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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Jan 30. 2024

내 생에 빛나는 하루라고 믿기에

연말이 지나면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해가 다가온다. 1년간 간직했던 숫자에 1이 더해진 새로운 숫자 아래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된다. 생각해 보면 새해가 시작되었다고 모든 것이 새로워지진 않는다. 학생의 신분으로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학년이 올라가고 반이 바뀌면서 큰 변화가 피부에 와닿았지만, 이 시기를 지나 사회인이 되고 삼십 대에 접어들면서 어느덧 나이 세는 것도 잊어버리고 나면 해가 바뀌었다고 크게 새로울 것도 없어지고, 새로운 것 마저도 더 이상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매년 새해를 맞이하는 의식이 몇 개 있다. 

새해의 일출을 보면서 한 해의 소원 빌기, 새해의 숫자가 적힌 새 다이어리 구입하기. 새해 해돋이야 몇 분 정도면 끝나지만, 새 다이어리는 한두 달 전부터 구입해서 책상 위에 두고두고 감상하게 된다. 아직 미처 채우지 못한 그 해의 다이어리가 분명 남아있지만, 마음은 벌써 새로운 숫자들을 맞이하기 바쁘다. ‘새해에는 어떤 계획들로 채워볼까? 새해 버킷리스트는 어떤 것들로 정해보지?’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예전에는 다 채우지 못한 다이어리를 두고서 새로 구입하는 것에 작은 죄책감을 느꼈다. ‘올해도 다 채우지 못했구나... 다이어리를 다 채우는 날이 오기는 할까?!’ 같은 말들로 자책하면서. 그럼에도 매년 다이어리를 구입해 왔다. 역시나 처음부터 끝까지 다 채우지는 못했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다 어느 연말 이런 기분을 뒤로한 채, 한 해 동안의 기록들을 읽어보았다. 그곳에는 그날의 기분, 일상,  좋았던 것, 싫었던 것, 고쳤으면 좋겠는 것들 같은 사사로운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특별한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남들에게 이야기하지도 못했던,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았던 나의 내밀한 마음이 언어로 형상화되어 데일리 칸 하나에 들어가 있었다.      

다이어리는 이렇듯 나에게 마음의 청정기이자 언어의 청소기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시작을 돌이켜 보니 한참 어리고 순수한 고등학교 때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느 곳 하나 마음이 편치 않았고, 행복하지 않았다. 나의 마음을 잘 발견하고, 표현하고, 대처하는 지금과 다르게 어렸던 그 시절에는 잘 알지 못했다.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방법도, 남에게 부드럽게 표현하는 언어도, 보다 당당해지는 태도도 어느 것 하나 확실치 않았다.   

마음 둘 곳 없는 내게 안식처가 되어준 곳이 다이어리 속 하얀 세상이었다. 학교에서 심심하거나 답답할 때면, 집에서 눈물이 두 눈에 가득 고여 있을 때면, 다이어리를 펴고 시를 쓰고, 일기를 쓰고, 글을 끄적였다. 종이 위의 세계에서만큼은 나를 감돌고 있던 우울의 구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어린 소녀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쓰기는 자유로 치환되었으며, 그 행위의 주 배경이었던 다이어리는 안식처라는 이름으로 그 소녀를 안아주었다. 

이때의 따스한 편안함과 가벼운 자유로움이 기억에 각인되었고, 쓰기와 다이어리는 내 인생에서 의미 있는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사회인이 되어 쓰기와 연관되지 않는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되면서, 바쁜 생활을 핑계로 쓰기와 멀어져 갔었다. 그러다가 임신을 하고 일을 쉬게 되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다시 쓰는 생활을 시작했다. 2018년 1월부터 블로그에 글을 썼다. 처음에는 남들이 본다는 생각에 단 몇 줄을 쓰고도 부끄러웠다. 몇 명 되지 않던 이웃이 늘고, 소통을 시작하게 되면서 블로그에 쓰는 재미에 푹 매료되었다. 어느덧 6년이 지났고, 4년의 시간(공백기 2년을 뺀)이 블로그 위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 사이 브런치 작가에도 도전해 글을 쓰게 되었다. 브런치는 생에 처음 내게 ‘작가’라는 호칭을 붙여준 곳이다. 처음 달아본 타이틀에 기분은 구름 위를 걸어가듯 행복했다. 쓰는 자체로 기쁨을 주는 공간이었다. 반면 블로그는 나에게 어떤 명분도 있지 않았다. 블로그를 더 발전시키고자 강의도 들었지만, 동기들처럼 상업화시키지 않았다. 상업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하니 흥미가 떨어졌다. 


어느 날 친구에게 블로그로 월 200만 원 수입을 올린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월 200이라는 숫자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기에 그동안 애드포스트로 들어왔던 커피 한잔 정도의 숫자들이 너무도 작고 가볍게 느껴졌다. 집에 와서 밀려오는 회의감에 그동안의 기록들을 돌아보았다.      


‘나는 왜 블로그에 4년 동안 특별하지도 않은 일상의 글들을 기록해 왔을까?’     


그 답은 블로그 안에 있었다. 6년의 기간 동안 4년의 기록 안에는 지난날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루하루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일상의 모습이었다. 새해가 되면 신년 다이어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다짐을 했고, 좋은 장면을 볼 때면 사진으로 남겨 글과 함께 추억했다. 쭉 이어온 미니멀라이프의 과정과 쓰기의 여정 그리고 책 이야기 속 나의 일상이 지나갔다. 종종 등장했던 아이들의 모습까지 숫자와 함께 자라 있었다. 글을 읽을수록 그날의 기분, 있었던 일들과 함께한 나와 우리들의 시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글씨로만 기록되는 다이어리와 다르게 사진과 함께 기록하는 블로그 이야기들이 보다 생생하게 다가왔다. 


500일을 맞이한 아이에게 처음으로 써보는 편지, 

남편에게 말로는 못하는 글로 쓴 편지, 

브런치 작가 신청하면서 펑펑 울다 웃은 사연과

태어나 처음 걸려본 대상포진의 기록까지. 

내가 블로그를 하지 않았다면 결코 마주할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 하나하나 마주하면 보잘것없는 소소한 일상이었지만 모이고 나니 특별해졌다. 나의 일상에서 길어 올린 순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잊혀가는 기억들이 아니라 볼 때마다 반짝이는 추억으로 삶을 보듬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다이어리를 꼭 채우지 않아도, 단 몇 페이지를 쓰더라도, 블로그가 돈을 많이 벌어주지 않더라도, 수많은 방문자를 가진 인플루언서가 아니더라도, 그냥 꾸준히 쓰기로 했다.     


"누구나 저마다의 경험과 추억, 감정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을 오븐에서 막 꺼낸 피자처럼 종이 위에 옮겨 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모든 것을 풀어 주라. 아주 쉬운 말로 단순하게 시작하고, 당신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도록 애써라. 처음에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서투르고 꼴사나운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당신은 지금 스스로 자신을 발가벗기고 있는 것이다."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에 덧붙이자면, 나는 막 오븐에서 꺼낸 나의 경험과 추억, 감정이라는 피자를 하얀 종이와 하얀 화면 위에 옮기고 있다. (물론 책에서 작가가 표현한 생생함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이제는 나의 서투르고 꼴사나운 모습을, 그 모습을 표현한 글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시간이다. 

나는 나를 들여다보고 일상과 마주하고자 오늘도 기록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지만 내 생에 빛나는 하루라고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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