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주구 Oct 25. 2023

전직연구원의 백수일기

직업 질문에 따른 대답 분석 결과 공유의 건


누군가가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으면 여러 생각이 스친다.


A_1 : '그냥 찌그러져 있습니다. 하하'

A_2 : '백수입니다. 하하'

A_3 : '(못 들은 척) 하하'

A_4 : '하하입니다. 하하'


...


심화 문제를 남겨놓은 수험생의 심정으로 질문을 해부하다가 그와 대답 사이의 공백이 머쓱한 분위기를 자아낼 때쯤 마치 재야의 대작가라도 되는 양


"글... 쓰고 있습니다."


하는 것이다.

대형서점에서 몇 주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얼굴은 알려지지 않은, 필명은 유명하지만 본명은 미스터리인, 인X타 릴스 또는 유X브 쇼츠에 '정주구 작가의 정체는 무엇인가!?'에 대한 영상이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는, 그래서 출판사와의 미팅까지도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그야말로 베일에 싸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것처럼 약간은 경계하는 눈빛에 여유로운 미소와 거대한 비밀이라도 유출하는 듯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하는 게 포인트이다.  


그에 따른 질문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헉 작가시구나! 대단하다! 나는 글 쓰는 사람들 보면 신기해요~'

그러면 점잖게 입꼬리를 올리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더 이상 언급하기 곤란하다는 의사를 내비치면 상황은 종료된다.


작가라기엔 작품이 없고 백수라기엔 과하게 사부작거리는 점이 있어서 글 쓰고 있다는 표현 정도가 적합하다는 것이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혹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같은 질문에 따른 대답 분석 결과이다.



비록 소량의 죄책감이 남는다는 한계가 있지만 '진짜' 작가가 되면 해결될 사항이라는 무책임한 추신을 덧붙이며..

매거진의 이전글 겁쟁이는 물이 무서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