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양연화 Jun 16. 2024

맹장이 터지고 새삼스레 깨닫게 된 것들

무탈이 행복임을 까먹지 말자.

6월 5일, 작품 하나를 탈고한 나는 개운한 마음으로 원더랜드를 보러 갔다. 2011년 만추가 개봉했으니 이후 십 년이 훌쩍 넘어서야 김태용 감독의 작품을 다시 만난 것이다. 게다가 탕웨이까지 나온다니, 이 커플이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줄지 설렜다. 그런데 영화관이 만차라 주변 일대를 자리가 날 때까지 빙글빙글 돌았다. 마침 건물 바깥 공용주차장에 차가 하나 빠지면서 운 좋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상영시간이 임박해 마음이 급한데, 이번에는 차 문이 잠기지를 않는다. 희한하다. 차에 가져갈 물건도 없고 키도 나에게 있으니까, 별일이야 있겠냐 싶어서 그냥 차를 두고 영화관으로 올라갔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영화는 실망스러웠다. 이야기가 빌드업되지 못하고 병렬식 구조인 것도 문제지만, 이토록 신선한 소재를 아침드라마 같은 신파로 풀어내다니. 탕웨이는 빤히 예측가능한 모성 신화를 넘지 못했고, 보검 수지 커플도 갈등의 서사가 깊지 못하고 뮤직비디오 같은 장면들로만 감정을 쌓는 느낌이라 공감하기 어려웠다. 유미와 우식도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존재일 뿐인 데다가 마지막 우식에게 ‘내가 니 애비다’ 하는 장면은 실망을 넘어 실소가 나왔다. 하지만 난 만추에 대한 애정이 워낙 깊은 탓에 김태용 감독에 대한 기대는 아직도 높다. 이번엔 이랬지만, 다음엔 더 좋은 영화를 만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영화에 관해선 일단 여기까지.      


아쉬운 마음 가득 세워둔 차에 다가서는데, 돌아다니며 요금을 받으시는 분이 나를 보더니 달려와 왜 차 시동을 켜고 갔냐고 하신다. 헉! 그래서 문이 안 잠겼구나! (요즘 차는 정차하면 시동이 잠시 꺼지는 함정) 그제야 이해되면서 이런 정신머리로 영화가 어쩌니 저쩌니 하다니... 친절한 금자 씨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너나 잘하세요!"   


어리바리해서 집에 돌아왔는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명치가 쓰리면서 아팠다. 체한 느낌이었다. 배에 침을 맞고 한참을 기다렸는데, 가라앉지 않아 이번엔 산책했다. 아무리 걸어도 안 내려갔다. 밤새 아픈 채 끙끙대다가 다음 날 오후가 되자 식은땀이 났다. 그리고 알았다. 명치에서 시작된 통증이 오른쪽 아래로 향했다는 것을. 그러니 이건 체한 게 아니라 충수염! 간호사 출신인 내가 이걸 이제야 알다니, 너무 오래 필드를 떠났나 보다. 내 방에서 자가 진단을 끝낼 무렵 안방에서 평화롭게 코 고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겸손하게 허릴 구부리고 안방으로 들어가 세상 근심 없이 태평하게 낮잠 자는 남자를 깨웠다. 내가 지옥을 헤매는 동안 이분께서는 천국에 계신 모양이다. 하긴 둘 다 지옥에 있는 것보단 한 사람이라도 천국에 있는 게 낫긴 하다. 잠이 덜 깬 그를 앞장 세워 기어가다시피 응급실에 도착해 조영제를 넣고 CT를 찍었다. 예상대로 맹장, 충수염이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때는 6일 현충일, 쉬는 날인 데다가 의료대란에 수술할 의사가 없다. 일단 입원해 진통제를 맞고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진통은 되지 않았고, 또다시 밤이 오고 난 밤새 39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렸다. 온몸이 깨질 것 같았다.   

  

지옥 같은 시간이 흐르고 다음 날 오후 두 시가 되어서야 겨우 수술할 수 있었다. 당연히 맹장은 터졌고, 수술했지만 배는 임신 6개월 산모처럼 부풀어 올랐다. 부어오른 장이 위를 눌러 밥을 먹을 수도 없어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병원을 좀비처럼 걸어 다녔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가 아닌 단장의 울퉁불퉁한 병원 뒷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그곳에서 흡연자들이 뿜어낸 연기를 무대 삼아 뒤돌아 걷고 또 돌아 걸었다.   

   

그동안 뭐 좀 쓴다고 모든 약속을 6일 이후로 몰아 두었던 나는, 약속한 모든 이들에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만날 수 없다는 소식을 전해야 했다. 본의 아니게 몸 상태를 말할 수밖에 없었는데, 예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인근 친구들이 매일 병원으로 보러 왔고, 퇴원하니 전복죽에 김치, 석쇠 구이 한 판에 곰탕, 꽃다발, 각종 과일, 전복 한 상자, 갈비, 간장게장 등등 위로 물품이 집으로 쇄도했다. 이를 본 아들이 하는 말, 눈 찔끔 감고 수술 한 번만 더 하면 집도 사겠단다. (이놈은 왜 이러는 걸까요.)     


울컥했다. 나의 만행에 관해 고백하자면, 누가 만나자고 해도 비싸게 굴기 일쑤고, 친구가 자기 생일날 밥 먹자고 전화했는데, 생일인지도 모르고 바쁘단 핑계로 거절했으며, 꼭 집으로 찾아와야만 얼굴을 보여주고, 매일 뭐 좀 쓴다는 핑계로 내 일정표에 맞춰 모든 약속을 잡곤 했는데, 이런 이기적이고 못된 인간에게 과분한 사랑을 보내주다니. 이제 제발 잘 좀 하고 살라는 갱생의 차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수술한 지 열흘이 되니 몸은 많이 회복되었다. 그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드라마, 소설, 산문을 썼다. 언제까지는 이것을 쓰고, 언제까지는 저것을 쓴다는 목표 아래 달려도 너무 달렸다. 오죽하면 드라마 쓰는 친한 동생 왈,

“언니 같은 사람이 옛날에 팔만대장경 썼나 봐요. 살다 살다 언니처럼 많이 쓰는 사람 처음 봐요.” 내가 이런 사람이다. 옛날로 따지면 팔만대장경을 쓸 사람.     


장이 터지고 나니 이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목표 없이 사는 것! 이게 나의 목표다. 7, 8월에는 잡혀있는 강연을 소화하면서 좀 느긋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머릿속엔 새로운 기획안이 떠오르고, 또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도저히 쓰고 싶다면, 쓰되 목표는 지우자. 당분간 한량이 되기로 결심한다. 열심병 환자인 내가 그게 될지 모르겠지만.     


집에 오니까 좋다. 병원에선 통증도 통증이지만, 별이 다섯개인 돌침대보다 더 딱딱한 침대 에 잠시만 누워도 등짝이 깨질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앉아서 밤을 꼴딱 새운 날이 더 많았다. 배 아프고 등짝 아프니 정말 사면초가였는데, 편안한 내 방, 푹신한 침대에 감미로운 음악을 켜고 누워 눈을 감으니, 행복하다. 행복은 고통 뒤에 온다는 말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무료한 일상이 지속된 어느 날, 그 무료함으로 인해 불행하다고 느껴질 때 오늘의 행복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해 둔다.


PS: 모두 맹장 조심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