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04 | 260305 | 기고문
화재출동이 많지 않은 소방서에서 근무하고 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달씩 큰 화재 출동이 없는 기간도 적지 않다. 겉으로 보면 “안전한 지역”이고 “문제없는 동네”다. 실제로 주민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도 비슷하다.
“여긴 불이 잘 안 나잖아요.”
그리고 그 말은 곧 이런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소방시설 점검이나 유지관리를 굳이 계속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이 질문은 자연스럽다. 사고가 없었고, 피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소방 예방 정책은 설명을 잃는다. 화재가 발생하면 대응의 적절성이 평가되지만, 화재가 발생하지 않으면 정책의 성과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특히 소방시설 유지관리와 법정 의무 이행은 비용과 수고가 분명한 반면, 그 효과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부담’으로 오해받기 쉽다.
하지만 예방 정책의 본질은 사고를 줄이는 데 있지 않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정책 평가의 기준이 여전히 사고 이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화재가 왜 발생했는지는 분석해 왔지만, 화재가 왜 발생하지 않았는지는 거의 묻지 않았다. 그 결과 예방 정책은 효과가 없어서가 아니라, 효과를 설명할 언어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늘 방어적인 위치에 놓여 왔다.
현장에서 축적된 경험은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정기적인 점검, 반복되는 유지관리, 귀찮고 형식적으로 보이는 법정 의무 이행이 누적될수록 화재 발생 가능성은 낮아진다. 화재는 대부분 단일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관리 부재, 노후, 방치, 무관심이 겹칠 때 사고로 이어진다. 반대로 말하면, 관리가 지속되는 환경에서는 화재가 발생하기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예방 정책은 늘 “효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가 절하된다. 이는 예방 정책의 한계라기보다, 정책 성과를 사고 중심 지표로만 판단해 온 행정 관행의 한계에 가깝다. 사고가 없으면 성과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구조에서는, 예방은 언제나 비용으로만 남는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문제없었는데 왜 계속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반복된다.
이제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왜 불이 났는가”가 아니라,
“왜 불이 나지 않았는가”를 묻는 것이다.
화재가 발생하지 않은 시설과 지역을 대상으로 소방시설 유지관리 수준과 법정 의무 이행 실태를 살펴본다면, 우리는 중요한 사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 화재 미발생이라는 결과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정책과 관리가 누적된 결과일 가능성이다. 이는 예방 정책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이미 시행 중인 정책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설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내가 근무하는 소방서가 위치한 이 지역 역시 우연히 안전해진 동네가 아니다. 도시가 조성되는 계획 단계부터 용도 배치, 건축 밀도, 도로 구조, 소방 접근성, 소방시설 설치 기준 등이 함께 고려된 결과다. 다시 말해, 이 지역의 ‘화재가 적다는 사실’은 사후 대응의 성과가 아니라, 계획 단계부터 축적된 소방 예방 정책의 산물이다.
화재출동이 적은 소방서는 운이 좋은 소방서가 아니다.
그 지역은 이미 여러 차례의 정책적 판단과 행정적 선택을 거쳐, 사고가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를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결과를 너무 쉽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로 지나쳐 왔다.
화재가 발생하지 않은 하루는 우연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하루가 수년간 반복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계획되고, 관리되고, 유지된 정책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제 소방 예방 정책은 설명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불이 난 이유뿐 아니라, 불이 나지 않았던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예방은 비용이 아니라,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확실한 공공의 성과로 이해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