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동부에 이르니 가장 큰 도로인 링로드조차 꽁꽁 얼어있다.
링로드의 현재 상황을 알려주는 사이트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달렸는데, 우리가 가고자 했던 북부는 접근조차 어려운 상태라고 나온다. ‘미끄러움’과 ‘매우 미끄러움’ 상태를 나타내는 하늘색, 파란색 길을 천천히 달리면서도 실제로 미끄러져 아찔했던 순간이 있는데, 그 위의 단계인 검은색, 빨간색의 북부 지역은 거의 고립 상태란 말인가. 다른 차들도 모두 느릿느릿 기어간다. 새까만 포장도로는 어느새 온통 새하얀 색으로 채워져 있고, 구름 낀 회색빛의 하늘과 함께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겨울왕국의 ‘Let it go’를 들으며 올라프와 얼음 괴물을 상상해 본다.
멋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짓지만 링로드를 완벽하게 돌지 못하고 이쯤에서 돌아가야 한다는 쎄한 느낌이 들어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길을 덮은 눈은 점점 더 두꺼워져 가고, 북부의 날씨 예보는 앞으로 며칠 동안 눈, 눈, 눈이다. 결국 가보지 못한 미지의 땅에 대한 호기심을 뒤로한 채, 온화한 날씨와 안전한 여행을 택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무모한 계획을 수정하는 것이 어떤 행운을 가져다 줄지.
겨울에 아이슬란드를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 또한 오로라 보기가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만큼, 여행 내내 오로라 지수가 어떻게 변하는지 수시로 관찰했다.
동부에서 눈길에 막혀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다시 남부로 내려가는 길. 오늘따라 티 없이 맑은 하늘이 펼쳐지고 눈부신 햇살이 내리쬔다. 짙은 회색구름이 가득하던 하늘에서 쨍한 파란 하늘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날씨가 어색함과 동시에 황홀한 기분이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구름과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눈비에 긴장하며 다니던 날들이 말끔히 잊힌다. 북부를 가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다. 오로라 지수를 확인해 보니 ‘4’이다.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숫자이지만, 날씨가 맑다면 충분히 오로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숙소에 들어가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렸다. 빙하가 보이는 곳에서 오로라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한 밤 중 숙소에서 35km 떨어진 곳까지 달렸다. 대략 포인트를 찍고 달리다가, 풍경이 딱 멋지게 보이는 지점에 차를 세우고 기다렸다. 사진과 달리 육안으로 보는 오로라는 좀 더 약하고 회색이 섞인 녹색에 가깝다고 한다.
“혹시 저게 오로란가? 아님 저거 아냐?”
밤하늘의 구름을 보며 연신 헛다리를 짚었다. 아이폰의 30초 장노출 모드가 내 눈보다 밤하늘을 더 잘 보는 것 같아 아이폰을 들고 오로라를 찾았다. 어렴풋이 나타나는 밝은 빛이 오로라인가 싶어 카메라와 삼각대를 세팅했다가, 몇 분을 기다리다가도 나타나지 않아서 결국 추위를 견디지 못해 차에서 다시 몸을 녹인다.
그러기를 약 30분, 또다시 어렴풋한 빛이, 이번엔 녹색의 빛이 일렁인다. 오로라다! 를 외치며 뛰쳐나간다. 옅은 녹색의 빛을 아이폰으로 확인해 보고서 우리는 오로라를 확신했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부랴부랴 삼각대를 펼치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강한 오로라는 아니었지만 녹색의 띠가 하늘을 빙 둘러 나타났다. 구름의 움직임과는 또 다른 신비로움이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일렁이는 녹색광선이 육안으로도 선명해졌다. 타임랩스를 찍어놓고 보니 녹색의 긴 뱀이 밤하늘을 유영하는 것 같기도 했고, 녹색의 장막들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 같기도 했다.
오로라가 차츰 더 짙어지고 느린 춤을 일렁이는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왜인지 모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몸이 떨리는 느낌, 대자연을 마주할 때 빨라지는 심박수와 가쁜 호흡. 두려움과 경이로움에 완전히 압도당하는 신비로운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