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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Dec 10. 2023

내 친구 시어머니

어머니라는 이름의 강

밤늦게 퇴근한 남편과 식탁에서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시어머님이 조심스럽게 다가오시더니 우리 부부에게 까만 비닐봉지를 건네셨다.

"내가 몇 년이 걸려 천만 원을 모았다. 아들 집에 살면서 밥 걱정 없고 옷도 며느리가 늘 챙겨서 사주니 나는 쓸 곳이 없어. 너희가 두었다가 나중에 필요한 곳에 쓰면 좋겠어. 이 돈을 모으는 데도 나는 몇 년이나 걸렸다. 근데 너희는 이렇게 번듯한 집에서 두 아이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이니. 둘 다 참 장하다."

평생 홀로 삼 남매를 키우느라 은행에 돈을 모아 본 적 없으신 내 시어머님은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옷장 서랍 깊은 곳에 차곡차곡 모으셨다. 구깃구깃한 봉지가 그 오랜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액수가 맞는지도 몇 번이나 세어 보셨을 거다.

"엄마, 고생했소."
무심하게 한 마디 건네는 남편의 눈망울이 촉촉해진 것을 보았다. 나 또한 눈물을 참느라 말을 아끼고 있었다.




내게는 47년생이신 시어머님이 있다. 서른여섯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딸 둘과 아들 하나를 홀로 키우신 분이다. 어머님의 인내심과 책임감은 그 어느 강보다 깊고 긴 세월을 흘러왔다. 서른셋에 쌍둥이를 낳아 기르는 중인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생이다.

내가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한 아이가 태아 치료를 받았다. 생후 3일에 응급으로 수술한 아이는 퇴원 후 패혈증으로 다시 입원해야 했다. 3주가 넘는 입원생활 동안, 집에서 다른 쌍둥이 아이를 돌봐주시던 시어머님은 어느 날 나에게 전화해 눈물을 보이셨다. 같은 여자로서 고생하는 며느리가 마음 쓰이신다고, 아이보다 엄마 건강이 중요하다며 나를 먼저 걱정하셨다.

이런 시어머님은 존경스러운 분인 동시에 나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다. 며느리인 나를 같은 여성으로 바라봐 주시는 그분의 위로와 공감이 어느 때는 남편보다도 더 큰 사랑을 준다.




어머님은 큰 강과 바다를 좋아하신다. 잔잔한 물결을 보면 마음이 탁 트이고 시원해진다고 말씀하신다. 시어머님과 점심식사를 핑계 삼아 자주 강과 호수, 바다를 찾아다닌다. 말수가 적고 외출을 잘하지 않으시는 어머님을 위한 내 나름의 효도다. 그래서인지 어머님은 며느리인 나를 늘 자랑하신다. 본인이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재혼하지 않고 아이들을 지킨 것과 며느리를 잘 본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한다.

어머님과 자주 대화를 나누게 되니 가끔은 나이대가 다른 친구 같기도 하다. 어머님과 나는 각자 다른 인생의 물길을 흘러 오늘이라는 곳에서 만난 듯하다. 어머님이라는 크고 깊은 강이 나라는 작은 개울을 기다렸다는 듯 품어주신다.

가끔 어머님은 걱정스러운 듯 말씀하신다. 시어머님인 본인이 며느리인 나를 불편하게 할까 봐 미안하다고. 그런 어머님께 걱정하지 마시라고, 당신의 며느리는 어머님이라는 강이 너무 아름답고 따뜻하다고 얘기하고 싶다.

내 어머님이 더 오래도록 맑고 깊게 흐르는 강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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