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MBTI

by 주주비

2000년도 후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도 MBTI가 유행했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검사를 했는데 INFP로 나왔다. 남자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INFP인 것 같다고 했다.


NGO에서 일할 때 ENFP가 나온 적이 있긴 했다. 직업 특성상 적극적으로 E를 발현해야만 하는--내심 거기서 꼭 성공하고 싶었어서--시기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여서 아는 사람도 없고, 사람을 많이 만나야겠다는 강박 때문에 더 그랬다.


아무튼 6년 동안 그 직장을 다니다가 결국 골병이 나 관뒀고, 그 이후 계속 INFP만 나왔으니, 나는 빼박 INFP라 믿고 있다.


가끔 한 번씩 해볼 때, 이 정도면 J가 나오진 않을까라고 생각해 보지만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걸 보니...


최근에 MBTI 붐이 불기 시작했을 때, 우리 가족 모두에게 MBTI 검사를 반강제 적으로 시켜봤다. 동생은 내가 시키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고, 엄마는 옆에 앉아 같이 질문지를 읽어보며 검사하고, 아빠는 카톡으로 "아빠 MBTI가 뭔지 궁금해요."라고 여쭤보니, 한 30분 만에 답변이 왔다. 검사해 보니 ISFJ라고.


우리 가족 4명의 MBTI는 다 제각각이다.


동생은 ENFJ.

엄마는 ESFP.

아빠는 ISFJ.


나부터도 어디서 INFP들이 이렇다 저렇다는 짤들을 보면, 이건 아닌데...라고 느끼는 점들이 많다. 뭐 MBTI로 사람을 규정할 수 없다는 것 누가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들은 각 MBTI의 대표적인 특징들이 다 잘 들어맞는 편이다.


동생과 나는 NF가 겹치고(티키타가가 잘된다), 엄마랑 나는 FP(쇼핑할때 죽이 잘맞는다), 아빠랑 나는 IF(서로 선을 넘지 않고 경청한다)가 겹친다. 우리 가족 네 식구를 공통적으로 묶는 건 F이다.


MBTI 궁합적인 면으로 봤을 때, 우리 집안은 부모와 자식 궁합이 별로 좋지 않고, 자매 간 궁합이 좋으며, 부부간 궁합이 좋다.


현실은?

맞다고 본다.


비록 엄마 아빠가 이혼을 했지만, 그들의 궁합은 좋은 편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결혼은 두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한 우리나라에선, 특히 가족과의 일 때문에 두 사람이 갈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착각일진 몰라도, 엄마 아빠가 친척들 없는 먼 나라에 단 둘이 살았다면, 티격태격은 했겠지만, 서로와 가족을 이렇게까지 파괴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름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부모 자식 간의 궁합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이에 다사다난한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우리 모녀, 부녀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았다.


부모자식인데 당연히 관계를 끊으면 안 되지라는 진부한 말에는 귀 기울이고 싶지 않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도 언제든 끊어질 수 있고, 또 어떠한 관계는 끊어져야만 한다.


부모자식 간 궁합이 나쁨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서로 관계가 끊어질만한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계는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우리 가족 내에서 부부간의 궁합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끊어진 그 관계를 돌아본다.


모든 관계에서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다. 아니, 자녀로서 우리는 부모에게 절대로 받지 말아야 할 일들을 많이 받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정은 비록 부모가 이혼은 했지만, 평범한 가정으로 비춰진다.


왜 어떤 관계는 끊어지고, 왜 어떤 관계는 아직 남아 있을까?


누가 모래도 부부는 남남이고, 피를 나누지 않은 관계는 쉽게 끊어진다는 그런 식상한 이유 말고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는 밤이다.


이미지 크레딧: congerdesign,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좋은 부모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