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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a Oct 04. 2018

애정 하던 노포의 변심

그렇다면 갈아타겠습니다..

볼 일이 있어 1박 2일로 서울에 갔다. 휴일 전날에 도착해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한두 잔 하고 나니 다음날에 평양냉면이 당겼다. 필동에 있는 평양냉면 집을 찾아갔다. 이 곳은 평양냉면에 이유 모를 거부감을 가졌던 나에게 선입견을 없애준 곳이다. 공휴일 정오 식당에는 이른 등산이나 모임을 마친 사람들이 제육에 반주를 즐기거나 온 가족이 모두 둘러앉아 맛있게 냉면을 한 그릇씩 하고 있었다. 


2층으로 자리를 배정받은 나는 앉기가 무섭게 '물 두 개, 제육 하나'를 외쳤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뜨끈한 면수와 제육 한 접시가 나와있었다. 이 곳의 제육 서빙은 패스트푸드보다 더 빠르다. 면수로 입을 적시고 제육 한 점을 양념장에 푹 찍어 입에 넣었다. 

'음?' 

퍽퍽하다. 차지게 식힌 제육의 쫄깃함이 남다른 곳인데.. 어찌 된 영문일까. 젓가락으로 아래에 있는 고기들을 꺼내보았다. 사진으로 보이는 위에 있는 고기의 오도독뼈는 애교 수준이다. 성인 남성의 엄지 손가락만 한 우악스러운 뼈가 붙은 고기들이 발견된다. 게다가 고기 표면이 메말랐다. 평소 먹던 그 상태가 아니다. 


나는 조용히 점원을 불러 물었다. 평소와 다르게 고기도 퍽퍽하고 뼈가 이렇게 많은데 먹을 수가 없다고 혹시 다시 바꿔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먹었냐고 되묻는다. 한 점 먹었노라고 말했더니 '이렇게 손을 대면 바꿔주기가 힘든데..' 하고 말 끝을 흐리며 접시를 가져간다. 


접시를 되가져간 모양새가 별로였지만 일단 먼저 나온 냉면을 먹고 있기로 했다. 냉면을 반쯤 먹을 때까지 제육 접시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새롭게 자리 잡은 주변 손님들의 테이블엔 때깔 좋은 제육이 자꾸 놓였다. 점원과 눈이 마주치기 위해 식사를 멈추고 몇 번 기웃거렸으나 도통 쳐다보질 않는다. 가까스로 눈이 마주쳐 제육은 어떻게 됐냐 물으니 말해뒀고 곧 나올 거라고 했다. 냉면은 2/3쯤 모두 먹은 상황에서 그냥 점원이 아닌 사장 가족인듯한 매니저가 제육 접시를 가져다줬다. 평소에 먹던 뽀얗고 차진 그 제육이었다. 


'다음부터는 손대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 그렇게 주면 우리도 다 손해라서..' 


평소 먹던 제육을 다시 가져다준 것에 기뻐하고 있는 찰나 원망의 소리를 들으니 부아가 난다.


'뼈 있는 고기들이 다 밑에 있는데 어떻게 손을 대지 않고 알 수 있나요? 먹다 보니 나오는 거지?'라고 말했다.


'아, 그럼 주문할 때부터 뼈 없는 고기로 달라고 하세요.'라고 응수한다.


황당한 나는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주문을 해요? 여기서 제육 먹은 게 몇 번인데 뼈 없는 고기를 달라고 따로 주문을 해요?'


'예, 그렇게 주문하세요.' 하고 돌아선다. 


애정 하는 가게에 싫은 손님으로 찍히는 게 싫어 불편한 점이 있어도 굳이 말하지 않는 사람인데.. 프로불편러로 찍힌 것 같다고 속상해하며 새로 나온 제육을 또 입에 가져갔다. 쫄깃쫄깃. 이 전에 먹던 그 맛이 분명한데 이미 식욕이 짜게 식은 터라 맛을 모르고 씹었다. 

어제 이전 마지막 방문 때의 제육 상태, 핑크빛의 찰기가 돈다.

식사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와 계산대 앞에 섰다. 계산을 하는 10초 남짓한 상황에서 말을 할까, 말까 하는 고민을 했다. 단골도 그렇다고 뜨내기도 아닌 손님이 '이짜나 나 이케이케 속상했어~' 하고 징징거리는 투로 들려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면 어쩌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엔 말하지 않고 그냥 나왔다. 다시 방문을 할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상황을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방문해 같은 상황을 겪는다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미 이 곳을 대체할 가게는 많은 상황이기도 했다. 


나는 무엇이 속상했을까. 


무지막지한 뼈가 붙은 고기도, 메마른 고기 때문도 아니었다. 한 점을 집어 먹고도 바꿔 달라는 소리를 하는 무례한 손님으로 나를 몰아붙이는 식당 사람들의 태도에 상처받았다.


장사가 너무 안돼 파리만 날리는 업장에서 먹던 음식이 되돌아 나오는 것에 대한 푸념을 오히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장사가 안되는데 메뉴 퀄리티가 들쭉날쭉한 것을 나도 이미 예견했을 것이고 '가뜩이나 안되는 장사 오히려 손해'라며 푸념을 늘어놓을 사장의 모습이라면 차라리 이해가 가고도 남았을 것 같았다. 


하루에 수 백명이 다녀가 많은 매출을 내고 그 증거로 성실한 납세자 상도 받는 그 업장에서, 방문한 손님의 백가지 불만을 응대하는 매뉴얼 정도는 알고 있을 그 업장에서,  이렇게 손님을 대할 수가 있나 싶었다. '오래되었으나 노련하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런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손님, 제육 다시 가져다 드려요. 만약 다음번엔 드시기 전에 뼈가 너무 많이 보인다 싶으시면 바로 말씀 주세요. 다른 걸로 금방 바꿔다 드릴게요. 뼈가 너무 싫으시면 주문하실 때 살짝 말씀 주셔도 좋고요. 맛있게 드세요.' 


그렇다면 나는 이 곳에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당'이라는 말을 덧붙여가며 주말 점심을 기분 좋게 마치고 호기롭게 지갑을 꺼내 들고 이쑤시개 하나를 물고 걸어 나왔을지도 모른다.  


안녕, 애정 했던 노포여 이젠 안녕.




p.s 음식비평가인 이용재님이 이 집에 대해 날선 평가를 내린 것을 보고 어쩐지 속상하기도 꼬숩기도 한 마음이다.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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