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람
국내 한 대형로펌이 내놓은 AI 법률상담 서비스가 화제가 됐다. 일명 'AI 변호사', 불과 몇 초만에 적용 법률과 구체적인 처벌 수위까지 뚝딱 알려준다. 일종의 챗봇 형태로, 사람 변호사의 법률 상담과 거의 비슷한 답변을 훨씬 빠르게 받아볼 수 있다. 물론 정확한 법률적 판단을 받기 위해선 변호사와 상담해야하지만, 기초적인 민형사 상담은 변호사를 직접 만나지 않아도 무료로 조언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인들의 법률 문턱이 확 낮춰진 셈이다.
하지만 제동이 걸렸다. 대한변협이 '변호사가 아닌 자의 법률상담을 금지'하는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개인의 소송자료나 개인정보가 AI 학습 과정에 동의 없이 쓰였을 가능성도 우려한다. 하지만 개발사는 개인 자료가 아닌 기존 판례와 법령을 학습시켰다고 반박했다. 또 이 서비스가 변호사를 완전히 대체하는 서비스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변호사 시장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점을 차분히 설명했다.
AI나 빅데이터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이후 많은 직업군들이 변화를 했잖아요.
변호사라고 해서 거기서 예외가 될 수 없겠죠.
한국은행도 의사, 판사·검사·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건축가 등이 미래에 AI로 대체될 위험이 크다고 내다봤다. 모두 전문성을 갖췄지만 신속성과 효율성, 정확성 등 AI의 장점이 훨씬 많은 직업군이다. 언론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보도자료를 빠르게 요약하거나 스포츠나 날씨 데이터를 분석하는 건 사람이 AI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AI는 보다 빨리, 멀리, 정확하게 전달하는 NEWS의 본질적인 속성과 맞닿아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엔 사람의 얼굴을 본떠 목소리와 동작을 학습한 AI 앵커를 도입한 방송사들도 나왔다. 그 덕에 돈과 시간, 인력을 줄여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투자할 수 있다. 안타깝지만 기자들도 얼마든지 AI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얘기다.
나는 진즉에 AI형 기자이기를 포기했다. 스트레이트 기사를 잘 발굴하는 단독형 기자의 욕망을 버렸기 때문이다. 대단히 침착한 말인 것 같지만, 지금껏 남들보다 새로운 것을 빨리 알지도, 기사를 재빨리 써내지도 못했다는 쓰라린 경험의 반추다.
대신 불도저식 현장 르포나 의미 있는 기획, 심층 인터뷰 기사에 공을 들였다. 돌이켜보니 그 경험들이 AI 기자를 뛰어넘는 무기를 만드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재난 현장에 달려가 날것의 1차 소스를 얻는 일, 당사자나 유가족 혹은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누가 대신해줄 수 없다. 분명 사람의 손을 타야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서서 하는 일, 발로 뛰며 조각난 팩트를 가져오는 일,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고 소통하는 일은 AI가 하기엔 너무 가슴이 뜨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