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많은 능력을 요구하는 직업이다.
전공 지식이 있어야 하고, 전달력도 있어야 한다.
좋은 수업을 하려면 그렇다.
교사들은 대체로 모범생 집단이면서 일종의 쇼맨십 같은 것도 가져야 한다.
게다가 아동의 특성을 이해하고, 아동과 소통해야 한다.
이것을 전부 다 가진 교사를 양성하는 커리큘럼을 교대와 사대, 특히 사대가 가지고 있는지는 무척 의문스럽지만 대체로 이러한 성향 혹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교직을 희망한다.
그래서 학교가 굴러간다.
학교는 아직도 여전히 교사 개개인의 능력에 너무 의지한다.
아동, 청소년과 소통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면서 또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마음을 열면 어렵지 않은데 마음을 여는 것이 어렵다.
어떤 면에서는 학생을 교육으로 변화시키겠다는 교사의 사명감이 강할수록 마음을 여는 것이 어렵다.
소통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교사가 학생을 대체로 미완성의 존재로 보거나 훈육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의 방법적인 면에서 미성숙할 수 있으나 이 존재를 완성된 존재로 생각하면 그것을 상대방은 바로 알아챈다.
그리고 대체로 그러한 능력은 어릴수록 더욱 발달되어 있다.
교육을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아동.청소년의 감정이나 생각, 주장이 미성숙한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되고,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상냥하지 않다.
타고난 기질이 그렇다.
말을 예쁘게 하는 편도 아니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매우 다양한 환경에 있던 대부분의 학생들이 심각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나를 많이 찾아왔다.
내가 묻지 않았지만 학생들이 이유를 말해줬다.
“선생님만은 제 생각을 편견없이 들어주실 것 같았어요.”
그 중에서 아주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 학생들 몇몇은 설득하여 상담교사나 담임교사에게 상황을 공유하고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하였다.
학생들을 설득하기 이전에 다른 선생님들에게 문제를 공유하지 않았다.
그것은 학생들을 더욱 안심시켜주었다.
나는 그 모든 학생들의 말이나 감정을 다 이해한 것이 아니다.
그냥 인정한 것이다.
큰 사건이 아니면 대체로 그것으로도 학생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받아들여지는 것은 중요한 경험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교과 공부를 하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초중고 교육과정 내에서 매우 뛰어난 학생이었으나 그것이 다 나의 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게으르고 대체로 타고난 재능의 덕을 많이 보았으나 이러한 학습능력을 타고난 학생은 1%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행복한 인생이나 성공한 인생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학생들에게 너 자신에 대해 알기를, 그리고 주변 이웃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기를,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였다.
(요즘 들은 어떤 강의에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너 자신의 잠재력을 알라!"는 뜻에 가깝다고 한다.)
너의 관심이 생긴 그것에 대해 너는 열중하여 공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독서는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말로 하다가 도서관 수업도 몇 년 했다.
경험은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내 수업은 고등학교 수업시간 치고는 무척 시끄럽고 진도가 안 나갔다.
학생들은 무언가 계속 해야 했다. 수행평가에도 안 들어가는 활동도.
놀라운 것은 학생들이 무척 진지하고 주도적으로 임하며 만족했다는 것이다.
특히 광고 만들기와 극화 수업이 그러하였다.
단 한 명도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과정 속에서 즐거운 경험에 대해 학생들은 점수보다 경험을 더욱 소중히 여긴다.
일부는 그 수업이 진로를 정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수업 시간에 일어나지 않은, 답사 수업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학생들은 심지어 답사 코스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
그것도 매우 즐겁고 열정적으로.
(무려 고3도 있었다.)
이제는 학생 개개인의 개성을 억압하여 일종의 군사화된 단체 활동을 시키거나 그러한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학생들이 너무 개인주의적이 될까?
아니다.
공감할 수 있는 시간, 방법을 경험하고 배우도록 하면 된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절대로 이기적이 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수업 공동체를 만들고, 학급이나 동아리를 만드는 방법이다.
어떤 쌤이 동아리 시간에 잠깐 들어왔다가 진정 깜짝 놀라고 갔다.
"야~ 저렇게 못 하는데 어떻게 쟤네들 모두 저렇게 행복해하고 있어?"
음.. 나는 못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즐겁게 참여했으면 그걸로 완성형이다.
우린 행복한 동아리 활동을 했다.
나쁜 교사는 교사의 사명감이 없는 교사가 아니다.
학생이 스스로 누구인지 모르게, 정해진 답안 대로 풀고 생각지 못 하게 하는 교사이다.
교육의 문제는 정책의 문제도 있지만 교사 양성과 임용, 재교육 문제도 크다.
언제까지 한 문제 더 맞힌 사람이 더 좋은 교사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주장할 것인가.
학생도 변했고, 시대도 변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