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이 나에게 엠디 미팅을 잡아 보라고 하신다.
나는 갓 대리를 달았지만, 사실 물류/서비스 부문에서 근무하다 브랜드로 발령받은 지 1개월, 몰라도 모른다 말하면 동료 후배들이 무시할까 봐 애써 덤덤한 척 미션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한 숟갈의 허세를 더하여
"네 문제 없습니다......."
사실 엄청난 문제들이 있었다.
왜 미팅 요청을 해야 하는지 정도만 알았지 어떤 명분으로 이야기해야 엠디가 나와 만나줄까? 미팅 전 사전에 내가 어떤 자료들을 줘야 이들이 우리를 매력적으로 생각할까? 그들은 나를 산업 군의 종사자로 전문성을 가진 실무자로 생각할 텐데 만났을 때 그렇게 못 보이면 어쩌지? 등등 생각해 보니 정말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멘탈이 붕괴 직적이었으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컨택 전 다음 사항들을 점검해 보기로 하였다.
1.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가려운 곳 긁어주기
2. 최소한 스마트하게만 보이면, 잡상인 취급은 안 당하겠지
3. 내가 그들의 동의 없이 제안할 수 있듯이, 그들도 그들의 마음대로 리젝 할 수 있다.
엠디의 입장에서 내가 제안한 제품의 카테고리 경쟁도가 어떤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동종업계 입점 품목들은 어떤 것들이 있고, 가격대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해당 모델의 시장에서의 가격 (타 채널에서의 판매가 대비 어느 정도의 가격 경쟁력으로 판매되고 있는지)
만약 입점 카테고리가 없다면 이 카테고리의 입점 명분을 제시하는 게 우선순위이고, 경쟁사 카테고리 몇몇이 입점되어 있는 상태라면 경쟁사 대비 우리의 제품 입점 시 엠디가 얻게 되는 베네핏 만 언급해 주면 그만이었다.
당시 내가 제안했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종 카테고리가 없는 상태라면"
우리 제품 카테고리를 당신의 사이트에 입점하게 되면, 이 카테고리의 새로운 트래픽이 당신네 몰에 발생될 것이다. 비록 그 트래픽이 처음에는 크지 않겠지만 입점하지 않는다면 없을 트래픽이라 생각한다. 카테고리 트래픽에서 우리 브랜드는 높은 점유율이 있기 때문에 차후 연계 판매와 확장성을 위해서는 우리 브랜드의 a 제품이 필요할 것이다.
"이미 동종 카테고리 입점이 심화되어 있는 품목이라면"
A사, B사의 a, b 제품이 입점되어 있지만 해당 제품 등으로 차별화하기 어렵다 생각한다. 우선, 경쟁사의 이 제품 등은 당신들의 몰 외에 이미 네이버/쿠팡에서도 높은 비중으로 판매되고 있고, 심지어 모델까지 똑같아 장기적으로 우하향 가능성이 있다. 잘 아시겠지만 버티컬 사이트에서 경쟁우위를 가지려면 판매하려는 브랜드 제품이 타 사이트 대비 가격 경쟁력이 있거나, 이 몰에서만 취급하는 전용 상품의 느낌을 고객에게 주거나, 유저 타깃과 입점사와 얼마큼 일치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우선 확실한 건 우리 브랜드의 고객은 젊고, 당신들의 메인 타깃과 일치한다. 만약 우리의 입점으로 매출 자체가 발생되지 않더라도, 우리를 통해 인입된 타깃 고객들의 새로운 수요가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자 이 엠디에게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유통사와 딜러들이 컨택을 할 것인가? 첫인사는 담백하고 예의가 바르게 하되, 우리가 왜 컨택했고 당신과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간결하고 정갈하게 전달해야 한다.
안녕하세요 xx 브랜드 주현84 입니다.
xx 님 소개로 연락드렸고, xx 제안 건 관련으로 연락드렸는데 잠시 3분 정도 통화 가능하세요?
저희가 귀사의 입점을 희망하여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확인해 보니 우리 카테고리의 경쟁사인 A사 B사 입점되어 있으나 전체 가격대가 10만 원 수준의 저가 주력으로 판매가 되더라고요. 자사의 C라는 모델은 우리 브랜드의 주력으로 약 30만 원 수준의 객단가인데, 현재 입점되어 있는 타사의 가격대와 카니발도 없을 것이고 오히려 타깃이 달라 서로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판단되어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해당 내용은 차주나 차차 주 중에 만나 뵙고 인사드리며 가볍게 설명드리고 싶은데 일정 어떠세요? 미팅 전 제가 유선으로 말씀드린 부분은 이메일로 오늘 내 다시 정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영업 전선에서는 수많은 제안과 동의, 리젝이 반복된다. 영업의 기본 전제는 용기에서 시작한다는 말이 있는데 용기란 단순히 용기 내어 먼저 말하는 힘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니즈에 안 맞아 리젝 하더라도 그걸 상처받지 않고 잘 받아들이는 용기까지 필요하다. 고백할 용기와 상대방이 어떤 답변을 하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힘. 어쩌면 영업은 청춘 남녀의 연애와도 많이 맞닿아 있다.
엠디도 사람이다. 엠디도 직장인이고, 실적이 필요한 영업사원이다. 그러므로 엠디가 나라는 존재가, 내가 하는 제안이, 새로운 브랜드 입점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쫄지말고 용기내어 컨택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