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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공원 Feb 28. 2021

쓸모 찾기

박연습의 단련일기

학창시절에 쓰던 고리를 얼마전에 다 사용했다


아직 제 쓸모를 다하지 못한 채 버려지는 물건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유난히 감정이입을 한다. 얼핏 볼품없고 하찮아 보이는 것이라도 어딘가 쓸모가 보이면 잘 외면하지 못한다. 길에서 물건을 주워올 때도 많다. 몇 년 전에 친구와 작업실을 시작할 때도 부족한 것을 길에서 주워 온 물건으로 해결을 했다. (작업실이 망원동이라 그런지 쓸만한 물건이 많았다)


그렇다고 '맥시멀리스트'는 아니고 취향은 '미니멀'한 편에 가깝다. 채우는 것 보다 비우는 것을 좋아하고,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것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10평이 채 안 되는 작은 원룸에서 여백을 누리기 위해 나름의 효율을 고민하며 부족한 공간을 관리하면서 산다. 하지만 왜인지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사사롭고 작은 물건은 비효율적으로 끌어안고 살고 있기도 하다.


오늘은 그 물건 중에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단어장 같은 것을 묶는 데 사용하던 '바인딩 고리'다. 학창 시절에 사용하고 남은 10개 정도 되는 고리를 20년 가까이 작은 비닐에 꼼꼼히 담아 보관하고 있다가 며칠 전에 거의 다 사용을 했다. 드로잉이나 스케치를 할 때 이면지에 구멍을 뚫어서 만든 연습장을 사용하는데 이면지를 한 묶음씩 묶을 때 이 고리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집에 있는 바인딩용 실로 이면지를 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오랜 시간 서랍 속에 밀봉된 채 나를 따라다닌 이 고리가 생각났다. 역할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을까, 연습장이 한 권씩 쌓이면서 며칠 전 마지막 바인딩 고리와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별은 아니고 이사라고 해야겠지만.


 
  

> 주인을 찾지 못한 소소한 물건은 


'당근마켓'에 '무료 나눔'으로 올려두고 잊고 있으면 언젠가는 연락이 온다. 나는 '구형 프린터의 검정 잉크, 여분의 문구, 작은 기념품' 등 내가 사용할 일은 없지만,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은 그렇게 정리를 했다. 필요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소한 것이어서 큰 기대는 없었는데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어도 모두 제 주인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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