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白夜)

4화: 사물함 110호, 그날 밤

by 천재손금


아침이 밝자마자 주영은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사무실에 들어갔다. 커피를 내릴 틈도 없이 자영이 보낸 사진들을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 메모지 사진, 단어들의 나열, ‘Madu / Locker’ 스티커.
주영은 같은 팀 수사관 두 명을 불렀다.
“이거, 동생이 도서관에서 나온 단서들 모은 거야. 사건 날짜랑 겹쳐.”
수사관들은 메모를 그대로 읽었다.
“SHELF / 1-10. 왼쪽. 110. 468. LOCK. THAT NIGHT. MARCH 22.”
“‘Locker’ 면 사물함이지.”
“‘Madu’는 마두일 가능성이 높고.”
“110은 번호로 보면 자연스럽고… 문제는 468이네.”
주영은 ‘MARCH 22’에 동그라미를 쳤다.
“월을 굳이 영어로 써놨어. 3월을 떼어내라는 신호일 수도 있어.”
수사관 한 명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468 앞에 3을 붙이는 게 제일 단순하네. 3468.”
주영은 곧장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한 번 더 확인하듯 말했다.
“확정은 아니야. 가설. 현장 가서 눌러보면 끝이야.”
잠깐의 침묵 끝에 팀장이 짧게 정리했다.
“가능성 충분해. 출동하자. 마두역 사물함 110. 입력은 3468부터.”
주영은 차로 내려가며 자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한 번 울리고, 자영의 목소리가 바로 받았다.
“언니.”
주영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먼저 할 말을 골랐다.
“자영아… 너, 어제 그 뒤로 잠은 좀 잤어?”
“그냥… 누워 있긴 했지.”
주영은 한 박자 쉬었다가 말했다.
“고생했어. 그리고—잘했어. 네가 아니었으면 이 단서, 그냥 사라졌을 거야.”
자영 쪽에서 숨이 아주 작게 떨렸다.
“언니, 그래서… 어떻게 됐어?”
“지금 사무실에서 팀이랑 같이 봤어. 네가 보낸 사진 그대로 올려놓고.”
주영은 말의 속도를 조금 늦췄다. 확정처럼 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Madu / Locker’는 마두역 사물함으로 보는 게 제일 자연스럽고, 110은 번호로 보고 있어. 문제였던 숫자 468은… 팀에서도 단정은 안 했는데, ‘MARCH’를 따로 써둔 게 걸려서 3을 앞에 붙인 3468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정리했어.”
자영이 곧장 말했다.
“나도 갈게.”
주영은 바로 단호해졌다.
“안 돼. 너는 절대 먼저 움직이지 마.”
“언니, 나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거기까지는—”
주영은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듣고, 짧게 정리했다.
“자영아. 네 마음 알아. 근데 현장은 우리가 처리해야 해. 너는 민간인이야. 괜히 끼면 문제 생겨.”
잠깐의 침묵. 자영이 낮게 말했다.
“그럼… 멀리 서라도, 언니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
주영은 한숨처럼 웃었다. 화가 나서가 아니라, 걱정이 더 큰 웃음이었다.
“사람 많은 데서만 기다려. 역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응.”
“내가 도착하면 그때 같이 움직일지, 거기서 판단할게. 약속해. 혼자 움직이지 않기.”
자영이 조용히 대답했다.
“약속.”
주영은 마지막으로 짧게 말했다.
“지금 간다.”​
자영은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화면을 내려다봤다. ‘움직이지 말라’는 말을 이해하면서도, 가만히 있는 게 더 어려웠다.
결국 자영은 약속을 스스로 비틀지 않는 쪽으로 타협했다. 역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기. 사물함 쪽으로는 가지 않기.
자영은 마두역 바깥, 버스정류장과 출근길 사람들이 섞이는 자리로 갔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틈에 서면, 누가 봐도 그냥 출근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손끝이 먼저 굳었다. 자영은 주머니 안에서 손을 쥐었다 폈다. 마음이 도서관 반납대처럼 자꾸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걸, 몸으로 눌러두는 느낌이었다.
멀리서 주영이 보였을 때 자영은 반사적으로 한 걸음 나가려다 멈췄다. 주영은 혼자가 아니었다. 같은 팀 수사관 한 명이 옆에 붙어 있었다.
주영은 자영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목소리를 낮췄다.
“약속 지켰네. 안으로 안 들어갔지.”
자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주영은 바로 말했다.
“좋아. 근데 지금부터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알겠지?”
주영은 수사관에게 짧게 눈짓했고, 수사관은 주변을 한 번 훑었다.
“사물함 앞에서는 네가 손대면 안 돼. 너는 뒤에 서 있어.”
자영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영이 한 번 더 확인하듯 말했다.
“우리가 가는 건 ‘확정’이 아니라 확인이야.”​
사물함 110호 앞.
주영이 장갑을 끼웠다.
비밀번호를 눌렀다.
3… 4… 6… 8…
삑.
문이 열리지 않았다.
주영의 손이 잠깐 멈췄다. 자영의 심장이 먼저 내려앉았다.
주영이 다시 눌렀다. 이번엔 천천히, 숫자 하나씩 확인하듯.
3… 4… 6… 8…
딸깍.
문이 열리는 소리는 생각보다 작았다. 그 작은 소리 때문에 자영의 숨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안에는 스마트폰 하나가 있었다.
주영이 조심스럽게 꺼냈다. 전원을 눌렀다.
영상 파일이 있었다. 날짜는 3월 22일.
재생.
백야 룸살롱 뒷골목. 화면은 처음부터 고르게 흔들렸다. 누군가 숨을 참았다가 한꺼번에 내쉬는 듯한 거친 호흡이 마이크를 긁었다. 골목의 가로등은 멀리서만 노랗게 번졌고, 가까운 곳은 어둠이 먼저 형태를 잡아먹었다.
바닥이 한 번 기울었다. 찍는 사람이 몸을 돌린 건지, 누군가에게 밀린 건지 알 수 없었다. 화면 한쪽으로 검은 외투 자락이 스치고, 그 뒤로 벽에 붙은 간판 불빛이 순간적으로 튀었다.
짧은 말다툼. 문장이 아니라 토막 난 말들이 서로를 밀쳤다. 바로 뒤에서 누군가 “야—” 하고 부르는 소리, 그다음엔 더 낮고 빠른 목소리.
툭, 하고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 이어서 사람 몸이 벽이나 바닥에 닿을 때 나는 둔한 충돌음이 연달아 났다.
비명은 길지 않았다. 한 번, 숨이 끊기는 것처럼 얇게 찢어졌다가, 화면이 크게 흔들리며 아래로 꺾였다. 그 순간 렌즈가 바닥을 향했는지, 시야는 검은색으로 뭉개졌고, 대신 발소리와 거친 숨, 누군가 넘어지며 긁히는 소리만 남았다.
그리고 몇 초 뒤—아무 말도 없이, 영상이 뚝 끊겼다.
영상이 끊겼다가 다시 켜졌다. 같은 골목이었다. 가로등 아래가 아니라, 빛이 닿지 않는 쪽—벽과 벽이 맞붙는 어둠 속이었다.
카메라는 더 낮았다. 찍는 사람은 숨을 죽이고 있었고, 숨이 새어 나올 때마다 화면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프레임 안으로 다리와 신발이 스쳤다.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급했고, 다른 한 사람은 주변을 계속 돌아봤다.
그들 사이에 ‘무언가’가 있었다. 화면에 온전히 잡히지 않았다. 다만 손이 동시에 힘을 주는 순간마다,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끌어당기는 소리라기보다, 무게를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는 소리—짧고 둔한 마찰이 반복됐다.
골목 끝에 세워진 차량의 뒤쪽이 잠깐 보였다. 트렁크가 반쯤 열렸다가, 손전등 불빛이 한 번 스치고 꺼졌다.
누군가가 낮게 욕을 뱉었고, 다른 누군가가 “빨리”라고 말했다.
그다음엔 둘이 동시에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 한 번에 힘을 주는 순간의 흔들림. 화면이 크게 꺾이며 어둠이 번졌다.
그리고 트렁크가 닫히는 소리. 금속이 맞물리는, 너무 단정한 소리.
골목은 다시 조용해졌다. 찍는 사람의 숨만 남았다.​
자영은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화면에서 빠져나온 어둠이 아직 손끝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숨을 쉬고 있는데도, 폐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주영이 먼저 스마트폰 화면을 껐다. 아주 짧게, 단호하게. 그리고 자영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자영아.”
자영이 대답을 못 하자 주영은 더 낮게 말했다.
“봐야 할 만큼만 봤어. 더 안 봐도 돼.”
주영은 자영의 손을 힐끗 보더니, 손가락이 굳어 있는 걸 알아챘다.
“손 펴. 괜찮아. 지금은 그냥… 숨부터 쉬어.”
자영은 억지로 손을 폈다.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주영의 목소리가 조금 달라졌다. 형사로서의 말투가 아니라, 언니의 말투였다.
“이런 거… 너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주영은 잠깐 멈췄다가, 다시 단단해졌다.
“근데 네가 여기까지 온 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이상한 걸 만든 것도 아니고.”
자영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아주 작게 숨만 내쉬었다.​
주영이 스마트폰을 챙기며 낮게 읊조렸다.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을까.”
자영은 남자의 ‘손’을 떠올렸다. 떨림 없던, 그러나 필요한 힘만 정확히 쓰던 그 손. 그리고 그 손이 테이프가 아니라 필름을 선택했을 때의 마음. 남기되, 흔적은 남기지 않으려 했던 마음.
자영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언니… 이건 내가 확신하는 건 아닌데.”
잠깐 숨을 고르고, 말을 골랐다.
“그 사람, 바로 신고하지 못한 이유가… 무서워서였던 거 아닐까. 신고하는 순간부터 자기가 ‘목격자’로 묶이고, 그날 밤이 자기 이름이랑 같이 남아버릴까 봐.”
자영은 시선을 잠깐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
“그래서 직접 나서는 대신, 누군가가 발견해서 대신 움직여주길 바랐던 거 아닐까. 들키고 싶진 않은데, 그냥 묻혀버리는 것도 두려워서.”
마지막 문장이 거의 속삭임처럼 낮아졌다.
“그런 마음이면… ‘맡길 곳’을 찾게 되잖아.”​
주영은 바로 결론을 붙이지 않았다. 대신 자영의 말을 ‘수사 메모’처럼 한 번 정리했다.
“그러니까… ‘신고를 못 했다’가 아니라, ‘신고를 못 할 만큼 두려웠다’는 쪽이네.”
주영은 자영을 보며 덧붙였다.
“그럴 수도 있어. 그리고 그 두려움이 이상한 게 아니고.”
자영은 주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쪽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무서워서’라는 말이 너무 쉬워서 더 무거웠다. 그 단어 하나로, 골목의 어둠과 사물함의 금속 냄새가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와 버리는 것 같았다.
자영은 낮게 말했다.
“평범한 사람이면… 더 그럴 수밖에 없지.”​
그제야 자영은 남자의 선택이 조금 이해되는 것 같았다—정확히는, 이해했다기보다 ‘왜 그런 쪽으로 밀렸는지’를 상상할 수 있게 된 쪽에 가까웠다.
살인을 목격한다는 건 사건을 “본다”는 말로 끝나지 않았다. 어두운 골목의 공기, 금속이 닫히는 소리, 사람들의 숨이 뒤엉키는 순간 같은 것들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몸 안에 남아버린다.
그날을 말하는 순간부터, 사람은 다시 그 골목으로 끌려 들어간다. 그 밤이 ‘증언’이 되는 동시에, 자신의 삶 한가운데 ‘기록’으로 박힌다는 걸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자는 도망치듯 사라지지 않고, 반대로—자기 이름을 걸지 않는 방식으로만—무언가를 남겼던 게 아닐까.
자영은 그렇게 생각하자, 이상하게 손끝이 더 차가워졌다.​
그 뒤로 며칠, 자영은 도서관에서 책을 받으며 자꾸 손을 씻었다. 종이 냄새를 지우려는 게 아니었다.
바코드를 찍고, 책 등을 세우고, 반납함을 비우는 손끝에—마두역 사물함 문이 열리던 소리와, 화면 속 어둠이 자꾸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물로 문지르면 지워질 것 같은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자영은 그걸 모른 척하려고 더 자주 손을 씻었다.​
주영은 다시 밤을 새웠다. 전화기 너머의 숨은 전보다 더 짧아졌고, 말끝은 필요 이상으로 단정해졌다.
자영은 뉴스나 기사로 ‘결말’을 찾지 않았다. 찾지 않으려 애쓴 쪽에 가까웠다.
결말이라는 글자 하나가 붙는 순간, 그날 밤의 어둠이 “사건”으로만 정리 돼버릴까 봐. 그리고 주영의 피로까지도 숫자처럼 정리 돼버릴까 봐.
자영은 그 대신, 주영의 목소리만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걸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자영은 그게 모든 질문의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왜 그는 ‘바로’ 신고하지 못했는지. 왜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는지. 입영은 원래 예정된 일이었는지, 아니면 그 밤 이후 더 빨라진 선택이었는지.
자영은 아직도 그걸 하나로 묶어 단정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선명했다. 그가 남긴 것은 ‘정답’이 아니라, 누군가가 끝내 열어보길 바랐던 통로였다는 것. 그리고 그 통로를 열어버린 뒤에는, 이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시간이 흘렀다. 도서관은 여전히 조용했고 자영은 여전히 반납대를 지켰다. 사람들은 계속 책을 빌렸고 계속 반납했다.
다만 자영은 책을 반납받을 때 조금 더 오래 사람의 손을 보게 되었다. 그 손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까지는 몰라도, 그 손이 어떤 밤을 지나왔는지는 가끔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반납이요.”
자영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바코드를 찍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말은 짧았는데, 그 짧은 문장 사이로 감정이 같이 묻어 나왔다. 고마움만은 아니었다. 미안함, 부끄러움,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망설임 같은 것들이—숨을 고르듯 얇게 끼어 있었다.
그 말에 손이 멈췄다. 자영이 고개를 들었을 때 남자는 이미 반납대를 비우고 있었다. 자영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한 걸음만 옮기고 멈췄다. 묻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왜 그날 도서관에 왔는지, 왜 그런 방식으로 남겼는지, 왜 끝내 자기 이름을 직접 걸지 않았는지.
남자는 출입문 앞에서 잠깐 멈춰 섰다가, 이번엔 천천히 몸을 돌려 자영 쪽을 바라봤다. 아주 짧은 인사였다. 고개를 깊이 숙이지도 않았고, 손을 크게 흔들지도 않았다. 그냥—자기가 해야 할 마지막 절차를 마무리하듯, 조용히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 표정은 담담했지만, 눈동자에는 방금의 말과 같은 감정이 남아 있었다.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
자영은 그 눈을 보며 생각했다. 그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영웅도 아니고, 누군가를 구해내겠다는 결심으로 버틴 사람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냥—무서워서 도망친 사람이었을 것이다. 신고하러 갔다가 돌아섰던 순간을, 그 스스로도 오래 미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책임을 끝까지 지지 못한 채, 책임을 ‘넘겨주는’ 방식만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자영은 그걸 비겁하다고 부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 비겁함이 너무 익숙해서 더 불편했다. 평범한 사람은 대개 용감하지 않다. 평범한 사람은 다만, 두려운 채로 살아남는다.
그래서 자영은 그 ‘감사’가 무엇을 향해 있는지 끝내 단정하지 않았다. 발견해 줘서인지, 신고해 줘서인지, 아니면—그날의 “왜”를 끝까지 캐묻지 않아 줘서인지.
다만 한 가지는 남았다. 어떤 진실은 이름 없이도 전해지지만, 어떤 사람은 그 진실을 전하고도 끝까지 자기 이름 앞에 서지 못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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