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 촬영장소가 있다는 그곳
누군가의 글을 통해 본 영화 <아가씨> 촬영장소라는 말이 마음을 흔든다. 경기도는 광활하다. 수시간을 달려 도착해야 함을 알면서도 '같은 경기도니까' 또 한 번 속아본다. 얼마가 지났을까. 한참을 달렸다. 도로만이 있는 허허벌판을 굽이굽이 지난다. 여기 이렇게 빈 땅이 많은데, 왜 서울은 그토록 비좁고 살 곳이 없을까. 문득 생각한다.
평일이어서인지 방문객이 별로 없었다. 우연히 우리와 동시에 도착한 한 일행만이 있었다. 원래 입장료는 7천 원이지만, 인터넷을 통해 미리 예매하면 5천 원이다. 예약번호만으로 수월하게 입장한다. 몸에 카페인을 넣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미림을 위해 카페부터 들어가고 본다. 미림은 간단히 커피를 주문했다. 딱히 뭔가를 마시고 싶지도, 그렇다고 아무것도 마시고 싶지 않은 건 아닌 상태에 메뉴판 앞을 서성이자 점원이 조금 재촉한다. 그냥 미림과 같은 걸 말했다. 내내 시큰둥한 점원은 친절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내가 불쾌할 필욘 없었다. 한번 오고 말 여행객들인 걸 아는 거지. 미림이 말했다.
입장하고 보니 몇 무리가 더 있다. 서로 멀찍한 거리를 유지한 채 거닐 수 있는 정도의 인파다. 적당하다. 안내책자를 펼쳤는데 그 안에 우리가 찾고자 하는 장소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어딘가엔 있겠지, 일단 눈 앞에 보이는 길을 따라 걷는다. 조금 걸으니 어느 유럽 귀족의 정원에 있을 법한 풍경이 펼쳐진다. 잔뜩 흉내 낸 조각상들이 제법 그럴싸하다. 여기 드라마에서 봤던 것 같아! 미림이 말하지만 그 제목은 기억해내지 못한다.
가을이면 단풍잎이 드리워질 길을 따라 걷자 정원사들이 인사를 건넨다. 네 안녕하세요, 답하고 보니 옆은 호수다. 호수에는 멋진 사진을 남길만한 징검다리들이 있다. 주위를 둘러싼 나무들이 물 표면에 반영될 만큼 차 있지만 맑진 않다. 거의 죽어 있는 호수다. 어떤 산장 앞 잔디밭에선 노부부가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와 여배우야, 미림이 말했지만 역시 이름은 기억해내지 못했다. 마음껏 찍으시라고, 옆 길로 비켜났더니 그토록 찾던 나무터널이 나타났다.
영화에서 본 그대로다. 보통 촬영지는 카메라 왜곡과 후보정을 거쳐 실제보다 크고 색다르게 담기기 마련이다. 좋다고 가보면 화면과 달라 실망하기 일쑤나 이번은 달랐다. 영화 장면과 조금은 달라도 말 그대로 단지 다름이지 감동이 덜한 건 아니다. 숙희가 화내던 자리, 히데코가 숨어 엿듣고 있던 자리,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터널 안은 적당하다.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다. 들어오려던 햇빛이 나뭇가지들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진다. 터널 바닥에 금빛 조각들이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