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딱이라 불리는 걸 거부한다
찬란한 X세대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볼래?
우리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절묘한 경계선에 서 있던 유일무이한 세대야. 흑백과 컬러, 필름과 픽셀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어린 시절을 보냈지. 아침마다 '뽀뽀뽀'로 활짝 눈을 뜨고, '들장미 소녀 캔디'와 '베르사유의 장미'를 보며 순정의 깊이를 깨달았어. 마음 약한 친구들은 '플란다스의 개' 마지막 장면을 보며 한강 물 수위를 높이기도 했고 말이야.
조금 자라서는 TV 앞에서 '여명의 눈동자'를 보며 역사의 비극과 사랑을 배웠지. 그 시절엔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역사를 드라마로 익혔어. 또 '사랑이 뭐길래'나 '첫사랑' 같은 가족드라마를 보면서, 부모님과 함께 웃고 울었던 따뜻한 추억도 있어. 그때는 리모컨은커녕 채널도 몇 개 없었지만, 그래서 더 소중했지.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 같은 OTT는 상상도 못 했지만, 매주 일요일 아침 '출발 비디오 여행'을 보며 영화를 고르는 재미가 있었거든. 비디오 가게 앞에서 빌릴 테이프를 고르느라 시간 보내던 추억이 새록새록하네.
통신기기는 또 어땠어? 우리는 전화번호가 뜨지 않던 유선전화기를 쓰던 시절부터, 파나소닉과 모토로라 삐삐를 허리춤에 차고 다녔어. '486486 사랑해'나 '1004 천사' 같은 암호로 마음을 주고받았지. 가끔 친구들이 시티폰으로 폼 잡으면 "걔 전화하려면 공중전화박스 찾아야 해"라고 놀렸고, 이후엔 "걸면 걸리는" 걸리버 PCS폰과 벽돌만 한 크기의 애니콜 휴대폰을 쓰며 "본부!! 본부!!"를 외쳤던 CF를 따라 했어. 스티브 잡스의 사과폰보다 한참 앞서 휴대폰의 변천사를 체험한 건 바로 우리 세대야.
소셜 네트워킹이 뭐냐고? 우리가 이미 다 겪었지! 한 번 파도타기 하면 전 국민의 절반과 1촌이 될 수 있었던 싸이월드를 기억해? 미니홈피 꾸미기 위해 하루 종일 도토리를 찾던 시절이 있었고, '퍼가요~♡'는 지금의 '좋아요'보다 훨씬 친밀하고 따뜻한 교감이었어. 초등학교 동창 이름 하나만으로 친구들을 찾아내던 '아이 러브 스쿨'은 마크 브로의 얼굴북보다 훨씬 먼저 우리의 네트워크 감성을 완성시켰지.
패션은 또 어땠는지 알아? 너희들이 지금 힙하다고 입는 와이드 팬츠, 우리는 그걸 '똥싼 바지'라고 놀렸어. 처음엔 이름 듣고 웃었지만, 어느 순간 너도나도 입고 거리를 활보하게 됐지. 그리고 머리에 한 통 다 쓰는 스프레이와 무스를 뿌리며 머리를 세우던 게 우리였고, 힙색에 닥터 마틴 워커는 기본 아이템이었어. 지금 MZ 세대가 듣는 플레이리스트의 절반은, 우리 X세대가 그 시절 노래방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간절히 부르던 곡들이란 걸 알고 있어? 그래서인지 '응답하라' 시리즈가 무려 세 편이나 나오면서, 대한민국에 복고 열풍을 일으킨 거지.
경제위기 IMF 때도 우리는 좌절하지 않았고, 오히려 위기를 씹어먹고 쌈 싸 먹으며 성장했어. 너희가 뉴스로만 듣던 '금 모으기 운동'의 주인공도 바로 우리였지. 또 2002년 월드컵 때는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온 나라를 빨갛게 물들이며, 역사상 최초로 대한민국을 월드컵 4강에 올려놓은 세대이기도 해.
자, 어때? 우리 X세대, 정말 찬란하고 멋지지 않아? 아날로그의 낭만과 디지털의 편리함을 동시에 가진 행운아들이라고 할 수 있지. 지금의 세대들에게 당당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
그러니 틀딱이라 부르지 마라!
ps) 80년도생 MZ들!! 이제는 확실히 노선 정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