그것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덧, 이후 지옥 동기가 될 뻔한 넷은 한국와서 짱친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행히 살아서(?) 재밌는 추억이었네요 후...


https://brunch.co.kr/@jugiiii/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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