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악은 청자를 주인공이 되게 하고, 어떤 음악은 너무나 명징하게 '타자'인 주인공을 동경하게 만든다. 밑창이 낮은 신발 탓에 굴곡진 아스팔트 바닥을 고스란히 느끼며 서울역으로 빨려 들어가듯 하던 퇴근길. 참담하리만치 고운, 어느 여자솔로가수의 신곡을 들으며 조연을 넘어 엑스트라로 전락하고 만다.
더 이상 예쁘지 않은 기분이라고, 오래된 연인에게 메시지를 남겨볼까 하다가 언제 들어도 불쾌한 새벽 알람같이 들릴 것 같아 관둔다.
곰곰 생각해 본다. 대행사에서 일하며 늘 중심에서 비스듬히 비껴 나 있는 위치가 태도가 되어버린 건지, 화자와 청자 사이에서 하염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던 어정쩡함이, 광화문의 고급진 테이블 맨 끝자리를 넘어 통근길까지 침투하고 만 것이라고 분석해 본다.
예쁘게 빚은 구슬 같은 이 가수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번듯하지만 밋밋한 일상을 살아가던 한 소녀가 '시계토끼'같은 변수를 만나 신세계에 떨어진 듯한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그곳에선 모두가 이 낯설고 아름다운 이방인에게 한없이 친절하다. 다정한 낙원에서 소녀의 일이라곤 사방에 널려있는 호의와 사랑을 차근히, 양껏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뭉게뭉게 불어나는 상상의 한 귀퉁이에서 사회인 자아가 코웃음을 치고 휘휘 손을 저으며 말한다. '한창 정신없이 바쁘게 일할 나이에 웬 사치스러운 감상이냐'고.
한창 바쁘게 일할 나이인 나의 마음은 무슨 놀이를 하든 주인공을 자처하던 유치원 때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카드캡터체리 놀이에선 빨간 모자를 쓴 주인공 체리가 되고 싶고, 소꿉놀이에선 뭐든 척척 해내는 엄마가 되고 싶고 뭐 그런 거다. 매일 매연을 마시며 인천과 서울역을 왕복하는 풋서른 직장인도 여하튼 가끔은 무조건적인 박수와 하염없는 호의를 원한다.
그래, 이 노래를 들으면 주인공이 되고 싶어진다. 알록달록한 천이 풍성하게 덧대어진 이방의 전통 의상을 입고서 맥락 없이 캉캉춤을 추는, 또 맥락 없이 박수갈채를 받는, 무맥락 속 무조건적인 주인공이 되고 싶어진다.
지하철 1호선에 담겨 용산과 노량진 사이의 축복인 어둠 내린 한강, 그리고 창에 비친 내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음악은 후반부로 치닫는다. 후렴마저 옅어지는 때, 집까지 남은 거리를 가늠해 보는데 '둥둥' 다시 전주의 북소리가 흘러나와 마음을 쿵, 하고 울린다.
무언가 시작될 듯 벅찬 전주로 인해 가까워졌던 현실이 순간 아득해지고 잠시 꿈꾸는 기분이 된다. 가만 생각해 보니 좀 아까 직접 설정해 놓은 '반복 재생'이 오차 없이 제 일을 했음을 깨닫는다.
인과관계를 따지는 새 도입부는 다시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간다. 반복 재생을 깜빡 잊게 만든 망각의 축복에 고마움을 느끼며, 주인공도 오늘 같은 이 마음을 겪겠거니 하며 눈을 붙인다.
창밖으로 한강이 멀어지고, 얕은 잠에 빠져들 무렵 둥둥, 나만의 전주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