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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혁 Mar 12. 2024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문화예술

현재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한계와 지역 간 격차

 최근 몇 년 사이 대한민국을 기반으로 한 이른바 K-컬처는 단순 한류열풍을 넘어선 하나의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았다. 이 아이덴티티를 통해 새로운 트렌드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 또한 맞지만 그 이면에 있는 전통적인, 그 문화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현시대에 맞게 발전시키려 하는 종사자에게 심각한 불평등이 생성되고 있으며 이는 문화-예술을 받아들이는 수용자들을 중심으로 얽혀 있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분명 존재한다.


 현재 K-컬처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이른바 ‘되는 것에만 집중’ 하는 문화가 잠재하고 있으며 유행하는 것은 무조건 편승해서 따라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즉 ,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 결과 음악, 영화, 드라마, 미술 등등 유명하다는 혹은 이름을 알리고 있는 그룹이나, 아티스트의 작업물을 보자면 각각의 결과는 다르지만 무언가 비슷한 느낌이 여실히 드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문화 예술을 받아들이는 수용자에겐 치명적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와 예술은 그 누구도 정의할 수 없고, 정말 방대한 장르와 범주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만일 수용자가 현 상황과 같이 비슷하고 반복적인 것에만 노출된다면 현대 미디어에서 말하는 이머징 이슈인(emerging issue) ‘사용자 맞춤’과는 모순된 결과로 흘러가게 된다. 대표적으로 현재 아이돌 산업, 그리고 셀러브리티 문화를 중심으로 트렌드가 형성되고 있다. 단순 음악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의 방식에 의해 새로운 것이 형성된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추천하는 음악,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셀럽이 무슨 식당을 갔고, 무슨 물건을 사며 그것이 유행이 되고 트렌드가 되는 현 상황이다.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다. 어쨌든 정체되어 있지 않고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있고, 대한민국을 넘어선 전 세계에 큰 패러다임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미래에 대해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 것은 , 직접 지방의 문화 예술 시장에서 활동하면서 겪은 한계가 수도권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도 명확하다는 부분 때문이다.


어떤 장르는 우월한 장르이고 또 이면에 있는 다른 장르는 하위의 장르라며 단정하는 것은 굉장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현재 한국에서는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곧 흔히 말하는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발전도 막는 행위이다. ‘언더그라운드 문화’(서브컬처)는 단순 돈이 안 되는 것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직접 활동하며 가장 크게 느꼈으며, 또한 동시에 가장 크게 느낀 한계는 지방의 수용자들이 너무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고, 새로움을 도모하려고 하는 커뮤니티의 움직임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부분이 맞물려 정체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필자가 생각했을 때에 흔히 말하는 서브컬처가 대중문화와 공생, 혹은 살아날 수 있는가 장 현실적이고 단순한 해결책은 직접적으로 수용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인프라 즉, 공간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꼭 특정 공간이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활발하게 움직여야 한다. 우리는 같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더라도 내 주변에 생소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공간, 분위기가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1차적으로 접하는 청각적, 시각적인 것들의 다양성이 분명 존재한다. 마치 인류가 유인원의 상태에서 돌연변이가 나타나 자연선택을 받고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된 것처럼, 문화와 예술  또한 비슷한 맥락에 있다고 비유할 수 있다.

(단순히 생각하면 대중문화가 꾸준히 잘 가는 이유와 서브컬처씬이 융합된다면 충분히 수용자들 또한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가설 또한 가지고 있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모임에서부터 시작해서 나와 또 다른 것에 새로움을 느끼고 포용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커뮤니티의 존재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시대는 너무나도 빠르게 변한다 20년, 10년, 5년, 3년.. 점점 더 짧은 단위로 새로운 것들이 마구 등장하는 시대이다. 하지만 한국은 새로운 것이 곧 기존의 것이고, 결국 유행하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쳇바퀴 돌듯이 반복된다. 이는 수도권과 지방 사이에서 가장 크게 두드러진다.  

 ‘자본의 힘’ 이 가장 중요한 이 시대에 자본이 가장 집중되어 있는 서울로 현재까지도 많은 지역의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떠나간다.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는 지방도시는 타격이 덜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지방은 과거의 키워드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마치 수도권 사람들이 대구 하면 아직까지도  막창을 떠올리고 동성로를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는 나를 볼 때 갇혀있다고 생각할 수 있고, 다양성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고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충분히 지방에도 열정을 가진 예술가들이 많다는 것을 직접 겪고 있고, 크고 작은 움직임들이 싹트고 있다. 그래서 더 무언가 모를 소속감이 들기도 한다. 커뮤니티의 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 우리가 사는 시대가 ’모든 것의 연결‘이라고 한다면 기술적인 부분을 넘어서 대중문화와 서브컬처의 융합, 혹은 사람과 사람의 융합 또한 계속해서 도모하고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다.



 ‘기술의 발전으로 시-공간의 초월이 더더욱 진행되며 더 많은 것들을 접할 수 있는
현 상황에서, 진정 우리가 이론에서 계속해서 반복하고  말하고 있는 탈 대중화의 시대에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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