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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양연화 Jul 03. 2024

불면의 밤과 소란한 고뇌와 소소한 행복, 이제 안녕!

창밖은 가을, 장편소설 에필로그

  


                         * 에필로그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도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이야기를 써 줘!      


3년 전 단풍이 무척 아름다웠던 가을날, 그 단풍 아래 앉은 친구가 한숨처럼 내뱉은 말이다. 친구는 오랜 시간 정신병을 앓는 딸 때문에 힘들어했다. 그냥 푸념처럼 했던 말일 수도 있었는데, 그 말은 내 가슴에 고스란히 박혔다. 그때 나는 유명한 드라마 피디와 팀을 이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을 판타지 드라마를 쓰는 중이라(결국 넷플릭스에서 퇴짜 맞고 내 마음만 발칵 뒤집어지고 말았지만) 매주 회의와 대본 수정, 기획안 수정에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고, 그런 이유로 친구의 말은 잠시 잊었다.     


결국 퇴짜 맞은 그 작품 이후 쓴 메디컬 범죄 스릴러가 공모전에 뽑히면서 또다시 편성을 위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재미있는 난 내가 만든 이야기 속에 빠져 이쪽이 현실인지 저쪽이 현실인지 모를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제작사 대본 회의를 가는 길, 현타가 몰려왔다. 데뷔도 못 한 못한 초짜 작가에게 드라마를 쓰는 일은 무척 가혹했다. 제작에 큰돈이 들어가는 작업이라 아무리 대본이 그럴싸해도 무명작가에게 무턱대고 투자할 제작사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 걸음 나아갔나 싶으면 두 걸음 물러나는 기현상을 장시간 겪다 보니 회의가 쓰나미처럼 덮쳐왔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강렬하게 든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나의 쏘울메이트 반려견 미나와 매일 산책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쓸지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새벽, 친구가 내게 떨어뜨린 그 씨앗이 꿈틀거리더니 싹을 틔웠다. 물론 친구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1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 창작물이다. 몇 해 전 ‘창밖은 여름’이라는 시나리오를 습작으로 썼던 나는 이 소설의 제목을 ‘창밖은 가을’로 정했다. 두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데 계절의 특성을 이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가을이 이 소설의 주제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명화로 소통하기’라는 프로그램에 1년 동안 보조강사로 참여했던 이력은 미술치료가 뭔지 알게 된 계기가 되었고, 이때의 경험과 내가 쓴 책들은 (다락방 미술관과 다락방 클래식) 소설을 풍요롭게 만드는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소설의 배경이 복합문화공간이니 미술과 음악은 필수 불가결했고, 이를 적절히 배합하는 것은 내게 큰 즐거움이었다. 드라마건 소설이건 장편을 쓰는 건 자료조사가 반인데, 이 소설에 있어 난 반은 먹고 들어간 셈이다.     


어느 날은 주인공 연재가 되어 고달팠고, 어느 날은 현이 되어 가슴 아팠다. 하지만 마냥 음울한 글이 되길 원치 않았기에 다른 등장인물에 잔잔한 유머를 심었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야 이야기에 리듬이 생기고 재미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서자 각자 인물들이 스스로 행동하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억지로 꾸며내지 않아도 살아있는 사람들처럼 움직여주니 난 그들의 감정을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모험심이 강한 나는 그동안 여러 장르의 글을 썼다. 난데없이 뽑혀 2인 오페라를 쓰기도 했고, (세종문화회관에서 초연, 전국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되었다) 의뢰가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시나리오를 3편이나 썼다. 언젠가 칸의 레드 카펫을 밟을 날은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 와중에 또 소설에 도전했다. 한 가지만 파도 될지 말지 한 이 바닥에서 한 가지도 제대로 못 하는 주제에 여기저기 기웃거린 셈이다. 굳이 변명하자면, 수필, 오페라, 드라마, 시나리오, 소설 저마다의 매력이 날 가만두질 않는다고나 할까.     


마지막 글을 업로드하고 그날 늦은 저녁, 미나의 손을 잡고 (현실은 미나의 목줄을 쥐고) 집 앞 공원을 산책하는데, 이어폰을 통해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이 흘러나왔다. 노을이 물든 하늘, 선선한 바람이 왈츠를 타고 출렁이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제야 내 소설이 모두 끝이 났음을 인지했고, 나는 현실로 돌아왔고, 이제 소설 속 그들과 영원히 작별했음이 절절히 슬펐다. 6월의 저녁 바람에 눈물 바람을 날리며 나는 나의 ‘창밖은 가을’에게 기꺼이 손을 흔들었다. 수많은 불면의 밤과 물러서지 않던 고뇌와 소소한 행복도 이제 안녕.     


밥 하다 말고 글에 집중한 나머지 국냄비를 태우는 것은 다반사였고, 그때마다 탄 냄비를 빡빡 닦으며 '나 아니면 집안 꼴이 안 돌아간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묵묵히 나를 지지해 준 아들, 고마워. 그리고 방관형 요리해서 미안해. 엄마가 성공해서 꼭 냄비 새로 살게.


기획에서 완결까지 1년 동안 복합문화공간 ‘소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채워나가며 행복했다. 우선 글을 쓰는 일이 가장 행복했고, 업로드할 때마다 소수지만 읽어주고 정성껏 좋아요! 눌러주는 독자가 있어 힘이 되었다. 특히 무한 애정과 지지를 보내주신 오경희 편집자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독자가 아니라 동지라 부르고 싶을 만큼 큰 힘이 되어준 ‘풍경소리님’ 외 20여 분의 동지 여러분, 긴 여정 끝까지 저와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소풍’에 소풍 와서 잘 놀다 갑니다.     


                                             문하연 드림.


ps: 이 글은 '창밖은 가을' 에필로그라 그 글 끝에 올려야 마땅하지만, 연재 브런치북은 30화까지만 업로드가 가능해(당황스럽) 부득이 명랑한 중년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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