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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헤미안 Lyn Apr 27. 2020

직장인 3,6,9병보다 무서운 건 10년병?

직장생활 10년 하면 나타나는 현상

  휴직 후 친한 언니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원래 지인들의 안부를 잘 챙기는 스타일이 못되는데다 근래 회사생활에 녹초가 되면서는 더더욱 연락이 뜸했다. 그러다 휴직 후 나도 기운을 차리면서 그동안 못 챙긴 지인들의 안부를 체크했다. 


내가 전화한 날 언니는 마침 10년 만에 일본에서 온 친구를 만나고 있었는데 내가 스트레스로 건강이 나빠져 휴직했다고 하자 언니는 옆에 있는 친구도 이번에 일본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영구 귀국했다고 했다. 그 친구도 회사생활에 너무 지치고 몸도 안 좋아진 데다 아버지도 몸이 편찮으셔서 겸사겸사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언니는 직장생활을 우리 정도 하면 다들 이렇게 되나 보다 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 정도'의 기간은 10년 내외의 직장생활에 과장 정도의 직급이었다. 


그 언니가 그랬고 그 언니의 일본에서 온 친구가 그랬으며 내가 그랬다.




나는 휴직할 당시 직장생활 10년 차, 만으로는 9년 정도를 근무했다. 그동안 흔히들 직장인 병이라 말하는 3,6,9병이 내게도 주기적으로 찾아왔는데 결국 10년 병은 이기지 못한 셈이다. 3년 차 때는 내가 속한 파트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이를 순환보직시키는 바람에 새로 온 이들과 일하면서 생기는 업무 공백을 메우느라 혼쭐이 났다. 상무님은 말단직원인 나에게 새로 오신 차장, 부장님을 잘 보필하라 했고, 그렇게 한 해 동안 온갖 업무를 챙기느라 지친 나는 그 해 연말 순환보직을 시켜달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6년 차 때는 인력 부족을 이유로 또다시 관련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새로운 업무로 배치되어 고군분투했으며, 이후 여러 해가 지나도 개선되지 않는 업무처리 방식과 조직운영 방식에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휴직을 했다.


물론 돌이켜보면 매 해가 다사다난했고 재직기간 내내 끝없는 도전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주위 사례를 살펴볼 때 직장생활이 10년 가까이 되면 비교적 분명하게 그 길이 나뉘는 것 같다. 전화 통화했던 그 언니의 경우에도 당시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출산과 육아로 경력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언제까지 눈을 부릅뜨고 경력 공백이 없을 남자 직원들과 경쟁하며 야근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어느 순간 회의가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돌연 퇴사한 시점이 과장으로 파트를 맡아 수년째 열일하던 때였다. 


또한 내가 휴직했던 시기와 유사한 시기에 가까이 일하던 동기들이 퇴사를 했다. 물론 퇴사하는 사람은 늘 있었지만 그들은 비교적 회사생활을 잘 버텨왔고 장기근속을 할 것이라 예상되었던 사람들이었기에 다소 놀라웠다. 그들 모두 개선이 없는 업무환경에 염증을 느꼈다. 한편 나와 비슷한 시기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또다른 지인은 장기간 개선되지 않는 근무조건에 회의가 들어 퇴사를 염두에 두고 특단의 개선책을 제안했고 회사가 결국 이를 받아들인 경우도 있었다.


모두들 한결같이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 했다.




반면 그 고비를 잘 넘기는 한 장기근속을 하는 듯했다. 나의 이전 상사들은 그들의 직장생활 10년 차 즈음에 이직 준비로 한동안 분주했지만 현재 아직 근무 중이다. 그리고는 그로부터 5~6년이 흐른 지금 더 이상 이직하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이제는 이 조직에서 팀장이 되고 정년을 맞이하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의도는 이전보다 훨씬 유해진 상사와의 관계에서, 눈에 띄게 줄은 조직에 대한 불만 표출에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회사 내 조직 변경에 민감했고 경영진의 업무지시에 민첩했으며 대리, 과장과 같은 실무인력의 풀에 관심이 많았다. 아마도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직장생활 10년 정도를 하고 나니 회사 내 이것저것 소위 눈꼴사나운 것, 부정한 것 등등을 의도하지 않아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서 간, 개인 간, 상하 간의 온갖 역학관계와 같이 일하는 이들의 업무역량, 그리고 내 업무와 조직의 사업에 대한 통찰력이 견고해지면서 나의 현재 위치에 회의감이 들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담당업무 역시 가장 많은 시기일 것이고 조직은 당연하게 그 일을 요구하고 있다. 


때문에 타 부서에 자료 요청을 하거나 같이 회의를 하게 되는 경우 또래 과장들의 어두운 안색을 보면 또 다른 나를 보는 것 같아 연민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업무를 위해 바쁘고 지친 그들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타 부서에서도 나에게 같은 마음으로 업무 요청을 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의 조직에서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인듯 했다. 같이 일했던 자문 변호사님은 내게 휴직 후 복귀할 것인지를 물어보셨다. 지나가는 투로 가볍게 물어보셨지만 수십년의 경력을 가진 파트너 변호사로 로펌에서 그동안 다양한 변호사들의 사례를, 그리고 고객사의 다양한 사례를 지켜보며 으레 합리적으로 예견되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기에 그 질문을 하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멈칫했다.

 



직장생활 10년, 내게는 오지 않을 것 같던 그 시기가 마침내 나에게도 찾아왔다. 그리고 절대 내 몸을 아프게 하거나 나를 직장에 갈아 넣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한참을 갈아 넣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직장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또는 그만 박차고 나가야 할지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정답이 없고 오롯이 개인의 선택이기에 더 어려웠다. 때문에 나는 1년의 휴직기간 동안 조용히 내 마음과 몸의 변화를 살펴보기로 했다. 지친 나를 돌보고 내가 현재 서있는 길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방향에 있는지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직장을 다니면서 하기에는 내 사고와 행동과 선택에 제한이 많으므로 가능하다면 완전히 업에서 손을 떼고 쉬어보아야 할 것 같았다. 직장을 다니면서는 이러한 생각조차 귀찮고 피곤해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데다 당장 급한 일이 아니기에 자꾸 결정을 미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의 휴직기를 보내고 난 지금, 회사로 돌아가든 돌아가지 않든 그리고 다른 무엇을 선택하든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도 온전히 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사진출처: Pixabay-RobinHigg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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