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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a May 04. 2020

제주에서 재택근무하기

육지 건 제주 건 일하는 건 다..

2월 말부터 시작한 재택근무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정상 출근이 다음 주로 결정되어 이제 재택근무도 안녕이다. 태풍이나 폭설로 인해 며칠 재택근무는 해봤지만 이렇게 장기로 하는 재택근무는 생전 처음이라 초반엔 다들 어색하고 어리바리했다. 두 달 넘게 이 생활을 하고 있자니 이제 다 같이 회의실에 모여 회의하는 모습이 상상도 안된다.


3월 말에도 제주에 와서 일주일 정도 재택근무를 하고 올라갔었다. 그때는 제주집이 약간 어색하기도 하고 일하는 게 바빠서 별 감흥 없이 지냈는데 이번에 와서 재택근무를 하니까 느낌이 남달랐다.


아침 8시에 일어나 거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두고 씻는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모카포트에 원두 가루를 그득 올려 가스불 위에 올려두고 커피가 추출되는 모습을 지긋이 쳐다본다. 옆에 전기포트의 물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날 때쯤 추출구를 통해 커피가 송송송 올라온다. 빈 잔에 데운 물을 붓고 커피를 부으면 손쉽게 아메리카노 한 잔 완성.


아침을 더 여유롭게 만드는 모카포트 커피 한 잔. 요즘 내 즐거움 중에 하나.

여기까지 보면 육지의 재택근무 시작 전 루틴과 다를 바가 없지만 제주집은 브금이 다르다.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여유로운 아침 풍경에 목가적인 분위기를 더 한다. 가끔 바람에 나뭇잎이 스스스하고 부딪히는 소리까지 들리면 더욱 잔잔하고 평화로운 기분이다.


커피를 들고 바로 옆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열면 눈 앞에 보이는 뷰. 남들은 별 거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내 눈엔 너무 귀엽고 편안하다. 하지만 커피 몇 모금을 마시면 곧 원격으로 출근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소박하고 평화로운 제주집

출근 이후는 육지나 제주나 비슷하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카톡과 회사 인트라넷 서비스의 알림에 정신이 없다. 화상회의를 할 때는 옆 집 개 짖는 소리가 나지 않게 창문도 잊지 말고 꼭꼭 닫아두어야 한다. 문서를 편집하고 인트라넷에 업데이트하고 카톡으로 나눈 대화를 요약하여 기록으로 남겨두면 오후 5시쯤. 집 안 깊숙이 들어온 주황색 빛을 보고 해 질 녘이 됐다는 걸 알아챈다. 이 시간이 되면 퇴근하고 싶은 갈망이 휘몰아친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노을을 보러 나가자.'


육지에서는 딱 이 생각까지만 하고 일어나지 못한 채 7시까지 업무를 마무리한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업무 시간을 5시 반, 6시까지로 조정하고 집에서 나갈 채비를 한다. 제주에서 노을을 놓친다는 건 왠지 모르게 더 억울한 느낌이 든다.


차를 몰아 집 근처 해변으로 간다. 전에 봐 둔 일몰 포인트로 가서 해가 바다로 떨어지는 모습을 계속 바라본다. 따뜻한 주황색 저녁 빛이 얼굴에 닿는 느낌이 좋다. 구름은 맑았던 하늘 위로 추상화처럼 펼쳐진다. 새들은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날아가고 고기를 낚던 낚시꾼들은 채비를 정리해 일어선다. 모두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이 좋다.


매일 노을을 마주 할 수 있는 삶.


누군가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해야지 하고 담아둔 답변이다. 매일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든 간에 해 질 녘 노을을 오롯이 마주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제주에서는 그런 시간이 꽤 가능하다. 해지는 모습을 가리는 건물도 없기도 하거니와 저녁 6시 즈음엔 모두가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창 밖으로 한낮처럼 눈부신 노을을 보거나 구름 사이로 가려졌지만 주변 하늘은 분홍색으로 물들인 노을을 보기도 한다. 또 어느 날은 새빨간 쇳덩이가 이글거리며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드라마틱한 노을을 보기도 한다.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건 아니건 간에 노을은 공평하게도 모두에게 오늘 하루를 잘 마무리했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갑자기 목탁 소리가 난다. 마음에 평화로움을 찾고자 카톡 알림음을 '목탁 소리'로 해놨더니 시도 때도 없이 목탁이 울린다. 중요 리뷰를 앞둔 팀 채팅방에서 활발하게 대화가 오고 간다. 나는 이미 퇴근했지만 어떤 대화가 흘러가는지 궁금해 대화방에 들어가 본다. 흘러가는 대화를 한참 보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해는 이미 바다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덧) 재택근무 소회를 남기려고 했는데 노을 찬가를 남긴 기분이다.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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