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헤미안 Lyn May 07. 2020

직장 밖 세상의 문을 열어두었습니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로 더 이상 위안하지 않기를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한 가지 다짐했던 것이 있다. 수십 개의 이력서를 써가며 어렵게 들어간 회사지만 혹시나 내가 회사생활에 잘 맞지 않거나 배움은 적고 괴롭기만 하다면 딱 3년만 근무하고, 정확히는 버티고 나오자고 다짐했다. 기간을 정한 이유는 3년 정도의 기간이면 회사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담당업무가 나에게 맞는지 신중히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이후 새로운 도전을 위한 최소한의 자금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한 직장생활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업무는 할만했고 대인관계도 원만했다. 그리고 무엇이든 배우려고 노력했고 노력한 만큼 배워갔다. 한동안 야근도 했고 속상한 일도 있었지만 꼭 해보고 싶었던 업무를 맡아볼 기회도 있었다. 문서 작성 능력과 보고 능력을 함양했고 통장잔고가 쌓여갔다. 그렇게 정신없는 3년을 보내는 동안 딱히 회사생활이, 조직생활이 잘 맞지 않다고 느끼진 못했다. 


이후 새로운 업무를 맡아 다시 처음부터 배우느라 바빴다. 스트레스가 많아지고 몸이 지쳤지만 동기들이 하나둘씩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그냥저냥 밥벌이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보였다.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으로 해외여행을 가고 맛있는 것을 사 먹고 주말에 여가를 즐기는 생활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익숙한 회사의 울타리 내에서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로 위안하며, 월급의 대가로 정신적, 신체적 소진을 당연시하며 밥벌이를 계속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야생에서의 생존능력을 잃은 채 시간 맞춰 주는 먹이를 위해 온순한 척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물원 속 무기력한 동물이 되어있었다.


직장인으로 직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직장인 친구들만 만나다 보니 내 생각도 직장 안에 갇혀 울타리 안 세상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게 되었다. 울타리를 먼저 뛰쳐나간 사람들 중에서는 나쁜 소식만 회사 내에 회자되었고 그렇게 모두들 회사 밖은 지옥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잦은 업무 변경으로 어느새 비빔밥처럼 뒤섞인 내 경력과 서른이 훌쩍 넘어 마흔을 바라보는 내 나이에 울타리 안 익숙한 것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려니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스트레스는 높아졌고 견디기 힘들어진 스트레스는 결국 몸을 병나게 했다. 그렇게 심신이 피폐해진 후에야 나는 허겁지겁 휴직을 했다. 






휴직하는 동안 만난 직장 밖 세상은 꽤 살만했다. 생각조차 못해본 직업과 다양하고 재밌는 일들이 가득했다. 전문지식이 없음에도 실시간으로 배워서 동시에 다른 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했고 누구나 아는 특별하지 않은 내용이 인기 있는 콘텐츠의 주제가 되었으며, 전혀 상관없는 일들이 서로의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한편 한 가지를 잘하기보다는 여러 가지를 그럭저럭 하는 것도 괜찮다는 것을 배웠다. 


그간 내가 직장 안에서 생각했던 Side Job이나 Next Job은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과외를 하거나 또는 모은 돈을 전부 투자해 가게를 여는 것 정도였다.  


특히나 우연한 기회로 스타트업과 크리에이터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교육을 받으며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지면서 그간 내가 너무 울타리 안 좁은 세상에서만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디어가 없어서, 기술과 재능이 없어서, 그리고 돈이 없어서'라고 변명하며 직장 밖 세상을 자세히 살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며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함을 합리화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앞서 시작한 똑똑하고 멋진 이들이 한편으로는 사업가로, 한편으로는 크리에이터로, 그리고 또 일부는 직장인의 삶까지 유지하며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스타트업 CEO와 크리에이터들의 강연을 쫓아다니고 관련 교육을 받으며 나도 해보고 싶은 의욕을,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여기저기 이동하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고 매일이 즐거웠다. 


회사에서는 배움이 적은 일을 시간과 체력을 투입해 이뤄내느라 지치고 피곤했는데 회사 밖에서는 가는 곳마다 새로운 것들로 나를 충전시켜 주었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그토록 미뤄오기만 하던 글쓰기와 드로잉을 시작했고 또 다른 도전도 계획 중이다.






새롭고 즐거웠던 1년의 휴직기간이 끝나고 다시 출근해야 하는 시기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휴직하는 내내 복직 여부를 고민했던 회사가 이제는 다시 한번 다녀볼 만할 것 같다. 아마도 이제는 직장 밖 세상이 꽤나 괜찮음을 알아차렸고 언제든 직장 밖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직장 밖 세상을 체험해보니 내가 부족한 부분도 알게 되었다. 한동안 직장 안에서 성실하게 밥벌이를 하며 직장 밖 세상에서 필요한 준비를 꼼꼼히 해나가야겠다.


나는 직장 밖 세상의 문을 그렇게 열어두기로 했다. 



*사진출처: Pixabay-Pexel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