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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제 Mar 03. 2022

여자 삼대의 끝여름 여행기

옥천 촌캉스, 비 오던 8월의 높은댕이집



할머니와 엄마, 언니, 그리고 나까지 여자 삼 대가 떠난 여행. 8월 끄트머리에 달려있던 여름, 비 오던 날이었다. 



여행을 갈지 말지 몇 번이나 마음을 바꾸었던 할머닌 추적추적 비가 오던 여행 당일 아침, 끼니 수만큼 약을 챙겼다. 목에 손수건을 두르고 가방을 크로스로 매고서 씩씩하게 집을 나섰다. 빗줄기가 거세지자 언니가 와이퍼 속도를 높였는데, 할머니는 그것을 캐치하고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야- 저거 봐라 비 쏟아지니까 빨리빨리 닦는다? 



집 앞도 아니고 인천도 아닌, 누구의 연고지도 아닌 충청북도 옥천의 어느 식당에서 우리는 둘씩 마주 보고 앉았다. 희귀하고 귀한 순간임을 잘 알고 있었다. 



도착한 높은댕이집은



살면서 보아온 어떤 집과도 닮아있지 않았다.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챙겨 온 짐과 음식들을 차례차례 어울리는 자리에 놓아두고서



참아온 궁금증을 풀러 집안 구경에 나선다!



끝여름 비가 묵지근하게 땅을 때리는 소리



비가 건드린 풀 냄새



속눈썹 위에 내려앉는 안개



땔감 위에서 사람 구경 중인 검은 고양이, 같은 것들이 높은댕이집의 첫인상이었다.



가느다랗게 나 있는 흙길을 따라 올라가 보면



오래된 해먹에 기다랗게 누워서 동네를 구경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옆엔 작은 텃밭과



박! 도 있었다.



밤에 깜빡 불이 켜진대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모양새였다.



윗동네에 볼 것이 없다며 진작 내려간 할머니, 현지인 같다.



곁에 다가간 언니.



할머니 덕분에 사람 눈에 띈 감. 초록 초록하다.




숨을 크게 쉬지 않으면 아까울 것 같던 공기였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잠시 쉬다 보니 비가 잦아들었다.



이번엔 동네 산책에 나섰다.



동네는 매우 조용했고 사람 하나 없었다.



얼마 걷지 않아 출출해져서



내려왔던 길을 따라 되돌아갔다.



땔감 위에 앉아있던 검은 고양이, 우리가 놓아둔 밥을 먹고 있었다.



고양이들이 많이 찾아온다기에 미리 고양이 밥과 그릇을 준비해 갔었다. 고양이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은 욕심에 츄르만 사가려고 했다가, 혹시나 해서 검색해보길 잘했다. 츄르는 염분이 높아 식사 대용으론 좋지 않다고 한다. 입맛만 높아질 수 있어서 잠깐의 행복이 긴긴 아쉬움과 슬픔으로 남을지도 몰랐다. 또, 길고양이는 깨끗한 물을 먹을 기회가 많이 없기 때문에 사료를 줄 때는 옆에 꼭 물 한 그릇을 같이 두는 것이 좋다고 한다.



밥때가 되니 고양이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경계를 풀지 않아서 밥그릇을 멀리 두고 지켜보니 그제야 진득하게 식사를 하고 갔다.



집 안 곳곳에 네 군데 정도 밥과 물그릇을 두고서



우리가 먹을 밥을 챙긴다.



비 오는 날엔 역시



김치전이다.



흡사 삼시세끼 옥천 편. 실제로는 벌레가 많아 고생을 했다.



점심때 산 밤막걸리까지 곁들여 저녁상을 차렸다. 잠깐새 모기에게 여러 방 물려서 결국 방 안에 들어가 먹었다.



넷플릭스에 할머니 최애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가 있길래 1회를 틀어보았다.



설거지를 마치고 다 같이 누워본다. 9년 전, 젊은 승윤씨. 첫 화부터 고생했구나.



느긋한 시간이 흐른다.



밤에 나와서 별을 구경하려고 했는데 바깥은 한 발 내딛기가 겁날 정도로 깜깜했다. 방 안에 남기로 한 우리들은 불을 다 끈 채로 나란히 누웠다. 빛이 없어 더욱 예민해진 귀로 풀벌레 소리를 가만 듣다, 꼭 집에서처럼 유난하지 않은 이야기만을 나누고 잠에 들었다. 어떤 것과도 닮아있지 않은 집, 외식도 버거워하는 할머니와의 일박 여행, 나란히 누운 우리 넷, 풀벌레 하나, 풀벌레 둘.. 생경한 옛날집에 누워 평범하지 않은 것들을 헤아리다 몽롱해졌다. 



다음날, 완전히 맑게 갠 아침



남은 재료로 뚝딱뚝딱 아침을 만들어 먹고



적당한 거리에 서서 안녕을 외쳤다. 한 지붕 아래 식사해본 사이. 잘 있어!



비 오는 여름에 여행할 누군가에게 약간의 참고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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