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부모도 아닌 주제에 부모의 자격을 말하는 사람)
아이를 낳아본 적도, 낳을 생각도 없거니와, 앞으로 낳을 수도 없는 non-parent로서의 나는 parenting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다.
단, 누군가의 자식으로서의 나는, 우리 부모는 자식인 나에게 절대 이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본다.
나의 부모를 부모로 봤더라면 그들이 우리에게 했던 짓을 나는 절대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라는 인간이 완벽한 용서라는 걸 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들을 부모가 아닌 인간으로 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비로소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나에게 끈끈한 부모는 아니다. 그저 나의 부모라는 연결성을 가지고 나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료 인간들일뿐이다.
이러한 마음을 그들에게 굳이 드러내지는 않는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온 동료 인간으로서, 그건 잔인하니까. “그래도 내가 자식들을 망치지는 않았구나”라는 안도감을 가지고 여생을 보내시길 바란다.
최근에 마음에 와닿는 말이 있다.
“Do no harm.”
벌거벗은 세계사의 “나치 전범” 편을 보다가 알게 된 안톤 슈미트라는 사람 때문이었다. 독일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200여 명이 넘는 유대인을 구해준 사실이 적발되어 그는 1942년도에 결국 처형되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에게 남긴 편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저 인간으로서 행동했고,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한 사람이었을까?
아니,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나선 건 오히려 히틀러였다.
안톤 슈미트 씨는 마지막 편지에서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간으로서 선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악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훨씬 세상에는 이득이 되지 않을까. 이 사실을 마음속에 받아들인 건 겨우 올해의 일이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내 자식에게 최고의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겠지?)보다는, 자식에게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을 하지 않는 것. 내 자식이 나를 보고 있고, 내 말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는 것.
그게 더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이 아닐까.
이미지 크레딧: skalekar1992,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