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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rizo May 31. 2020

이 책을 읽다보면 굴복당하는 기분이 든다.

조르주 페렉, <사물들>


 친한 친구에게 ‘나는 만든 사람까지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고싶어’라고 털어놓은 적 있다.

 나같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사람에게서 나온 모든 아웃풋, 이를테면 옷차림, 말투, 행동거지, 글, 아이디어, 센스, 디테일 같은 것들을 보고 그 배경, 그것을 만든 사람의 삶을 짐작하는 피곤한 삶.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람이다. 이런 하이에나같은 사람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거나 싫어하기 십상인데, 그 호불호도 종잇장 하나 차이이다. 기준이 되는 그 종잇장도 결국 본인의 실력이라, 이들에게는 자아 비판에 관한 이슈가 끊이지 않는다.

이제 급을 나눠 발 밑에 사람을 두고 얕잡아보는 더러운 습관은 버렸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진 사람에게 무한한 존경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여전하다.


 <사물들>을 읽다 보면 굴복당하는 기분이 든다. 마치 현실을 바라보지 않은 그들에겐 감정도 사치라는 듯 감정묘사는 일체 배제하는 대신 면밀한 상황 묘사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등장인물에게 스스로를 대입하게 해 인물의 감정을 직접느끼게 하는 조르주 페렉의 그 날카로운 시선에는 카리스마가 있다. 읽고 있으면 전혀 즐겁지 않지만 작가의 도회적이고 세련된 어투덕에 계속 빠져있고 싶은 기분이 든다. 유익하지 않은 줄 알지만 멈출수 없는 일을 명령하는 자에게 있는 권력이 카리스마이다. 작가는 마치 독자더러 등장인물들이 외면하는, 하지만 그들의 삶 자체인 그 혐오를 직접 느끼라고 명령하는 것 같다.

 작가는 작중에서, 특히 초반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지나치게 많이 언급한다. 굉장히 구체적인 상황을 서술하고 그것을 행복이라고 돈호한다.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그 비중은 점점 적어지는데, 대신 행복에 관한 내용을 제외한 모든 지면은 불안과 불안정, 권태로 차있다. 굉장히 원초적인 소설이다.
등장인물들은 그들 스스로를 아끼는 동시에 혐오한다. 단 한번도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았던 작가가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는 내가 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어떤 염려도, 애정도, 혐오도 섣불리 할 수 없는... .




 ‘그들은 목청을 높이며 감탄하곤 했는데, 이것이 바로 부자가 아니라는 제일 확실한 증거였다. 몸에 배서 너무나 당연한 것, 몸의 행복에 따르기 마련인, 드러나지 않고 내재하는 진정한 즐거움이 그들에게 부족했다. ... 그들은 부의 기호에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들은 삶을 사랑하기에 앞서 부를 사랑했다.’




 사상은 자기 포장의 도구일 뿐 온 감각을 열어두고 손에 잡히는 것을 사랑하는, 쇼윈도를 자처하는 삶. 가히 '사물들'이라는 제목이 어울리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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