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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공원 Oct 22. 2023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요즘

오늘을 살아가는 법 



인쇄소로 파일을 넘기기 직전, 작업을 중단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음악 공연에 사용할 포스터를 만들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공연이 취소된 것이다. 공연의 경우 날짜와 시간이 정해져 있어 일정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오늘 꼭 인쇄를 넘겨야 해서 나는 전날에 잠을 줄여가며 인쇄가 좀 더 잘 나올 수 있도록 색감을 조정하고 세세한 부분을 다듬었다. 그리고 그 다음 과정도 차질이 없도록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미 모두의 확인을 거쳤고 ‘끝’이라는 도장을 찍기만 하면 되는 순간 공연이 취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포스터 한 장에 담긴 그간의 노력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코로나 이후로 행사가 축소되거나 온라인으로 변경된 적은 있지만 하루아침에 전면 취소되어 앞으로도 기약이 없는 것은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에게 무언갈 알리기 위한 시각물을 만드는 게 직업인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기억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일해왔다. 사람들에게 보여지지 않을 것을 만들고 일이 끝나다니. 내가 할 일을 한 게 맞을까. 얼떨떨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요즘. 의욕을 가지고 뭔가를 하긴 어렵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끌려다니다 보면 내가 열심히 하는 게 무슨 소용 일까 싶어 힘이 빠진다. 하지만 이런 오늘에도 여전히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당장 내일도 알 수 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법을 알려 준 사람들은 문을 닫은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고, 손님이 없어도 꿋꿋이 가게를 여는 평범한 이웃이었다. 그들을 유리창 너머로 지켜보며 뭉클한 마음으로 조용히 응원을 보냈던 것 처럼 오늘의 나에게도 응원을 보내본다. 


덧.

코로나가 시작된 무렵에는 갑자기 모든 행사가 취소되고 디자인 의뢰도 끊겨 당황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일기도 쓰고 책도 읽고 하다가 나중의 숙제로 미뤄두었던 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걸 보면 코로나가 아니어도 사람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이 맞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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