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30주년
기쁘지 않았다. 축하한다는 말을 할까 하다가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를 30년이나 일하게 해서 미안해.
비록 그 자리에서 꽃다발을 건네지 못했지만,
가까운 미래에 효도하겠다는 불안정한 말 밖엔 할 수 없는 못 미더운 불효자이지만,
당신의 다급한 구두소리와 숨죽여 흘리던 눈물을 먹고 자라,
나는 당신의 다급함과 눈물, 그 너머를 헤아릴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비록 어린 어른이지만,
당신의 구두소리는 여전히 나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안다.
당신의 나이를 천천히 거슬러 올라갈 테니,
당신은 오랫동안 뱃살과 등을 내어주었으면 좋겠다.
끝까지 무언가를 내어달라고 하는 나는 아마,
끝끝내 당신의 어린 어른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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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구, 워킹맘 30주년 中]
가족여행을 왔다.
아주 아주 오랜만이다.
숙소와 여행 경비 일부는 오빠가 부담하였고, 여행 경비 대부분은 부모님의 '여행적금통장'에서 부담되었다.
나는 '계획 담당'이었다.
고는 하지만 사실, 백수인 나의 역할은 깍두기에 더 가까워보였다.
어머니의 30주년 연공상 수상 깜짝 축하를 하는 여행 둘째날 밤, 씻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아버지와 오빠와 나는 숨죽여 공수해온 케익 하나에 불을 붙이고 도란도란 웃었다. 오빠와 아버지는 연신 행복한 미소를 띄었다. 정말로 행복한 웃음이었다.
이벤트준비를 하며 그렇게나 행복해하다니. 이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정하고 애틋한 면이 있더랬다. 그런 사람들과 내가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안정되었다.
비록 깍두기지만은 뭔가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대 중반이나 되어서 가족여행에서 깍두기 역할을 하는게 못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들의 아기자기한 모습이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 기다렸다는 듯이, [워킹맘 30주년]이 생각났다.
그러곤 갑자기 깜짝파티가 진행되었다. 예상처럼 어머니는 아주 좋아했고, 행복해 보였고, 그녀를 둘러싼 오빠와 아버지도 행복해보였다. 깔깔깔 웃고는 테이블의 4면을 둘러싸고 앉아 한마디씩 하고픈 얘기를 했다.
감동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글을 읽을 생각에 약간 공황상태에 빠져있었다.
나의 차례가 돌아오고, 나는 미리 써둔 글을 읽겠으나 부끄러우니 그들 뒤에 있는 침대에 걸터 않아 읽겠다며 유난을 떨어댔다.
어머니의 등을 보며 [워킹맘 30주년]을 읽기 시작했다.
이제 첫 문장을 시작했을 뿐인데 방에는 오락가락 갈매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회사에서 발표할때도 이만큼 떨지 않았던 것 같은데, 성대에 딱따구리가 살 것만 같은 형편없는 음절이었다.
딱따구리인지 염소인지 모를 야생 동물소리를 내다가 거의 막바지 문단에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한번 눈물이 나오니, 장마철에 댐의 수문을 개방한 것처럼 마구잡이로 터져나왔다. 가족들은 아무것도 없는 테이블만 연신 내려다보며 기다렸고, 미동이 없는 어머니의 등 또한 글을 읽기 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 울고 마저 끝까지 읽어줘."
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읽어냈다.
눈물을 닦고 머쓱하게 자리로 돌아와서 어머니의 얼굴을 흘깃 보니,
조용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도, 비루한 글이지만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작은 공명을 일으킨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여, 나의 글이 마침내 제 주인을 찾아간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웠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못한게 몹시 아쉬웠다.
미안해 죽겠다.
그리고 고마워 죽겠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게 해서 미안하고,
그렇게 키워놨는데 퇴사자가 되어서 미안하고,
퇴사자가 되어 돌아온 나에게 열무비빔밥을 해줘서 고맙다.
나랑 같이 자고 싶다고 앙탈을 부려줘서 고맙고
등 긁어달라고 해서 고맙고
보들보들한 뱃살을 만지면 깔깔 웃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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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30주년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