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엄마가 가장 좋은 엄마래

by 주주비

오래간만에 이동진 님의 파이아키아를 들었다. 마가렛 렌클의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Late Migrations)에 대한 에피소드였는데, 이동진 씨가 평소에 좋아하는, 잔잔하고 관조적이면서 깊은 감동과 여운을 주는 책인 것 같았다.


편안하게 쭉 듣고 있는데, 한 문구가 귀에 콕하고 박혔다.


“가장 좋은 엄마는 행복한 엄마입니다.”


평소에 항상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내 주위의 많은 엄마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하지 않다.


행복이라는 단어 자체가 함정이 많은 단어이긴 하지만, 가장 단순한 의미의 안정됨, 편안함, 그러한 감정이 결여된 채로 살고 있는 엄마들을 나는 많이 경험했다.


그러한 의미로서의 행복함이 결여된 채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엄마들만은 아니겠지만, 엄마가 각자에게 미쳤던 특별한 영향을 우리 모두 잘 기억하고 있다.


나의 엄마는 행복하지 않았다. 불행했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 그녀는 자신의 불행함을 표현하는데 전혀 주저함이나 거리낌이 없었다.


“너희들만 아니었으면…”

“내가 너희들 때문에 참고 산다.”


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제발 부탁이에요. 우리들 때문에 참고 살지 말아요.”


오늘날까지도 그녀는 자신의 불편함을 표현하는데 전혀 주저함이나 거리낌이 없다. 단, 그녀의 삶은 과거보다 그나마 행복하다.


그녀가 토로하는 불행함보다는, 그녀의 불편함이 그나마 견디기가 훨씬 수월하다.


엄마가 우리들때문이라고, 말했던건 핑계였고, 혼자 독립할 용기도 없고, 능력도 안되었기 때문에 그녀가 불행을 꾸역꾸역 감수하면서 살았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었다. 절대 나에게 불행만 선사하는 이에게 묶이지 않을 거라고. 엄마처럼 본인의 능력이 없으면서 남을(아이를) 탓하는 비겁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내 주위의 엄마들은 행복하지 않다. 엄마들에게 행복을 강요하는 것도 웃기지만, 최소한 엄마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면서 살진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들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When Women Commit Violence라는 도서 리뷰를 읽었다.


그 리뷰에는 범죄를 저지른 여성들을 치료하는 임상 심리학자 모츠(Motz)가 등장한다. 그녀가 치료하는 여성들은 다양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특히 방화로 구속된 한 여인을 보며 그녀는 방화라는 범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방화는 도저히 표현할 출구가 없는 감정이 극단적으로 발현된 것이라고.


어린 시절 나의 엄마는 실제로 방화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불행함을 거리낌 없이 토로했던 그녀조차도 표현하고 싶었던 감정들을 마음껏 분출하지 못했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실질적인 방화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감정적인 방화를 수도 없이 폭발시키며 살았다고 본다.


누가 죽어나가지 않는 이상 딱히 범죄라고는 규정되지 않는 집안 내에서의 다툼 또는 폭력. 그것들에 그녀 또한 노출되어 있었다.


When Women Commit Violence라는 도서는 범죄를 저지르는 여성들에 대해 다뤘다지만, 도서 리뷰자 Alexandra Schwartz는 말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책에서 다루는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고. 대신 자신과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를 준다고.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배우자, 자녀, 또는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다.


나의 엄마는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배우자에게는 폭력을 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자녀와 자신에게는 많은 생채기를 냈다.


그 여파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일까.


많은 것들이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그녀에게도 잘못이 없지는 않았다. 오늘날까지도, 나는 왜 그녀에게 폭력을 가한 이를 증오하는 대신, 그녀를 더 애증하고 있을까.


그녀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여자로 태어난 나는, 엄마는 절대로 되지 않기로 결심한지 오래다.


행복한 엄마가 될 자신이 절대로 없기에.


이미지 크레딧: sasint,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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