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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제 Jun 19. 2024

멸종 위기인간


세상에 멸종되지 말아야 하는 인간의 유형이 몇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세상이 아무리 너무하게 굴어도 ‘끝까지 다정한 사람’. 사회에선 대체로 '위'로 올라갈수록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있다면 아마 위염을 달고 살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저도 마음과 위염을 잘 관리해서 꾸준하게 다정한 인간으로 남고 싶습니다. 다정한 채로 늙는 것은 저의 목표 중 하나입니다.

또 하나는 ‘웃길 때만 웃는 사람’입니다. 다정한 사람보다 희귀한 것 같아요. 제 오랜 기억 속에서 예외 없이 웃길 때만 웃던 애가 그 모습을 간직한 할머니가 되길 소망하며, 꼭 자신 같은 후손들을 세상에 많이 남겨주길 진심으로 바라며 이 글을 남깁니다.




"전교 1등이었던 걔, 지금 뭐하는지 궁금하지 않아?"


고등학교때 친구들과 만나면 주고받는 단골 에피소드를 꺼내며 처음 듣는 것처럼 깔깔댔다. 그러나 모래알만큼 많은 추억들 속에서 공통의 추억을 건져내는 일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은 일. 기대감에 하압 입을 벌렸다가 쩝 하고 시들해지는 순간이 점차 잦아졌을 무렵 한 친구가 모두가 알 수밖에 없는 주제를 꺼낸 것이다. 오래간만에 건져 올린 공통의 주제에 모두가 눈을 빛내며 저마다의 추측을 붙였다.


“그러게 뭔가 대단한 어른이 됐을 것 같은데 “

"아니지 학창 시절에 너무 모범적이었잖아 지금쯤 핫하게 살고 있을 듯"

"큭 얼마나 핫하게"


모두가 알던 전교 1등의 현재를 두고 극단적 상상으로 이어지는 시끌시끌한 대화 속에서 나는 모두가 모를 수밖에 없는 그 애를 조용히 떠올렸다. 나도 있었다 궁금한 애.


대체로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던 그 애. 여고에 못해도 100명 정도는 있을 것 같은 정수리까지 질끈 묶은 포니테일에  삐죽 나온 잔머리.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따분해 보였던 삼백안. 작가가 꿈이었던 야구광. 그 애 이름은 수빈이었다.


나의 고등학교 1학년은 온통 친구였다. 친구가 많아서가 아니라 친구가 없어서 친구였다. 중학교 때까지 어디서나 왁자지껄 친구들과 잘 지내왔던 나는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가 다 끝나갈 때까지 반에서 마음 붙일 친구 하나를 만들지 못했었다. 그렇다고 학기 초 빠르고 체계적인 그룹 짓기에서 아예 빗겨 난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도 어떤 교집합을 공유하던 한 그룹과 공공연한 그룹의 순간에 함께했었다.


그룹의 아이들은 꾸밈에도 유행에도 민감했고 그만큼 세련됐었다. 그만의 트렌드에 어울리지 않는 내 모습이 스스로 보기에도 좀 튀어서 엇비슷하게 맞추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아이라이너와 체리색 틴트를 샀고, 버스 계단을 오르기 힘들 정도로 좁게 교복치마를 줄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것저것 해봐도 즐겁지가 않기에 근본적으로 나는 내가 그 애들과 다르다고 결론지었고, 짧고 좁게 수선한 교복치마는 오래된 피아노 의자 안에 처박힌 이후로 완전히 잊히고 말았다.


하루는 교실 안에서 유난히 앳되고 하얗던 한 친구가 얼마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에 눈물을 뚝뚝 흘린 적이 있었다. 그 애의 단짝친구는 드륵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어디선가 휴지를 한 움큼 집어왔다. 한 움큼의 휴지에서 한 장, 한 장을 건네는 수고로움은 분명 사랑이었다. 눈물을 문제집에 떨굴세라 유심히 지켜보며 한 장, 한 장 휴지를 건네줄 친구 한 명을 바라왔었던 것이었다 나도.


저마다의 뜨거웠던 여름도 지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나와 그룹의 관계는 1학기때와 크게 다르지 않게 미지근했다. 여고에서의 이동 수업은 단짝 친구와 팔짱을 끼고 걷는 시간. 서로의 단짝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 순간이 늘 긴장되었다. 기나긴 복도에 막막함을 느끼며 종종걸음을 걷는 내 앞으로 휙, 아무렇지 않게 수빈이 혼자서 걸어갔다.


이동 수업이 곤욕스러웠던 나에게 수빈의 무던함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그 애의 움직임은 늘 그렇게 아무렇지가 않았고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했다. 요즘 시대였다면 '너 T야?'라는 말을 귀에 인이 박히게 들었을 상이다. 그 애는 여자애들 사이에서 주류가 되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야구 얘기라면 언제나 흥분하며 말을 가로챘다. 교실에서 그 애 목소리 들리는 순간은 딱 그런 때였다.


그 애는 그렇게 간결했다. 웃길 때만 웃었다. 누가 자신을 짜증 나게 하면 짜증 난다고 말했다. 그 상대가 누구든 그렇게 했다는 사실은 관계와 언어에 특히 민감한 여자애들만 있는 고등학교에선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 애의 성은 '조'. 나는 '주'로 앞뒤 번호로 불렸다. 그런 이유로 이동수업 때마다 같은 조로 배정이 되었는데 나는 그 사실이 은근히 안심이 됐다. 저 애랑 있는 동안은 나도 덩달아 심플해지는 것 같았기에.


어느 날은 나른했던 오후 수업의 끝을 알리는 쉬는 시간 종이 치자마자 반 애들이 전멸하며 책상 위로 엎어졌다. 다음 수업 종이 치고도 많은 애들이 못 일어났다. 국어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시더니 피로의 한숨을 푹 쉬셨다. 얘들을 깨워 말아하면서도 내심 안쓰러워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선생님의 동정심이 이성을 지배하는 순간을 누리며 책상에 엎드려 미적거렸다.


"이 글 누가 쓴 거야?"

"수빈일걸요"

"그래?"


꿈결같이 국어 선생님과 반 애의 대화가 오갔다. 수빈, 이라는 말에 나는 부스스 책상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손에는 반에서 쓰는 반일기장이 들려있었다. 살가운 담임선생님을 둔 우리 반에는 그런 게 있었다. 우리들은 대부분 그것을 장난스러운 낙서장 정도로 생각했었다.


가끔 그 애가 귀에 뭘 꽂고 거기에 뭔가 끄적이는 걸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누구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그 애의 글을 국어 선생님이 심상치 않게 보신 듯했다.


"너 꿈이 작가야?" 국어 선생님이 수빈에게 물었다.

".. 네" 수빈이 답지 않게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심상치 않게 보신 게 맞았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은 수빈을 불러 따로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까지다. 궁금했던 애에 대한 나의 기억은 그 애의 꿈을 그 애의 입을 통해 들었던 순간까지다.


좋아하는 것이 간결하고 강렬했던 수빈을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종종 떠올리곤 했다. 나는 아마 수빈을 계속 궁금해할 것이다. 간결했던 그 애는 남들 다 하는 페이스북도 안 했었으니까. 그러니 시대가 바뀌어 인스타그램이 주류 소셜미디어가 된 지금까지도 코빼기도 볼 수 없음을 물론이고 그 애를 기억하는 친구들조차 내 주변엔 없다.


‘멸종됐나’


가끔은 궁금하다. 교복을 벗고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넘겨받은 스무 살 무렵에도, 대학을 졸업하고 막 사회인이 되었을 때도, 너와 어울리진 않지만 연애도 하고 이별도 하고, 세상에 잘 바뀌지 않는 질서 아닌 질서 속에 놓였을 때도 너는 그대로 간결하고 강렬한가


그때 내가 용기 있다 느꼈던 웃길 때만 웃고 짜증 날 땐 마구 짜증을 내는 너의 공평함도 그대로인가, 아직도 야구를 좋아하나, 작가가 되었나 그런 것들.


나는 아직도 자주 눈치를 보고 일상처럼 참는다. 좋지 않을 때 좋지 않은 소리를 하는 것보다 어색하게 웃는 게 더 쉽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좋지 않은 끝맛이 마음속을 맴돌면 나는 어김없이 네가 떠오른다.


너에게 꿈을 묻던 국어 선생님의 말에 수줍지만 분명하게 답하던 그 교실에서처럼 너는 여전히 간결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한가. 따분한 표정과 유려한 글솜씨가 멋지게 잘 어울렸던 너는 그대로인가.


어느 날 네가 그만 궁금해지는 날이 올까 이렇게나마 기록하고 너를 자랑해 본다. 너의 희귀하고 귀한 성미를 잘 지켜내 달라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을 만나 풀이 죽을 순 있어도 절대 꺾이지 말아 달라고, 그리고 너의 특별함을 잘 지켜주는 사람을 만나 합리적이고 시니컬한 할머니로 나이 들어달라고 보내지 않을 편지를 몇 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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